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에서는 인간이 죽으면 혼과 백이 분리되어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덤을 만들어 백을 모시고 사당을 지어 혼을 섬긴다.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출발한 조선왕실은 왕릉을 조성하여 백을 모셨고 사당인 종묘(宗廟)를 지어 역대 왕과 왕비의 혼이 깃든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올리며 섬겨왔다.
오늘은 태조 이성계가 도읍지인 한양에 종묘를 건설(1395, 태조 4)한지 624년이 흐르도록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침묵 속에 자리를 지켜온 종묘를 찾아 답사를 한다.
서울시 종로구 훈정동에 있는 종묘는 오전 9시 20분부터 시간제 예약을 받아 해설사 동반하에 관람이 가능하고 매주 토요일은 9시부터 자유관람이 허용된다.
나는 종묘의 전체 윤곽을 보기위해 우선 입구의 종로대로 건너편에 있는 세운상가 9층 전망대에 올라 전체 윤곽을 조망해 본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종묘는 출입문과 정전의 지붕만 시야에 들어올 뿐 전부가 울창한 숲속에 잠겨있다. 혼령들이 조용히 잠자는 공간임이 느껴진다.
종묘 표지목 옆에 하마비와 금천교가 있고 매표소를 거쳐 정문인 외대문을 통과하면 전체 윤곽을 파악할 수 있는 설명판 옆에 건물의 배치도가 있다.
금천교
외대문
건물 배치도
종묘는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종묘제례와 제례악은 2001년 '인류 구전 및 무형 유산 걸작'으로 등재되었다.
신로는 종묘제례 등 의식을 위하여 만들어진 길이다. 가운데가 약간 높고 양 옆이 약간 낮은 세 길중, 가운데 길은 신주와 향.축이 들어가는 신로, 동측의 길은 왕이 다니는 어로, 서측의 길은 세자가 다니는 세자로이다. 신로를 따라가다보면 재궁과 전사청 앞에서 옆으로 꺾고 정전을 앞에 두고는 왼쪽으로 돌아 신문 앞에서 다시 정전을 향해 곧게 나아가게 된다. 월대 위에는 오직 신도만이 뻗어 있다.
신로를 따라 바로 정전으로 간다. 정전은 신주를 모시는 종묘의 중심부분으로, 긴 정전의 앞에는 넓은 월대를 두었고 사방으로 담장을 둘렀다. 남쪽 신문으로는 혼령이, 동문으로는 임금을 비롯한 제관들이, 서문으로는 제례악을 연주하는 악공과 춤을 추는 일무원들이 출입했다. 남쪽의 신문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간다.
한없이 넓은 공간과 허리 높이까지 오는 월대와 그 위에 장엄하게 업드려 있는 긴 정전의 웅장함과 엄숙함에 압도당하여 말을 잊어버린다.
월대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교수는 그의 저서'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종묘의 정전을 보고 아래와 같이 말했다.
'종묘 정전은 우선 그 크기가 압권이다. 동서로 117미터 남북으로 80미터의 담장을 두른 이 정전은 예상을 깬 그 길이가 주는 장중한 자태가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정문인 남쪽의 신문을 들어서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길이의 기와지붕이 지면을 깊게 누르며 중력에 저항하고 있다. 지붕 밑의 깊고 짙은 그립자와 붉은색 열주는 이곳이 무한의 세계라는 듯 방문객을 빨아들인다. 일 순 방문객은 그 위엄에 가득찬 모습에 침묵하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된다.....
1935년에 처음 건설된 정전은 신실 7칸의 작은 규모였으나 여러차례 늘려지어 현재는 19칸에 이르는 매우 긴 목조 건물이 되었다. 정전에는 공덕이 뛰어난 임금들을 모시고 있는데, 19칸의 신실에 태조를 비롯한 왕과 왕비의 신위 49위를 모시고 있다.
임금을 포함한 모든 제관들은 향대청과 재궁에서 어로를 따라 동문으로 들어와서 어로를 통해 회랑으로 오르고 회랑에서 진설과 제향행사를 하게된다.
정전 담장 안에는각 임금의 공신을 모신 공신당과 천지자연을 관장하는 일곱 신을 모신 칠사당이 배치되어 있다. 한 공간에 있지만 이것들 사이에도 엄격한 위계가 있어서 칠사당과 공신당은 월대 아래 별도의 작은 건물에 모셔져 있다.
공신당에는 모두 83명의 대신이 배향되어 있다. 각 임금마다 많게는 7명, 적게는 2명이다. 종묘의 공신당에 배향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명예이고 가문의 영광이다.
칠사당은 일곱의 작은 신들에게 왕실과 궁궐의 모든 일과 만백성의 생활이 아무 탈 없이 잘 풀리도록 기원하는 사당이다. 칠사는 '봄의 사명과 사호, 여름의 사조와 중류, 가을의 국문과 공려, 겨울의 국행'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에게는 모두 낮선 이름이다. 칠사에게 지내는 제사는 토속 신앙과 유교 사상이 결합된 국가 의례였다.
서문을 나와 영녕전으로 간다. 영녕전은 정전에 있던 신주를 옮겨 모시기 위해 1421년에 지은 건물로, '영녕'은 '왕가의 조상과 자손이 길이 평안하라'는 뜻이다.
시설과 공간 형식은 정전과 유사하지만 정전보다 규모가 작고 좀 더 친밀하게 지어졌다. 정전과 유사하게, 이중으로 된 월대 주위에 담장을 두르고 동.남.서 세 곳에 문을 두었다.
영녕전은 원래 6칸 규모였으나, 여러차례 좌우에 칸을 만들어 현재 신실은 모두 16칸이다. 가운데 4칸은 태조의 4대조를 모신 곳으로 좌우 협실보다 지붕이 높다. 16칸의 신실에 16분의 왕(왕비까지 34위)을 모시고 있다.
건국 초기 종묘를 건설할 당시 규범으로는 5대조까지 모시게 되어 있으나, 지나간 조상의 신주를 땅에 묻어버릴 수 없어 별묘를 만들어 계속 모시게 된것이 영녕전이다.
정전의 마지막 신실인 제19실에는 순종을 모셨고, 영녕전의 마지막 신실인 제16실에는 영친왕을 모시면서 종묘의 신실이 다 찼다. 헌종 2년(1836)에 마지막 증축을 할 때 이보다 더 큰 규모로 증축을 했으면 조선왕조의 종말이 더 연장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엉뚱한 생각을 떠올려본다.
다음은 종묘의 부속 건물을 답사할 차례다. 원래 평일에 안내원 인솔 관람 때는 부속 건물을 먼저 관람하고 정전으로 간다.
향대청은 제례 때 쓰는 향, 축, 폐를 보관하는 장소이자 제향에 나갈 제관들이 제복으로 갈아입고 대기하던 곳이다. 지금은 전시실과 영상실을 설치하여 전시실에는 종묘대제 제수진설을 재현해 두고 있고, 영상실에서는 종묘제례 영상물을 상영해주고 있다.
향대청 앞의 중연지이다. 연못이 네 모인것은 땅을 의미하고 가운데 둥근 동산은 하늘을 뜻한다. 가운데 동산에는 통상 소나무를 심는데 여기는 향나무를 심었다.
다음은 재궁이다. 재궁은 임금이 세자와 함께 제사를 준비하던 곳으로 어재실 또는 어숙실이라고 불린다. 북쪽에 임금이 머무는 어재실, 동쪽에 세자가 머무는 세자재실, 서쪽에 어목욕청이 있다. 임금과 세자는 재궁 정문으로 들어와 머물면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후 서문으로 나와서 정전의 동문으로 들어가 제례를 올렸다.
어재실
세자재실
어목욕청
다음은 정전 건물과 맞붙은 전사청으로 간다. 전사청은 종묘제례에 쓰는 음식을 마련하는 곳으로 평소에는 이곳에 제사용 집기들을 보관하였다. 'ㅁ'자 모양의 건물로 마당에는 음식을 준비하던 돌절구들이 남아있다. 수복방은 종묘를 지키는 관원들이 사용하던 곳이며, 그 앞에 찬막단과 성생위가 있다. 찬막단은 제사에 바칠 음식을 상에 올리고 검사하는 곳이며, 성생위는 제물인 소.양.돼지를 검사하는 곳이다. 전사청 동쪽에는 제사용 우물인 제정이 있다. 전사청 건물은 잠겨있어 들어갈 수가 없다.
전사청
찬막단
제정
종묘 답사의 마지막 코스는 정전과 영녕전에서 내려오는 길에 있는 악공청이다. 악공청은 종묘제례에서 음악을 담당하는 악공들과 무원들이 대기하는 장소이다. 정전과 영녕전이 각각 따로 악공청을 두고 있다. 이를 보면 종묘제례에서 음악과 춤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것 같다.
참고로 매년 5월 첫째 일요일과 11월 첫째 토요일에 종묘제례가 열린다. 2,200석에 가까운 관람석을 마련하고 일반인의 관람을 환영하고 있으니 누구나 참관이 가능하다.
경건하고 엄숙한 종묘제례와 음악과 춤이 함께 어우러지는 장엄한 종묘제례악까지 보아야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있다니 꼭 참관해볼 일이다.
정전 악공청
영녕전 악공청
종묘제례악
내일이면 2019년도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올 한해 열심히 저의 블방을 찾아주시고 댓글 달아주신 벗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송구영신 잘 하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내년에도 또 뵙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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