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 썸네일형 리스트형 <필름사진 추억여행> 붉은악마, 대구 월드컵경기장 020701 장소 : 대구광역시 수성구 유니버시아드로 180 (노변동), 월드컵경기장 일시 : 2002년 7월 1일, 맑음 대~한민국 !!! 더보기 <필름사진 추억여행> 대구 동촌 낙조 020605 장소 :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동촌유원지 일시 : 2002년 6월 5일, 맑음 더보기 <아름다운성당> 대구 계산주교좌대성당 180520 사적 제290호 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10 (계산동2가) 이 건물은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번째로 세워진 고딕양식의 성당이다. 프랑스인 프와넬 신부가 설계하였고 서울 명동성당의 건립에 참여하였던 중국인들이 공사를 담당하여 1902년 완공하였다. 1911년에 주교좌성당이 되면서 종탑을 2배로 높이는 등 증축을 하여 1918년 12월 24일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평면은 라틴십자형이고, 종탑부에는 8각의 높은 첨탑 2개를 대칭구조로 세웠으며 앞면과 양측에는 장미창으로 장식하였다.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며 현존하는 1900년대의 성당건축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공감하셨으면 꾹 눌러주세요. 더보기 <국내성지101> 병인순교100주년 기념성당, 복자성당 190405 복자 성당에는 병인박해 때 순교한 허인백 야고보, 김종륜 루카, 이양등 베드로의 묘소가 있다. 세 분 순교자는 본디 박해를 피하여 언양 죽령리 공소 지역에 살다가, 더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여 경주 산내면 단석산 범굴로 숨어 살았으나 포졸들에게 붙잡혀 온갖 문초와 극심한 옥고를 치르고 울산 장대벌에서 1868년 순교하였다. 경주 진목정 뒷산인 도매산에 매장되었는데, 1932년 대구 감천리 교회 묘지로 이장했던 것을 복자 성당 건립 정신에 따라서 1973년 10월 19일에 이곳으로 옮겨 모셨다. 세 분 순교자는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된 데에 이어 절차에 따라 시복되었다. 묘소 뒤쪽에 있는 성당은 병인 순교 100주년 성당으로서 시복 시성 운동의 일환으로 교구민의 헌금으로 1970년에 봉헌된 성당이다. 성당.. 더보기 <국내성지100> 영남 제일의 순교터, 관덕정순교성지 190405 대구대교구 제2주보성인이신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곳이며, 많은 신앙 선조들이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참수 치명당한 거룩한 곳으로, 공식 명칭은 '천주교 대구 관덕정 순교성지'이다. 관덕정은 조선 시대 무과 시험 제도의 하나인 도시(都試)를 행하던 도시청으로 조선 영조 25년에 세운 건물로 옛 이름은 관덕당이었다. 관덕당은 누각과 넓은 마당이 있어 군사 조련이나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장으로 쓰이던 곳이었는데, 그런 이유로 이곳에서 사형 집행도 이루어졌다. 관덕당에서는 1815년 을해박해 때 7명이 순교했으며, 1827년 정해박해 때 3명, 1866년 병인박해 때 이윤일 요한 성인을 비롯하여 7명이 순교했다.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는 날뫼, 묵리 등을 거쳐 1976년 미리내 무명 순교자.. 더보기 <국내성지099> 루르드 성모님을 모신곳, 성모당 190405 성모당은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안에 위치한, 대구대교구의 제1주보이신 루르드 성모님을 모신 곳이다. 성모 동굴과 크기와 바위 모양까지 똑같고, 둘러싼 벽돌당은 레오 13세 교황이 로마에 지은 루르드 동굴의 벽돌당과 같다. 1911년 대구대교구의 초대 교구장이 된 드망즈 주교가 주교관, 신학교, 주교좌성당 증축이 이루어진다면 대구가 가장 잘 바라다보이는 곳에 성모 동굴을 짓기로 허원했다. 그리하여 드망즈 주교가 직접 "1911 EX VOTO IMMACULATAE CONCEPTIONI(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드린 서약에 의해) 1918"이라는 글을 새긴 성모당이 완공되어 1918년 10월 13일 축복식을 가졌다. 1973년 5월부터는 성모의 밤 행사를 개최하면서 유명해졌고, 교구의 제2주보성인이신 이윤일.. 더보기 <국내성지019> 대구대교구 계산 주교좌성당 180520 계산 성당은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이다. 신나무골에서 사목하던 김보록 신부가 대구 본당을 설정하고 1899년에 한옥 성당을 봉헌했는데, 이것이 곧 현재의 계산 주교좌성당의 전신이다. 그 뒤 이 한옥 성당은 화재로 소실되고 1903년에 현재의 고딕식 성당 건물이 뮈텔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됐는데 1911년에 주교좌성당으로 지정되면서 종탑을 높였고 그 뒤에도 몇 차례의 부분적인 보수로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주교좌성당답게 신자들의 활동도 두드러졌는데 신학문 교육 기관인 성립학교의 여자부는 대구지역 여성 교육의 요람이 되었으며 후에 효성보통학교로 승격되어 이 지역의 대표적인 초등 교육 기관으로 성장했고, 1909년에는 가톨릭 청년회의 효시인 성립학우회가, 1912년에는 명도회를 발족해 교회 주보를.. 더보기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