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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누정/광주.전라도

<한국누정328> 함평 영파정(潁波亭) 241104

소재지 :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읍 사장길 39 (기각리)

건립시기 :세조 1년(1455), 1820년 재건축, 고종 20년(1883) 보수

문화재지정 :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

답사일자 : 2024년 11월 4일,  맑음

 

 

영파정(潁波亭)은 세조 1년(1455) 단종의 폐위와 세조의 왕위찬탈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영파 이안(潁波 李岸,1414~?)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건물이다.

처음 세운 시기는 1450~1460년대로 추정한다. 그 후 영파정은 함풍이 씨 가문에서 관리해 온 것으로 보이는데 자세한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정유재란(1597) 중에 불에 타 없어진 후 영수정이란 이름으로 다시 지었으며, 1820~1821년 사이에 군수 권복과 김상직이 현재와 같은 규모로 지었다. 그 뒤 고종 20년(1883) 크게 보수하고, 1966년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안(李岸)은 자는 야부(野夫) 호는 영파(潁波), 본관은 함풍, 시조 함풍부원군 광봉의 9 세손이며, 경복궁 제거 유의 둘째 아들로 충남 천안의 직산리에서 태어났다. 19세인 1432년(세종 14)에 사마시에 입격 하였고 성학정신에 투철하였으며 역학에 정통하였다. 1454년에 박팽년의 천거로 남부참봉에 제수되었으나 1455년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양위하니 비분하여 벼슬을 버리고 처조카인 신말주(신숙주의 아우)와 낙향길에 올라 고향인 함평으로 내려와 기각리 냇가에 영파정을 짓고 은둔하였다.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안쪽은 좌우측 1칸만 온돌방으로 꾸미고 나머지는 모두 마루를 깐 대청으로 설계하였다. 창문은 대청 뒷면과 옆면에 쌍여닫이를 설치하고 앞면은 3짝 모두 들어 열 수 있는 문으로 하였다.

 

 

영파정 현판을 쓴 강암 송성용(剛菴 宋成鏞, 1913~1999)은 전라북도 김제 출생으로 일찍이 한학에 입문하여 서법과 그림에 일가를 이루었다.

 

 

최초 건립 당시에는 영파정 또는 영수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지고 다시 지은 후에는 영수정과 관덕정으로 불리며 함평군의 활터와 정자로 사용되었다.

 

 

정자 안에는 많은 현판들이 걸려 있다.

 

 

 

 

 

영파정 앞으로는 함평천이 흐르고 그 안에 수령 120년이 넘는다는 왕버들 두 그루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함평천 건너편에는 작은 언덕에 함평공원이 있어서 함평천과 함평읍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