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158> 수원교구 순례사적지, 안성 성당 210429
새 차를 운전하여 새로운 기분으로 아내와 함께 G80 첫나들이로 안성에 있는 안성성당으로 성지순례를 간다.
천주교 수원교구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을 맞아 수원교구 내 한국 천주교 선조 신앙인들의 박해시대 은신처이자 신앙의 터전이며 교우촌이었던 '안성 성당' '왕림 성당' '용문 성당' '하우현 성당' 네 곳을 수원교구 '순례 사적지'로 선포하고, 2020년 11월 29일부터 2021년 11월 27일까지 사이에 이곳을 순례하고 전대사 조건을 충족한 순례자에게 전대사를 준다고 발표하였다.
안성 성당
본당 설립일 : 1900년 10월 19일
본당 주보 : 착한 의견의 모친
주소 : 경기도 안성시 혜산로 33 (구포동 80-1)
전화번호 : 031-672-0701
안성 본당은 안성과 평택 지역의 모본당으로, 1900년 공베르(Antoine Gombert, 孔安國) 신부가 부임하며 설립되었다. 유서 깊은 교우촌을 기반하여 본당으로 승격했던 다른 본당과는 달리 안성 성당은 설립 당시부터 신자가 많지 않은 도심에 자리를 잡고 천주교 복음을 전파하고자 한 전교 정책에 따라 설정되었다.
설정 당시 안성 본당은 안성, 평택 지역뿐 아니라 충청도의 천안과 진천까지 관할했다. 이후 교세 확장을 통해 1928년 평택 본당, 1938년 천안 오룡동 본당, 1956년 진천 본당, 1958년 미양 본당, 1970년 대천동 본당, 1983년 죽산 본당, 1992년 던지실 본당을 자본당으로 분리시켰다. 1970년 대천동 성당 분리와 함께 '구포동 본당'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본당 설정 100주년인 2000년에 다시 '안성 성당'으로 복구되었다.
안성 본당 초대 주임 공베르 신부는 구국의 교육사업인 안법학교를 설립(1909년, 현 안법고등학교)함으로 개화기. 일제강점기 교육 사목의 큰 역할을 담당했다. 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사업도 함께 펼치며 특히 한국 포도 유래의 효시가 된 안성 포도 등으로 경제와 문화에도 크게 이바지하였다.
공베르 신부가 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1922년 건립한 옛 성당은 서양 고딕 양식과 한옥 양식의 조화를 이루고 있기에 천주교 성당 건축사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 건축사에서도 귀중한 건축 유산이다. 1985년에 경기도 기념물 제82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국가사적지 승격을 위해 준비 중이다.
공베르 신부는 동생 쥘리앵 공베르 신부와 함께 6.25전쟁 때 납북되어 희생되었으며, 근현대 신앙의 증인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어 시복시성 절차를 밟고 있다.
성당 주차장에서 성당으로 올라가는 축대에는 조금 철지난 영산홍이 순례객을 조용히 반기고 있다.
코로나 영향으로 정문까지 닫혀있어서 사람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100주년 로고스 탑' '옛 성당' '100주년 기념성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성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100주년 기념성당' 건립 기공식과 봉헌식을 기록한 머릿돌이 있다.
소나무와 어우러진 옛성당 모습이 신비롭다.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관이다. 코로나로 인해 문이 굳게 닫혀있다.
구포동 성당으로 불렸던 옛 성당의 모습이다. 붉은 벽돌을 사용한 서양의 고딕 양식과 전통적인 목조 한옥 양식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성당의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십자가의 길이 성당을 둘러싸고 있다. 석조 성모상 품 안에 십자가 조각상이 안겨 있다.
100주년 기념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이 성당은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평소에 순례자들을 위하여 내부를 개방하고 있는데,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문이 굳게 잠겨져 있다.
성당 내부의 모습이 궁금하신 분이 있을지도 몰라서 인터넷에서 다른 분의 사진을 빌려왔다. 기둥과 천장, 마루가 모두 나무로 되어있다.
아래로 내려와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 성당'으로 가 본다.
붉은 벽돌의 옛성당 모습을 살리기 위해 전혀 다른 느낌의 노출 콘크리트 기법의 흰색 건물로 지었다고 되어있다.
정문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축복문이 새겨져 있다.
이 성당 역시 문이 잠겨져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 볼 수가 없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안성 성당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