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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사적지

<국내성지172> 황석두 성인 안장지, 삽티 성지 220121 삽티는 내포의 사도 이존창이 홍산으로 피신하여 선교 활동을 한 시절부터 교우들이 숨어 살기 시작한 곳이다. 1850년대에 충북 연풍에서 배척받은 황석두 루카 성인은 가족들과 삽티로 이주하였다. 황석두의 양자 황천일 요한과 조카 황기원 안드레아도 여기에 살았다. 황석두 성인은 인근 산막골에서 선교사 페롱(Feron) 신부를 보필하면서, 하부 내포의 산골 교우촌들을 순회하여 돌보았다. 병인박해로 1866년 3월 30일에 갈매못에서 성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와 함께 순교한 황석두 성인의 시신을 황천일과 황기원이 수습하여 그해 5월에 여기 삽티에 안장하였다. 이 때문에 황천일과 황기원이 홍산 관아에 체포되어 서울에서 순교하였으며, 56년 뒤에 황기원의 딸 황 마르타가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병인년) 4월 1.. 더보기
<국내성지170> 경주 관아와 옥 터(성건 성당) 211229 경주 관아와 옥 터는 천주교 신자들이 사학 죄인으로 몰려 관장 앞에 끌려가 문초와 형벌을 받았던 곳이다. 1815년 을해박해 때에는 고성운 요셉, 고성대 베드로, 구성열 바르바라, 최봉한 프란치스코, 서석봉 안드레아, 김윤덕 아가타 막달레나, 안치룡 등 40여 명이 고초를 당하였다. 최양업 신부의 편지에 따르면 1860년 경신박해 때에도 10명의 신자들이 경주 관아와 옥에서 문초를 당했다고 한다. "10명이 경주 감옥에 갇혀 있는데 3명은 문초를 당할 때 용감히 신앙을 증거하고, 지금까지 감옥에서 고초와 굶주림과 병고로 고생하며 함구합니다. 그들 중 16세 된 소년이 있는데, 옥 사장에게 간청하여 아버지와 같이 형장에 나가게 해 달라고 애원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을 뜨겁게 하였습니다......"(최.. 더보기
<국내성지167> 경상감영 사형터, 비산(날뫼) 성당 211228 현재 대구 비산 성당 자리는 경상 감영의 사형 터 가운데 하나로 '이 알로이시오 곤자가'의 선대 때부터 신자들이 살았다.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 따르면 '날뫼'에 교우촌이 이루어지기까지 '어떤 노파'의 노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도시(대구)에 아주 열심한 노파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 노파는 많은 사람들에게 교리를 설명하여 많은 신자들로 이루어진 교우촌(날뫼로 추정)을 세웠고, 철저한 교리 교육과 신심의 모범으로 그 교우촌을 지탱하여 왔습니다"(최양업의 열아홉 번째 서한). 병인박해로 관덕정에서 순교한 이윤일 요한 성인의 시신을 날뫼 뒷산에 묻었던 이응칠 가족도 이곳에 살았으며, 1887년 로베르 신부의 사목 보고서에 따르면 30명의 신자가 날뫼에 살았다. 대구대교구가 설정된 뒤 신자들이 늘어나.. 더보기
<국내성지166> 순교 사적지, 경상 감영과 옥 터 211228 경상 감영은 조선 시대 경상도 지역의 행정 중심지이며 천주교인들에게는 신앙을 증언한 곳이자 순교한 순교지이다. 1815년 경상도 북부와 강원도 남부 지방에 을해박해가 일어나자 청송 노래산, 진보 머루산, 일월산 곧은정, 우련밭에 있는 신자들이 붙잡혀 감영으로 이송되어 취조를 받았다. 그들 가운데 김윤덕 아가타 막달레나는 장사(杖死)하고, 최봉한 프란치스코, 김시우 알렉시오, 서석봉 안드레아, 김흥금, 김장복, 안치룡 등은 경상 감영 옥에서 옥사하였으며, 살아남은 7명은 대구 관덕정에서 참수형을 당하였다. 또한 1827년 정해박해의 여파로 상주 잣골, 상주 멍에목, 상주 앵무동, 봉화 곰직이에 살던 신자들이 체포되어 경상 감영으로 이송되었다. 이들 가운데 박경화 바오로, 김세박 암브로시오, 안군심 리카르도.. 더보기
<국내성지157> 당진 황무실 성지 210324 주소 : 충남 당진시 합덕읍 석우리 1013 관할 : 신합덕 성당 041-362-5947 황무실은 오래된 교우촌으로 충청도 내포 지역에 복음이 전해진 직후 1785년경부터 신자들이 거주하였다. 초기 신자로 알려진 유군명(시메온)은 입교한 뒤 종들을 면천하여 일찍부터 하느님 안에서 평등을 실현하였다. 100여 명의 신자가 거주했던 황무실 교우촌은 박해 중에 숨어서 활동하던 프랑스 선교사들의 안식처였다. 이 때문에 프랑스에서 도입된 영해회(일명 성영회) 사업이 일찍부터 시작되었으며 고아들을 입양하여 가족으로 삼았다. 이곳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 가운데 메스트르(Maistre) 신부와 랑드르(Landre) 신부가 각각 1857년과 1863년에 병으로 선종하여 묻혔다. 황무실의 첫 순교자로 기록된 이보현(프란치스.. 더보기
<국내성지155> 보령 서짓골 성지 210323 주소 : 충남 보령시 미산면 평라리 438-3 전화번호 : 041-836-9625 http://cafe.daum.net/southnaepo(하부 내포 성지) 1866년(병인년) 3월 30일 갈매못에서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와 루카 위앵 신부와 베드로 오매트르 신부와 장주기 요셉과 황석두 루카가 참수되어 그 시신이 모래자갈 속에 방치되었다. 두 달 뒤, 황석두 성인의 시신은 가족들의 손으로 수습되어 삽티에 안장되었다. 그 뒤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 등 순교자 4위의 시신은 서짓골에 살던 신자들에 의해 9월 1일(음력 7월 15일) 이곳에 묻혔다. 목숨 걸고 순교자의 시신을 매장한 서짓골 신자들은 몇 달 후 체포되어 서울에서 처형되었다. 그래서 한동안 순교자들의 무덤을 지킬 사람이 없다가, 16년 뒤인 1882.. 더보기
<국내성지154> 부여 도앙골 성지 210323 주소 : 충남 부여군 내산면 금지로 302 전화번호 : 041-836-9625 http://cafe.daum.net/southnapo(하부 내포 성지) 도앙골은 부여, 보령, 서천의 3개 시군이 맞닿은 월명산 아래 깊은 계곡 안에 있는 마을이다. 이곳은 산길이 맞닿는 계곡의 막다른 지점으로, 하부 내포의 산간 지역에 숨어 살던 신자들이 연통하기 수월하였다. 도앙골 교우촌은 최양업 토마스 신부가 조선으로 귀국한 이후 첫 번째 편지를 쓴 곳이다. 최양업 신부는 천신만고 끝에 1849년 말 귀국하여 전국 곳곳의 신자들을 찾아 열 달 동안 고된 순방을 마치고, 이곳의 신자 집에서 귀국 뒤 활동 보고서로서 첫 편지를 썼다. 편지에서 도앙골 같은 산골에 사는 신자들과 근처 산골에 사는 신자들은 평야 지대의 신자들보.. 더보기
<국내성지152> 원주 강원감영 210305 강원 감영은 조선 시대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지이다. 이곳에서 순교한 김강이 시몬, 최해성 요한, 최 비르지타는 2014년 시복되었다. 김강이 시몬은 충청도 서산 출신으로 입교 뒤 전라도 고산 땅에 살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부터 피신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1815년 을해박해 때 강원도 울진에서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고문으로 생긴 상처와 이질로 옥사하였다. 최해성 요한은 최경환 성인의 일가로 신유박해 때 조부가 유배된 충청도 다락골(청양)에서 원주 서지(부론)로 이주하여 교우촌을 이루었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21차례의 심문과 18차례의 고문을 당한 뒤 참수 치명하였다. 최 비르지타는 황사영 알렉시오를 숨겨 준 죄목으로 유배당한 남편이 죽자, 오빠가 사는 서지 마을에 와서 살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