천주교성지순례/대전교구

<국내성지041> 줄무덤 & 새터, 청양 다락골성지 181213

노인장대 2018. 12. 24. 21:39

산골 마을 청양 다락골은 1791년 신해박해 이후 최양업 신부의 할아버지 최인주가 모친 경성 이씨를 모시고 피난해 오면서 교우촌으로 거듭났다.

이곳에서 한국의 두 번째 사제 최양업 토마스와 그의 부친 최경환 프란치스코가 탄생했으며, 무명 순교자들의 줄무덤이 있는 곳이다.

 

최경환은 1984년 한국을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고, 부인 이성례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최양업 신부는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가 아닌 증거자로서, 시복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다락골은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프랑스 선교사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가 마지막 미사를 봉헌한 곳이다.

서울에서 먼저 체포된 앵베르 주교가 교우들의 피해를 막고자 다락골에 피난해 있던 두 선교사에게 자수하도록 편지를 보냈다.

이에 두 선교사는 순명하여 양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는 착한 목자로서의 사명을 다하였다.

 

성지 내에 있는 줄무덤은 1866년 병인박해 때 홍주(현 홍성)와 공주에서 순교한 교우들의 무덤이다.

세 지역의 줄무덤으로 되어있는데, 총 37기(본래 40기)로 모두 무명 순교자 . 증거자들이다.

 

(한국천주교성지순례/한국천주교주교회의)

 

 

 

다락골 성지는 최양업 신부의 생가터인 새터와 무명순교자들의 줄무덤의 두 부분으로 나뉜다.

성지 발굴 당초에는 새터가 먼저 답사의 대상이 되었으나 답사 과정에서 무명 순교자 줄무덤도 주목을 받게 되었다 한다.

우리는 오늘 눈이 조금씩 뿌리는 날씨를 감안하여 산을 올라야 하는 줄무덤부터 먼저 가보기로 했다. 

 

 

 

 

 

 

 

줄무덤으로 올라가는 입구이다.

정상에 있는 줄무덤까지 도보로 약 20분 정도 걸린다고 안내되어 있다.

 

 

 

 

줄무덤으로 가는 길에 설치된 무명 순교자 상이다

청동으로 만든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조각상이다.

 

 

 

 

 

그 뒤로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예수성심상과 커다란 항아리에 조각된 십자가의 길이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세 곳의 줄무덤 중 제1,2줄무덤과 제3줄무덤이 길이 갈라진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제1줄무덤이 있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산길이 가파르고 이미 눈이 좀 쌓여있어 미끄럽고 숨이 가쁘다.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쳐가며 호흡조절을 하며 천천히 오른다.

 

 

 

십자가의 길 14처가 끝나는 곳이 정상이고 그 곳에 제1줄무덤이 있다.

조금씩 뿌리던 눈이 갑자기 함박눈이 되어 시야를 가린다.

 

 

 

 

병인박해 당시 다락골에는 최양업 신부의 일가가 되는 경주 최씨들이 살았는데

홍주와 공주 등지에서 처형 당한 시체들을 살아남은 가족이 몰래 훔쳐와 자신들의 종친 묘 한쪽에 줄을 지어 매장했다.

한 무덤에 여러 사람을 묻었다고 하여 줄무덤인데, 실제로 무덤의 크기가 한사람을 묻었다고 보기엔 너무 크다.

 

 

 

 

 

 

저 아래 보이는 곳이 제2 줄무덤이고, 제3 줄무덤으로 가는 길도 안내되어 있으나

너무 많은 눈이 내려 가파른 산길을 내려가는 것이 염려되어 하산 하기로 결정했다.

 

 

 

 

 

성지엔 대성당과 소성당 그리고 부속 수녀원 등이 있는데 우선 대성당부터 둘러본다.

 

 

대성당은 보기드물게 연못을 끼고 있고 연못에는 연꽃들이 살고 있다.

이 성당은 우리나라 현대성당건축에 큰 획을 그은 건축가 김영섭씨가 설계했다고 한다.

 

 

 

 

 

 

성당 안으로 들어오자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환한 미소와 함께 여러 가지 방법으로 순례자를 환영한다.

 

 

 

 

 

 

대성전은 빛을 중요시 하는 설계자의 의도가 반영되 삼면에 유리창을 배치해 내부를 밝게 했다.

 

 

 

 

 

제대 위에는 양팔 없는 예수님이 모셔져 있다.

 

이 양팔 없는 십자고상은 오스트리아 조각가 셉 아우뮬리의 작품으로

2차대전 후 복구 작업이 한창이던 때 독일 남부의 어느 마을에서 발견된 양팔 없는 십자고상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우리의 원죄로 인해 예수님이 두 팔을 잃었으니 우리가 예수님의 두 팔을 대신하겠다는 신자들의 다짐을 담았다 한다.

 

 

 

십자가 모양으로 배열된 십자가의 길도 이채롭다.

 

 

성체를 보관하는 감실 조차도 특이하다.

 

 

성전 밖에는 최양업 신부 기념관도 마련되 있다.

 

 

 

 

그 옆에는 124위 복자 현양실이 있다.

 

 

 

대성당을 나와 소성당으로 가본다.

 

 

 

 

 

기도공원 안에는 이름 모르는 예수님이 서 계신다.

줄무덤이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이니까 예수님도 무명 예수님이다.

 

 

 

 

 

대성당 아래 쪽에 부속 수녀원이 있다.

그 앞에서 한 분의 수녀님을 만난다.

 

 

 

최양업 신부님의 생가를 복원해야 하는데 땅은 확보를 했는데 집을 지을 돈이 모자란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 오시는 순례객들에게 후원을 부탁하고 후원차를 대접한다고 한다.

수녀님의 간곡한 부탁과 후원차에 대한 답례로 아내와 나 두 구좌의 후원을 약정하고 생가 복원 사업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길 기도했다.

 

 

성지 사무실이 있는 곳에서 약 1km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면 최양업 신부가 태어난 생가터가 있다.

 

 

 

최양업 신부는 한국인으로는 김대건 신부 다음으로 두 번째로 사제가 되신 분으로

사제 서품을 받은 후 12년 동안 불같은 열정으로 사목에 힘쓰시다 과로로 선종하시고 제천의 배론에 무덤이 있다.

그의 부친 최경환 성인 역시 하느님을 믿다가 순교하신 분으로 두 분이 여기서 태어나셨다.

 

 

 

이 자리에 두 분이 태어나고 자란 생가를 복원할 예정이지만 건축 자금이 많이 모자란다고 한다.

순례를 하시는 많은 분들이 십시일반으로 재원을 보태어 하루 속히 생가가 복원되길 기도드리고

역사적, 종교적, 예술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다락골 성지를 떠나 수리치골 성지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