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068> 조씨형제 순교자묘 190212
부산시 강서구 생곡동 배씨(裵氏) 가문의 선산에는 배씨가 아닌 조씨(曺氏) 성을 가진 형제의 묘가 있다.
창녕 조씨 조석빈과 조석증 두 형제는 천주교로 개종한 뒤, 천주교 연구와 전교를 열심히 하였다.
그들은 생곡의 배정문의 동서학당에 은거하면서, 유학과 서학의 비교 연구에 힘쓰고,
한문 성경을 한서(漢書) 속에 감춘 나무 상자를 메고 양반 집안을 찾아다니며 전교하였다.
병인박해가 일어난 2년 뒤인 1868년 무진년에 두 형제는 가락면 상덕리 편도 부락에서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동래 아문으로 끌려간 이들은 배교를 강요받으며 심한 고문을 받았지만, 끝까지 배교를 거부하면서 신앙을 증언하다가 김해읍 왜장대에서 참수당했다.
고문을 하는 사람조차도 이들의 강인한 신앙에 감탄했다고 한다.
순교한 이들 형제의 시신을 조씨 문중의 선산에 매장하려 하였으나, 사학죄인(邪學罪人)이라 하여 문중에서 반대하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웃의 배정문이 그의 집 뒤 언덕에 묻어 주었고,
이때부터 배정문의 후손들은 조씨 형제의 순교 사실을 구전하고 묘소를 계속 관리해 왔다.
(한국천주교성지순례/한국천주교주교회의)
순교자 조씨 형제의 묘는 생곡동 272번지의 배문한 신부 생가 뒷산에 누워 있었다.
자그마 하게나마 주차장까지 마련이 되어 있었다.
남의 땅이지만 양지바르고 아늑한 곳에 형제가 나란히 누워 있다.
성모 수녀회가 세워준 십자가상 뒷편에 매화가 한창 피어나고 있다.
돌을 깎아 세운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며 기도를 바친다.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오다 묘를 써주고 관리해 온 배정문의 후손 배문한 신부의 생가를 들린다.
여기에 성지순례 확인 스템프가 비치되 있다.
배문한 신부의 삼형제가 다 박사이다.
그래서 삼형제박사로 불린다.
원형 그대로 보존된 생가를 둘러본다
지금도 그 후손들이 살고 있다
내려오는 길가 마을에 두 형제의 하느님을 향한 붉은 마음인 양 홍매가 붉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이 백매는 조씨 형제의 시신과 무덤을 거두어 온 배정문, 배문한 신부님의 사랑처럼 우아하고 고귀하다.
생곡 배문환 신부 생가 T : 051)972-8283
관할성당 : 명지 성당 051)271-7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