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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성지순례/서울대교구

<국내성지002> 한국천주교의 상징, 주교좌 명동대성당 180213

민속 명절 설을 앞두고 한국 천주교의 상징이자 심장인 명동대성당을 찾았다.

오전 일찍 찾아간  명동대성당은 고요속에 엄숙히 서있고 하늘의 서광인양 태양의 후광이 빛난다.

 

 

 

 

명동대성당은 한국 천주교가 탄생한 곳이자 첫번째 본당이다.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한뒤 귀국하여 명례방(지금의 명동)에 있던 김범우의 집에서 신앙공동체를 형성하고 신앙집회를 갖기 시작하였다

이로써 한국인 고유의 힘에 의해 한국 천주교가 탄생하였고, 이를 금지하는 위정자들에 의해 탄압을 받고 집주인 김범우는 최초의 순교자(1786년)가 된다.

 

그 후 1882년부터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블랑 주교가 이 집과 주변터를 매입했고 1887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우여곡절 끝에1898년 5월 29일에 봉헌하게 된다.

그리하여 한국천주교의 첫번째 본당이 됐다.

 

지하 묘역에는 기해 병인박해 당시 순교자들과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로 순교한 앵베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의 유해가 안치되 있다.

 

 

 

 

 

 

명동대성당은 한국천주교의 상징이자 심장이다.

 

명동성당은 서울대교구의 교구장 대주교의 주교좌가 있는 성당으로

 교구장에는 고 김수환 추기경, 정진석 추기경에 이어 현재는 염수정 추기경이 착좌하고 있다.

병인박해이후 전국적으로 설립되는모든 지역 본당의 모(母) 본당으로써 하나의 모델이었고,

모든 본당들의 중심이요 안내자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

 

 

 

 

 

 

 

 

 

명동대성당은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지어진 대규모의 고딕 양식 교회당이다.

 

프랑스에서 온 유진 코스트 신부가 교회의 설계와 공사 감독을 맡아서 지은 명동성당(당시 종현성당)은

순수한 고딕 양식의 대규모 건물로 그 문화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어

1977년 11월 22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 258호로 지정되었다.

 

 

 

 

 

 

 

 

 

 

명동대성당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성지로도 불린다.

 

1980년대에는 민주화 운동에 관련된 수배자나 시위대가 군사독재정권의 탄압을 피해 명동성당으로 모여들어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 나를 밟고, 신부를 밟고, 수녀를 밟고 가라 "는 일성이 결국은 민주화의 촉진제가 되는 기적을 이루었다.

 

 

 

 

 

 

명동대성당은 천주교 신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는 안식처이다.

괴로움이나 마음속 방황을 하고 있을 때면 누구나 언제나 성당안 의자에 앉아 마음을 다스리면 차분한 안정을 얻을 수 있다.

 

 

 

 

 

 

 

명동대성당은 누구에게나 데이트코스로도, 산책코스로도, 무언가 갈망하는 기도처로도 좋은 명당이다.

 

 

 

 

 

 

 

 

 

 

 

 

2차 방문  (2019년 1월 23일)

 

 

 

 

 

 

 

 

 

 

 

 

 

 

 

 

 

 

 

 

 

 

 

 

3차 방문  (2019년 9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