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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성지순례/인천교구

<국내성지003> 첫 영세자 이승훈의 묘(반주골) 180219

우리나라 최초 영세자 이승훈은 1756년 태어나 24세의 젊은 나이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길을 단념하고 서학 연구에 매진하였다.

또한 그는 마재 정씨 가문 정약용의 누이동생과 혼인하여 그들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게 된다.

당대의 석학 이벽과도 교분을 맺은 이승훈은 사신이 된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가

1784년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한국 최초의 영세자가 된다.

 

영세 후 이벽, 정약전 형제, 권일신 등에게 세례를 베풀고 1785년에는 서울 명례방 김범우의 집에서 종교 집회를 가지는 등

신자 공동체를 형성시켜 천주교회를 설립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나 박해가 시작되자 집안의 압력으로 천주교 신앙을 배교하면서 괴로워하였다.

1786년 다시 교회로 돌아왔고, 마침내 1801년 신유박해 때 이가환, 정약용, 홍낙민 등과 함께 체포된 후 4월 8일 참수되었다.

 

이승훈 베드로부터 시작된 신앙은 그의 후손들에게도 이어져

아들 이신규(마티아)를 비롯해 4대에 걸쳐 5명의 순교자를 내었다.

 

이승훈 베드로의 묘소는 지방문화재 제 63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으나

그의 유해는 1981년 경기도 광주군 천진암성지에 옮겨져 안장되었고 여기는 가묘와 비석만 남아있다.

 

(한국천주교성지순례/한국천주교주교회의)

 

 

 

 

묘소 진입로 약 200m 전방에 차량이 진입할 수 없도록 차단시설이 설치되있어서 걸어서 가야한다.

 

 

 

오른쪽으로 인천시 남동구 정수장이 있다.

 

 

장수배수지 시설 오른쪽에 있는 정자 우측으로 내려간다.

 

 

 

묘역 전경이 보인다.

 

 

 

비석과 함께 이승훈의 묘역이다. 돌아가면서 사방을 둘러본다.

 

 

 

 

 

 

 

 

 

 

나무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순교자 삼남 이신규(마티아)와 장남 이택규(비신자)의 묘가 있다.

 

 

 

 

 

오른쪽으로 길게 산길을 따라 십자가의 길 14처가 마련되있다.

 

 

 

 

 순례를 마치고 되돌아 내려오는 길이다.

 

 

 

 이 성지는 인천교구 만수1동성당에서 관리한다.

성당과 성지는 자동차로 5분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다.

성지순례 확인 스템프는 이 성당 사무실에서 찍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