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동구릉 썸네일형 리스트형 <조선왕릉> 동구릉의 수릉 원릉 경릉(3) 191212 조선왕조 500년의 통치이념인 유교에서는 인간이 죽으면 혼(魂)과 백(魄)이 분리된다고 믿었다.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은 조상의 혼백을 모시기 위해 집을 지었는데, 무덤(墓)을 만들어 백을 모시고 사당(廟)을 지어 혼을 모셨다. 왕가에서의 왕족의 삶의 공간이 궁궐이고, 왕족의 무덤이 왕릉이며, 왕실의 사당이 종묘이다. 또한 왕실은 일반대중에게 위엄과 모범을 보여야 함으로 궁궐도 왕릉도 종묘도 규모의 크기와 함께 격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조선왕조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편찬하고 오례(吉禮.嘉禮.凶禮.軍禮.賓禮)를 이 기준에 따랐다. 따라서 왕릉을 조성할 때도 철저히 국조오례의를 준수했으며, 단지 지형에따라 위치나 모양이 변형되는 경우는 있었다. 동구릉에 있는 ..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