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누정098> 괴산 일가정(一可亭) 220817
소재지 :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유하리 산 1
건립시기 : 조선 고종 (1913년)
촬영일자 : 2022년 8월 17일, 맑음
일가정은 연풍면 유하리 마을 입구 층암절벽 위에 동향으로 위치해 있다. 유하리 마을 중심에는 유하천이 흘러 유하교 근처에서 쌍천에 합류한다. 조선시대 초기 청주 경씨가 양지 쪽에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일가정(一可亭)은 조선 고종 때 북부도사와 평안북도 희천군수를 지낸 경광국(慶光國 1841~1923)이 1913년 향리로 돌아와서 지은 정자이다. 경광국은 김옥균.박영효.서재필 등 개화파와 친분이 두터웠다.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정변의 관리자로 지목되어 유배되었다. 1894년 풀려난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였다가 7년 만에 귀국하였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상소를 올려 조약의 부당성을 주장하였고, 을사오적의 매국행위를 논박하였다. 말년에는 고향인 연풍 유하리에서 여생을 보냈다.



일가정은 자연 암반 위에 지어진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뒤로는 울창한 송림이 에워싸고 냇가를 바라보는 정면은 깎아진 절벽이다. 냇가 너머로는 들판이 펼쳐져 자연경관이 수려한 편이다.













정자 아래 암벽에는 일가정과 경광국 등 여러가지 글씨 각자와 연풍현감을 지낸 현감들의 마애비 3기가 자리하고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유산동문(柳山洞門)이라 새겨진 각자이다. 옛 선인들은 '산수가 수려하고 경치가 빼어나 신선이 사는 곳'을 동천(洞天)이라 하고 그곳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동문(洞門)이라 했다.
아마도 경광국은 말년에 풍진세상을 등지고 고향으로 돌아와 일가정을 짓고 산수를 벗하여 선비들과 시를 즐기면서 사는 세상이 유산동문이라고 생각했던듯 하다.





일가정의 앞쪽 들판에는 사과가 한창 익어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