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056> 민란군에 의한 처형장, 제주 관덕정 190128
오늘은 제주교구 관할 성지 7곳을 순례하기 위하여 3박4일 일정으로 제주도로 간다.
천주교 주교회의가 선포한 성지 111곳 중 제주교구가 순례객들에겐 가장 어려운 순례지이다.
그중 황경한의 묘가 있는 추자도는 하늘이 뱃길을 열어주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이다.
2주 전에 장기 일기 예보를 감안하여 비행기, 콘도, 렌트카를 예약했는데 다행히 4일 중 마지막 날만 비 예보이다.
4일 중 가장 화창한 두번째 날에 추자도 왕복 뱃편을 예약했다.
이번 순례길에는 대학 입학동기이자 53년지기인 이재현 요셉 부부가 동행을 해서 더욱 의미가 있고 든든하다.
12시에 김포공항을 이륙한 KAL기는 오후 1시에 제주공항에 도착했고, 제주의 날씨는 예보와는 달리 흐리고 바람이 강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바다는 성난 파도가 거세서 내일 추자도행 배가 출항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선박회사인 씨월드고속훼리에 전화를 걸어보니 출항여부는 내일 오전 8시에 결정이 된다고 한다.
내일 일은 내일 운명에 맡기기로하고 일단 렌트카를 찾고 첫 순례지인 관덕정으로 갔다.
1886년 한불조약을 계기로 조선에서는 공식적인 박해가 끝났음에도 지방에서는 부패한 관리와 완고한 유생들과 천주교인들과의 충돌이
결국에는 박해라는 양식으로 바뀌었는데, 그중 하나가 1901년에 발생한 제주 신축교안(辛丑敎案)이다.
지방 관리와 기득권을 주장하는 토호 세력 등의 결탁으로 유도된 이 사건은 중앙 정부의 새로운 조세 정책에 불만을 가진 백성들의 민란(이재수의 난)으로 출발했으나,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민란군은 공격 대상을 천주교로 돌렸다.
관덕정(觀德亭)은 본디 조선 세종 때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군사들의 연무장에 세운 정자였는데,
제주 신축교안 때 많은 신자들이 이곳 관덕정에서 민란군에게 처형당했다.
제주교구는 2003년 11월 7일 '1901년 제주항쟁기념사업회'와 함께 화해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곧, 교회는 과거 전통 사회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선교 활동을 펼쳤던 점들을 인정하고,
제주도 민중들도 봉기 과정에서 무고한 천주교인들이 희생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됨으로써,
과거사에 대한 일방적 시각을 버리고 화해와 화합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한국천주교성지순례/한국천주교주교회의)
조선시대에는 행정의 중심인 제주목 관아가 관덕정과 함께 있어 관덕정 앞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많이 발생했다.
제주의 민란인 신축교안 때는 제주성에 입성한 이재수가 관덕정 앞에서 악질 봉세관에 빌붙어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고
천주교를 앞세워 제주의 토속신앙을 파괴한 사이비 신자들을 징치한다는 명목으로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하였다.
조선시대 제주 지방 통치의 중심이었던 제주목 관아는 지금의 관덕정을 포함하는 주변 일대에 분포해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 때 완전 훼철되었다가, 1999년 9월에 복원을 시작하여 2002년 12월에 완료하였다.
관덕정의 순례 확인 스템프는 관할 성당인 중앙 주교좌성당(T : 064)753-2271)에 비치되있다.
관덕정에서 큰길 건너 약 200m 정도 떨어져 있는 중앙 성당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