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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이야기/경기도

<조선왕릉> 동구릉의 건원릉과 목릉(2) 191204

조선왕릉은 시조인 태조대왕 부터 27대 순종황제까지 총 42기의 왕릉이 있다. 42기중 북한 개성에 있는 제릉과 후릉을 제외한 40기의 능이 남한에 있다.

519년의 역사를 지닌 조선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아 조상에 대한 존경과 숭모를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겨 역대 왕과 왕비의 능을 엄격히 관리하여 하나도 훼손되거나 인멸되지 않고 모두 제자리에 완전하게 보존되었다.

500년이 넘는 한 왕조의 무덤이 이처럼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은 세계에 그 유례를 찾기 힘들며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선왕조를 창업한 태조 이성계의 능인 건원릉을 보기위해 구리시의 동구릉으로 갔다.

동구릉(東九陵)은 서울을 기준으로 '동쪽에 있는 아홉 개의 능역'이라는 뜻으로 조선 왕실 최대 규모의 왕릉군이다.

1408년에 태조의 건원릉이 처음 조성되었으며, 이후 역대의 여러 왕과 왕비의 능이 다양한 형식으로 조성되었지만 건원릉이 조선왕릉의 기준이고 표본이 되었다.

 

 

매표소를 지나면 금방 동구릉 전체 홍살문이 나온다.

홍살문은 왕릉의 들머리임을 알려주는 건축적 장치로 이곳을 지날 때는 몸과 마음가짐을 엄숙히 하고, 여기에 모셔진 분들에게 경건한 예를 갖추라는 뜻으로 세워진 것이다. 혹은 홍전문이라고도 한다.

 

 

재실(齋室)

재실은 평상시 능참봉 등 능역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근무하는 곳이며, 제례시에는 제관들이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재실(제관들이 제사준비)과 안향청(제기와 향을 보관)

 

 

출입문과 행랑채

 

 

건원릉(健元陵)

 수릉과 현릉을 지나 세번째 능역이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이다.

이성계는 1392년에 개경에서 왕위에 올라 조선왕조를 열었고, 도읍을 한양으로 옮겨 7년간 왕위에 있었으며, 1408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건원릉을 비롯한 조선왕릉은 세개의 공간으로 나뉘고, 각 공간의 성격에 맞는 건축물과 조형물이 왕릉의 전체적인 조경과 조화를 이루며 조성되어 있다.

 

능침공간 : 왕과 왕비의 봉분(능침,능상)이 있는 성역 공간

제향공간 :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하는 영역으로 제사를 지내는 공간

진입공간  :  왕릉의 관리와 준비를 위한 공간

 

 

금천교(禁川橋)

왕릉의 금천을 건너는 다리로서 속세와 성역의 경계 역할을 한다.

재실에서 금천교까지가 진입공간으로 왕릉의 관리와 제향 준비를 위한 공간이다.

 

 

홍살문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문

 

 

향로(香路)와 어로(御路)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길. 참도라고도 한다.

왼쪽의 약간 높은 길은 신도로서 제향때 향을 들고가는 길이라 하여 향로라 하고, 오른쪽은 임금이나 제관이 다니는 길이라하여 어로라 한다.

 

 

배위(拜位)

헌관이 제례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곳으로 이곳에서 혼백을 부르고 절을 4배한다.

 

 

정자각(丁字閣)

제사를 모시는 건물로 제향공간의 중심적 건축물이다.

정청과 배위청으로 나뉘어지며 두개가 합쳐진 모양이 정(丁)자 같다하여 정자각이라 한다.

 

 

 

동쪽(시작과 탄생)에서 서쪽(끝과 죽음)을 바라보며 배위청으로 오른다

 

 

 

 

정청

 

 

 

수라청

정자각 왼쪽에 있는 건물, 재실에서 준비해온 음식을 진설 준비하는 곳

 

 

수복방

정자각 오른쪽 건물, 능원지지가 근무하는 공간이다.

 

 

비각(碑閣)

신도비와 표석을 보호하는 건물

 

 

신도비(神道碑)

건국과정을 비롯하여 생애와 업적을 기리고자 태조의 일대기를 돌에 새겼다.

권근이 비문을 짓고, 변계량이 비음기를 지었으며, 정구가 전액을 쓰고, 성석린이 비문글씨를 썼다.

뒷면에는 개국공신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표석(標石)

묘호와 능호를 새긴 비석이다.

 

 

홍살문에서 여기까지가 혼령과 참배자의 공동공간인 제향공간이고, 다음은 혼령이 쉬고 있는 성역인 능침공간이다.

왕릉 보호를 위해 여기서부터는 출입금지가 되어 있어서 진입을 할 수가 없다.

망원렌즈를 사용하여 확대시켜 본 능침(봉분)의 모습이다

 

 

 

건원릉의 특징은 봉분이 억새로 덥혀 있다는 점이다.

말년에 고향을 그리워하며 그곳에 묻히기 원했던 태조를 위해 태종이 태조의 고향 함경도 영흥의 흙과 억새를 가져다 건원릉 봉분에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조선왕릉동부지구관리소(031-563-2909)에서는 2019년 10월 19일부터 11월 17일까지  1일 2회 회당 40명씩 사전예약제로 특별개방을 실시하였다.

억새가 가장 아름다운 기간이어서 반응이 좋아 앞으로도 계속 실시할 예정이라한다.

또한 억새는 자주 베면 죽어버리기 때문에 매년 한식날에 억새베기를 한다고 한다.

 (사진출처 : 다음백과)

 

 

능침공간의 조형물들을 살펴보기 위해 건원릉의 동편에 있는 선조의 목릉(穆陵)으로 갔다.

목릉(穆陵)은 조선 14대 임금 선조(제위 1567-1608년)와 의인왕후 박씨, 계비인 인목왕후 김씨의 능이 있는 곳이다.

 

 

목릉은 조선왕릉 중 아래와 같은 4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1. 한곳의 능원에서 각각 다른 능선(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경우를 동원이강릉(同園異岡陵)이라 부르는데, 목릉은 세곳의 능선에 능을 조성한 유일한 곳이다.

2. 참도의 형태가 일자형이 아니고 지형에 따라 세 갈레로 나뉘어져있다.

3. 정자각이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다포형식으로 지은 건물로서 다른 정자각보다 화려하다.

4. 동구릉에서 유일하게 능침공간의 일부를 공개하고 있다. 현재 인목왕후 능침이 공개중이다.

 

 

정자각 쪽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에 선조의 능, 가운데 언덕에 의인왕후의 능, 오른쪽 언덕에 인목왕후의 능이 있다.

인목왕후의 능 앞에 출입금지 울타리가 없고 능침이 개방되어 있다.

 

 

 

능침공간에 올라 각 조형물의 배치상태를 관람해 본다.

 

 

능침공간은 상계 중계 하계로 단차를 두었으며

 하계의 좌우에 무석인이 있고 그 옆에 석마가 있다. 그보다 한단 높은 중계에 좌우로 문석인과 석마가 배열해 있다.

조선시대 숭유정책으로 무관보다 문관을 우대한 흔적이 들어나 있다.

무석인과 문석인의 조각이 조선왕릉 중 가장 조잡하다는 평인데, 아마도 임진왜란을 겪으며 석공들이 죽고 잡혀가서 실력있는 석공이 없었으리라는 추측이다.

 

 

중계의 가운데 장명등이 있고, 한 단 위인 상계에 장방형의 석상인 혼유석이 있고 그 좌우로 망주석이 있다.

 

 

 

능침(봉분) 둘레로 병풍석은 없고 난간석만 능침을 둘러싸고 있다.

 

 

봉분의 동북서를 둘러 놓은 곡장 안쪽에 좌우로 네 쌍의 석호.석양이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건원릉이 조선왕릉 조성제도의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목릉은 조선왕릉을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