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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시

<국내성지071> 소금장수 순교자, 복자 신석복 묘 190213 복자 신석복 마르코는 밀양시 하남읍 명례리에서 살았다. 명례 지방은 일찍이 피난 교우들이 모여 살았던 곳으로 신석복과 그의 가족들은 이들의 권면으로 신자가 된 듯하다. 그의 형제들은 신석복이 순교할 때는 신자가 아니었고 훗날 모두 입교하였다. 신석복은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대구에서 내려온 포졸들에게 붙잡혔다. '병인 치명 사적'에 따르면 포졸들은 신석복이 신자인 것을 알고 동네로 잡으러 왔었다. 그러나 그가 장사 나가고 없었기에 포졸들은 며칠을 기다린 뒤 돌아오는 신석복을 길에서 체포한 것이다. 신석복은 대구로 압송되었고 혹독한 심문을 받으며 배교를 강요당했지만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신석복은 1866년 2월 15일(음) 교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의 나이39세 때였다. 신석복의 유해는 그의 .. 더보기
<국내성지070> 경남지역 첫 본당, 명례성지 190213 낙동강변 언덕 위에 위치한 명례 성지는 오래전 밀양과 김해를 이어 주던 나루가 있던 곳이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복한 복자 신석복 마르코(1828~1866년)가 출생한 곳이며, 영남 지방의 네 번째이자 경남 지역에서 가장 일찍 본당이 설립된 곳으로(1897년) 한국인 세 번째 사제이자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서품된(1896년 약현 성당) 강성삼 신부(1866~1903년)가 사목하다가 돌아가신 곳이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태풍으로 전파된 성전(1928년 봉헌)을 축소 복원한(1938년) 것이다. 남녀석이 구분되어 있는 성전 내부와 벽을 향한 제대와 그 위에 모신 십자가와 성모상에서 초기 신앙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2011년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526호로 지정되었다. "나를 위해 한 푼도 포.. 더보기
<국내성지069> 첫 순교자, 김범우 순교자 성지 190212 김범우는 1751년 서울 남부의 명례방(현 명동 주교좌성당)에서 중인(中人) 역관의 8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784년 평소 친분이 있던 이벽의 권면으로 입교하여, 이승훈 베드로에게서 토마스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 후 그의 집에서 정기적인 신앙 집회를 가졌으나, 곧 '을사 추조 적발 사건'(1785년)이 발생하면서 지방으로 유배되었다. 유배된 후에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다 유배된 지 2년 만인 1787년 9월 14일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최근까지 김범우의 유배지는 달레가 쓴 [한국천주교회사]에 근거하여 충청도 단양(丹陽)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980년 초 김범우의 후손이 나타나면서, 충청도 단양이 아니라 밀양 단장(丹場)임이 새롭게 밝혀졌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