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성지순례/대전교구

<국내성지042> 성모 신심이 시작된 곳, 수리치골성모성지 181213

노인장대 2018. 12. 28. 23:14

수리치골은 박해 시대에 신자들이 숨어 살던 교우촌으로 '성모 성심회'라는 신심 단체가 조직된 뜻 깊은 장소이다.

한국 교회의 성모 신심이 시작된 곳이며, 공주 지방의 신앙 공동체 형성과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교우촌이다.

 

중국 상해에서 첫 사제로 서품된 김대건 신부는 1845년 10월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 그리고 11명의 신자와 함께 조선에 입국하였다.

1846년 뜻밖에 김대건 신부가 체포되어 병오박해가 일어나자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는 수리치골로 피신하였다.

그해 11월 2일 두 선교사는 성모 마리아의 전구로 조선 교회가 박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성모 성심회를 조직하였다.

 

성모 성심회는 수리치골의 한 오두막집에서 몇 명의 신자들로 시작한 작은 단체였다.

하지만  그 회의 본부가 있는 프랑스 파리의 '승리의 성모 대성당'에 편지를 보내 이 단체를 명부에 올려 달라고 청하여 서로 연대하였다.

신자들은 주일마다 수리치골에 모여 전 세계 회원들과 뜻을 모아 조선 교회의 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였다.

 

현재 이곳에는 성모 성심회의 뜻을 계승하는 '미리내 성모 성심 수녀회'의 총원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천주교성지순례/한국천주교주교회의)

 

 

 

오늘 순례 일정 중 다락골 수녀님과의 후원 약정 관계로 시간이 늦어져 수리치골에 도착했을 때는 4시 반이 넘었다.

수리치골이 워낙 깊은 산골이고 성지를 에워싸고 있는 산이 높아 벌써 그늘이 지고 빨리 어둠이 올것 같다.

여기 수리치골은 순교지가 아니고 숨어 살던 교우촌에서 성모를 향한 신심 단체가 처음으로 조직되었다는데 의미가 있다.

 

 

 

 

 

 

 

입구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성체조배실과 십자가의 길 그리고 성모당이 있는 성모동산이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총원과 수녀원 성당이 있다.

해가 지기전에 수리치골 성지의 상징인 성모당 사진을 먼저 찍기 위해 성모동산 쪽으로 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성체조배실과 그 주변에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산만하다.

 

 

 

 

 

여기서는 십자가의 길 기도를 생략하고 대신 제1처부터 14처까지 전부의 사진을 찍었다.

 

 

 

 

 

제 14처 예수님이 묻히신 무덤의 관 속이다.

십자가 형태로 예수님이 누워계시고 그 안에 예수님 사랑이 충만하다.

 

 

 

수리치골 성모 성지의 상징인 성모당의 모습이 떨어지려는 해와 구름과 어우러져 아름답다.

이쪽 저쪽 돌아보며 열심히 촬영하고 있는데 저 아래 입구에서 만난 수녀님이 "예쁘게 찍어 주세요" 하며 인사한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성모 성심회가 발족할 당시의 집터가 있고

산정에는 산상 십자가가 있으며 그 아래 게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는 예수님과 잠자는 제자들 상이 있다고 한다.

곧 어둠이 내릴것 같아 이 길을 순례하지 못함이 못내 아쉽다.

 

 

 

 

수녀원으로 올라가 본다.

여기는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총원이 있는 곳이고 현재 90여분의 수녀님들이 계시다고 한다.

 

 

 

 

 

 

 

 

성당 입구에 계시던 수녀님이 반가이 맞아주시며 지금 기도시간이니 들어와서 기도하고 가라신다.

시간이 많이 늦어져서 대천 한화리조트까지 한시간 이상을 밤길 운전을 해야하는 사정을 설명하고

기도에 참여는 못하지만 성당 내부 사진 촬영을 허락해 주실것을 요청하니 쾌히 허락해 주신다.

 

 

 

조용히 기도하시는 수녀님들께 방해가 될까봐 얼른 두 컷만 찍고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