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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국내성지029> 침묵의 순례지, 일만위 순교자 현양동산 181115 한국 천주교회는 적게는 1만 명, 많게는 3만 명의 순교자가 있다고 하지만, 우리에게 이름이 알려진 순교자는 2천 명도 채 안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수많은 순교자들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에 2001년 당시 인천교구장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는 강화도에 '일만 위 순교자 현양동산'을 조성하여, 이를 한국의 순교자들 특히 무명 순교자에게 봉헌하였다. 또한 이곳은 인천교구가 2004년에 설립한 '바다의 별 청소년 수련원'과 인접하여 있어 젊은이들과 자연과 순교자들이 어우러지는 '침묵의 순례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양동산에는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무명 순교자들의 흔적을 묵상할 수 있도록 조성된 무명 순교자의 길이 있고, 묵주 연못, 무명 순교자상, 십자가의 길, 일만 위 순교자 현양탑,.. 더보기
<국내성지003> 첫 영세자 이승훈의 묘(반주골) 180219 우리나라 최초 영세자 이승훈은 1756년 태어나 24세의 젊은 나이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길을 단념하고 서학 연구에 매진하였다. 또한 그는 마재 정씨 가문 정약용의 누이동생과 혼인하여 그들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게 된다. 당대의 석학 이벽과도 교분을 맺은 이승훈은 사신이 된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가 1784년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한국 최초의 영세자가 된다. 영세 후 이벽, 정약전 형제, 권일신 등에게 세례를 베풀고 1785년에는 서울 명례방 김범우의 집에서 종교 집회를 가지는 등 신자 공동체를 형성시켜 천주교회를 설립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나 박해가 시작되자 집안의 압력으로 천주교 신앙을 배교하면서 괴로워하였다. 1786년 다시 교회로 돌아왔고, 마침내 1801년 신유박해 때 이가환, 정약용,..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