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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이야기/서울특별시

<조선왕릉> 도심 속의 왕릉, 서울 선릉과 정릉(2) 160525

오랜만에 선정릉엘 들렀다. 옛날 대치동에 살 때는 20년을 거의 매일 한 바퀴 걷기 운동을 하던 곳이다. 오랜만에 둘러보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후 정문의 위치도 바뀌고 내부의 단장도 더 잘 되어 있지만 그래도 고향에 온듯한 푸근한 느낌이 든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지하철 2호선 선릉역과 9호선 선정릉역 사이에 있는 선정릉은 조선왕조 제9대 임금인 성종대왕과 그 계비인 정현왕후 윤씨의 능침이 있는 선릉(宣陵)과 제11대 임금인 중종대왕의 능침이 있는 정릉(靖陵)으로 구성된 조선왕릉으로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는 문화재인 동시에, 서울 강남의 현대적 빌딩들에 둘러싸여 있는 도심 속의 시민 휴식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먼저 선릉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울타리에 식재되어 있는 쥐똥나무들이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있어 그 향기가 코끝에 진동한다.

 

 

 

미국딱총나무도 빠질세라 한몫을 한다.

 

 

 

500년 된 능의 수호수 은행나무도 오랜만에 들른 나를 반겨준다.

 

 

 

해당화와 작약은 늦게 온 나를 원망하는 듯이 꽃이 시들어 가고 있다.

 

 

앵두는 이미 꽃이 지고 제법 탐스러운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역사문화관으로 역할이 바뀐 옛 관리사무소와 재실도 나를 반기는 듯 서 있다.

 

 

 

바위취들이 땅바닥에서 모래를 뒤집어 쓰고도 꽃을 피우고 있다.

 

 

 

이제 선릉이다. 우선 성종대왕님께 문안을 드린다.

 

 

선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이다. 정자각에서 바라볼 때 좌측이 성종릉이고 우측이 정현왕후릉이다.

성종은 제7대 세조의 장자인 의경세자(후에 덕종으로 추존)의 둘째 아들로, 8대 임금 예종(성종의 삼촌)이 승하하자 할머니 정희왕후(세조의 비)의 명으로 1469년에 13세의 나이로 경복궁에서 왕위에 올랐다. 왕세자 교육을 받지 못했던 성종은 왕이 된 후 제왕학 교육을 받았지만 조선의 법률과 문화를 완성했다고 평가받는 왕이었다.

 

 

홍살문과 정자각

안쪽에 수라간, 수복방, 비각의 모습이 보인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일직선으로 된 참도(향로와 어로)가 이어져 있다. 향로는 죽은 왕의 혼이 다니는 길이고 어로는 왕이나 제관이 다니는 길이다. 정자각은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다.

 

 

 

수라간 뒤쪽으로 능침 공간이 보인다. 홍살문, 정자각, 능침이 일직선상에 있지 않고 능침이 정자각의 왼쪽에 있다.

 

 

 

능침 공간에는 국조오례의에 따라 봉분을 둘러싸고 있는 병풍석 바깥에 난간석을 둘렀고, 혼유석, 장명등, 망주석, 문인석, 무인석, 석호와 석양을 두었다.

 

 

방향을 돌려 정현왕후릉으로 향한다.

성종의 세 번째 왕비인 정현왕후 윤 씨는 성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었다가 두 번째 왕비 윤 씨가 폐비되자 1480년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성종이 죽고 폐비 윤 씨의 아들 연산군이 왕위에 오른 후 자순 왕대비가 되었으며,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을 폐위하고 아들 진성대군의 즉위(중종)를 허락하였다.

 

 

참도에는 어로가 없고 정현왕후의 혼령이 다니는 향로만 있다. 정자각에서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제관이 능침에 갈 일은 없으므로 어로는 만들지 않았다.

 

 

정현왕후 능침에는 봉분을 둘러싸는 병풍석이 없다. 세조의 명에 의해 병풍석을 없앴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 이후에도 병풍석이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다. 

 

 

 

 

 

중종대왕이 누워계신 정릉으로 가기 위해서는 동산을 넘어 한참을 가야 한다.

 

 

동산 길가에는 나라를 망쳐버린 후손에 대한 선조의 엄한 훈계의 상징인 듯 군데군데 가시 돋은 지느러미엉겅퀴가 늘어서 있다.

 

 

 

능안 곳곳에는 벤치에 앉아 쉬거나 사색하는 사람들과 운동하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이지만 평일 한낮이라서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드디어 중종이 누워 계신 정릉에 도착하였다.

정릉은 조선 제11대 중종(中宗 : 1488-1544, 재위 1506-1544)의 단릉이다. 

중종은 성종과 정현왕후의 아들로 태어나 진성대군에 봉해졌고, 왕이 될 서열이 아니었으나 연산군의 실정을 틈탄 성희안, 박원종 등의 반정세력에 이끌려 왕이 되었고, 재임 중 기묘사화로 조광조 등이 죽은 후로는 권신정치에 휘둘렸다.

중종은 당초 고양시 서삼릉에 묻혔으나 제2계비 문정왕후가 중종과 자신의 합장을 목표로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으나, 풍수지리가 나쁘다는 이유로 문정왕후는 합장되지 못하고 태릉에 묻히게 되어 정릉은 중종 혼자 단릉이 되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과 능침은 일직선 상에 있으나, 비각만 있고 수라간과 수복방은 없다.

 

 

 

능침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고, 혼유석, 장명등, 망주석, 문인석, 무인석, 석호, 석마, 석양은 국조오례의 대로다.

 

 

작별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는 길가엔 다 져버린 꽃나무의 명패만 외롭고 잡초로 변해버린 애기똥풀과 혼자만 기승을 부리는 망초들의 어지러운 모습이 영화의 덧없음과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는 것 같아 가슴이 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