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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이야기/경기도

<조선왕릉> 고양 서삼릉(1), 효릉 231018

지난 2021년 4월 20일 고양 서삼릉 중 희릉과 예릉을 답사하고 효릉을 답사하지 못해 그동안 여러 차례 효릉 답사 신청을 하였으나 코로나, 구제역 등 여러 이유로 답사 허가를 받지 못하다가, 금년 9월부터 젖소개량사업소 후문 쪽에 효릉을 방문할 수 있는 길을 만들고 하루 3회, 회당 30인 이내로 사전 인터넷 예약을 통해 답사가 가능해졌다.
 

 
예약시간 10분전까지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201-102 어쓰120 카페 주차장에 파킹을 하고 길 건너편 서삼릉 효릉 후문 입구에 대기하면 된다.
 

 
이곳에선 효릉과 조선왕실 태실, 왕자 왕녀 후궁의 묘, 회묘를 차례로 관람하게 된다.
 

 
방명록에 기록을 하고 전속 해설사의 안내를 받아 먼저 효릉쪽으로 간다.
 

 
철문 저쪽이 젖소개량사업소 영내인데, 사진에 보이는 박스 안에서 전신 소독을 마친 후 젖소개량사업소 영내로 들어간다.
 

 
재실이 있던 자리
 

 
능지가 있던 자리, 왕능 안에 있는 건물들이 전부 목재 건물이어서 왕능에는 방화수용 연못을 두었다.
 

 
금천교
 

 
효릉(孝陵)은 조선 제12대 인종과 인성왕후 박씨의 능이다. 인종(仁宗, 1515~1545, 재위 1544~1545)은 중종과 장경왕후의 아들로, 1520년(중종 15)에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544년 창경궁에서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재위 9개월만에 1545년(인종 1) 31세로 세상을 떠났다.
인성왕후(仁聖王后, 1514~1577)는 박용의 딸로 1524년(중종 19)에 왕세자빈에 책봉되었고, 인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다. 1577년(선조 10) 64세로 세상을 떠났다.
효릉은 쌍릉의 형식으로 앞쪽에서 바라보았을 때 서쪽이 인종, 동쪽이 인성왕후의 능침이다. 1578년(선조 11) 인성왕후의 능침을 조성하면서 인종의 능침에 병풍석을 추가로 설치하였다.
 

 
홍살문
 

 
향로와 어로
 

 
배위(판위)
 

 
정자각
 

 
효릉 정자각에는 취두(鷲頭 : 독수리 머리)가 설치되어 있다. 조선 왕릉 중 유일하게 효릉 정자각에만 취두가 설치되어 있다는 해설사의 설명이다.
 

 
정자각
 

 
좌우에 한 칸씩의 축대가 더 붙여져 있다.
 

 
정자각의 정면에서 볼 때 인종의 능침만 보인다. 이는 인종이 죽을 때 장례를 간소화 하라는 유언에 따라, 33년 후 인성왕후 능침 조성시 정자각의 방향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로에서부터 능침영역이 무척 가파르다.
 

 
능침영역은 출입이 금지되어 올라갈 수가 없다.
 

 
예감과 덮개
 

 
산신석이 특이하다.
 

 

 
비각
 

 
비석에는  '조선국 인종대왕효릉 인성왕후부좌' 라고 쓰여 있다.
 

 
수라간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수복방의 주춧돌만 남아 있다.
 

 

 
조선왕실 태실군
 

 
조선왕실 왕자 . 왕녀묘
 

 
조선왕실 후궁묘
 

 
조선 10대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의 회묘
 

 
장명등의 조각이 화려하다.
 

 
이로써 조선왕릉 40기의 답사를 전부 완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