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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시

<필름사진 추억여행> 당진 왜목마을 일출 040208 장소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왜목길 15-5(교로리) 촬영일자 : 2004년 2월 8일, 맑음 카메라 : Nikon FM2, 필름 : Kodak Gold, 사진스캔 촬영일자 : 2005년 1월 21일, 맑음 동행자 : 풍경사진클럽 카메라 : Nikon FM2, 필름 : Kodak Chrome Elite 100, 필름스캔 더보기
<아름다운성당> 당진 합덕성당 210324 합덕성당(合德聖堂)은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위치한 성당이다. 1998년 7월 28일에 대한민국의 충청남도의 기념물 제145호로 지정하였다. 1890년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 양촌성당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으며, 1899년에 당시 초대본당주임이었던 퀴를리에(Curlier, J. J. L.) 신부가 현 위치의 대지를 매입하여 성당 건물을 건축하고 성당을 옮겨오면서 합덕성당으로 개칭되었다. 정면의 종탑이 쌍탑으로 되어있는 것이 특징인 이 성당은 3개의 출입구와 창들이 모두 무지개 모양을 이루고 있다. 외벽은 붉은 벽돌로, 창둘레와 종탑의 각 모서리는 회색벽돌로 쌓았다. 창 아래와 종탑의 각각 면에는 회색벽돌로 마름모형의 장식을 하였다. 현재 존재하는 성당 건물은 1929년에 새로 지어진 건물이다... 더보기
<국내성지157> 당진 황무실 성지 210324 주소 : 충남 당진시 합덕읍 석우리 1013 관할 : 신합덕 성당 041-362-5947 황무실은 오래된 교우촌으로 충청도 내포 지역에 복음이 전해진 직후 1785년경부터 신자들이 거주하였다. 초기 신자로 알려진 유군명(시메온)은 입교한 뒤 종들을 면천하여 일찍부터 하느님 안에서 평등을 실현하였다. 100여 명의 신자가 거주했던 황무실 교우촌은 박해 중에 숨어서 활동하던 프랑스 선교사들의 안식처였다. 이 때문에 프랑스에서 도입된 영해회(일명 성영회) 사업이 일찍부터 시작되었으며 고아들을 입양하여 가족으로 삼았다. 이곳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 가운데 메스트르(Maistre) 신부와 랑드르(Landre) 신부가 각각 1857년과 1863년에 병으로 선종하여 묻혔다. 황무실의 첫 순교자로 기록된 이보현(프란치스.. 더보기
<국내성지049> 충청도 최초의 본당, 합덕성당 181225 합덕 성당은 공세리 성당과 더불어 충청도 최초의 본당이다. 합덕을 포함하여 조선 시대 내포 지방은 규모가 크고 중요한 신앙 공동체가 많았다. 그래서 박해의 피해가 어느 곳보다도 극심했으며, 그 때문에 대부분의 교우촌 공동체가 와해되고 말았다. 1886년 신교의 자유가 허용되자 한국 천주교회는 내포 교회의 재건을 위해 양촌 본당과 간양골 본당을 설립한다. 양촌 본당은 다시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면서 합덕 본당이 되었다. 이후로 본당은 충청도 지역 복음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성전은1929년 페랭 신부가 세웠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벽돌조 성당은 뛰어난 건축미를 자랑할뿐 아니라 지역민의 근대 의식 성장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충청남도 기념물 제145호로 지정되어 있다. 본당 관내에는 복자 원시장.시보 형제의 .. 더보기
<국내성지048> 순교자 박선진 박태진의 묘, 신평 원머리성지 181225 원머리는 이존창 성인이 내포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1785년부터 조선 교회의 시작과 함께 교우촌이 형성된 아주 오래된 곳이다. '원머리'는 갯벌을 개간하여 논으로 사용하려고 둑을 쌓은 '언(堰)의 첫머리'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 이름처럼 신자들은 염전, 어업, 농업에 종사하며 신앙 생활을 하였다. 1866년부터 시작된 병인박해 때에 20명의 신자들이 홍주와 해미, 수원에서 순교하였다. 원머리 성지에는 현재 1868년 무진박해 때 순교한 박선진 마르코와 박태진 마티아 두 분의 묘가 마을 한복판에 모셔져 있다. 순교자 묘 인근에는 원머리 공소 강당이 보존되어 있으며, 원머리와 역사를 같이 하는 새터 공소와 음섬 공소의 강당도 잘 보존되어 있다. 이러한 건물들과 순교자들의 묘는 조선 시대부터 시작된 신앙 공.. 더보기
<국내성지046> 다블뤼 주교 유적지, 신리성지 181225 신리는 조선시대 천주교 수용 초기부터 형성된 교우촌으로 주민 400여 명이 모두 신자일 정도로 규모가 컸다. 신자들이 많았던 만큼 박해도 심하여 많은 순교자들이 탄생한 곳이다. 특히 1866년 병인박해와 1868년 무진박해를 통해 마을 전체 신자가 순교하거나 피난할 정도였는데 인근에 있는 '무명 순교자들의 묘'가 이를 말해 준다. 신리는 박해를 겪는 조선 교회의 중심지 역할도 하였다. 서해를 통해 들어오는 프랑스 선교사들의 기착지였고, 제5대 조선교구장 다블뤼 주교가 머무르며 사목 활동을 한 곳이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다블뤼 주교, 위앵 신부, 오매트르 신부, 황석두 루카, 손자선 토마스가 신리에서 체포되어 보령 갈매못과 공주에서 순교하였고 후일 성인이 되었다. "예수님을 가진 자가 모든 것.. 더보기
<국내성지026> 김대건 신부 탄생지, 솔뫼성지 181028 솔뫼 성지는 한국의 첫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지이다. 소나무가 우거진 산이라는 뜻의 '솔뫼'는 1836년 김대건 신부의 신학생 추천서에도 나올 정도로 오래된 이름이다. 김대건은 1821년 솔뫼에서 태어나 중국 마카오에서 공부를 한 뒤 1845년 24세의 나이로 사제품을 받았다. 그의 탄생을 기념하려고 솔뫼에는 기와집 생가(대건당)가 복원되어 있고, 소나무 숲 한가운데에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건립되었다. 김대건 신부의 신앙은 솔뫼에서 대를 이어 살던 선조들의 모범으로 형성되었다. 그의 증조할아버지 김진후 비오는 솔뫼에서 신앙을 받아들여 살다가 1814년 해미에서 순교하였고, 작은할아버지 김종한 안드레아는 1816년 대구 관덕정에서,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는 1839년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