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울산광역시

<국내성지076> 한국판 카타콤바, 죽림굴 신앙사적지 190215 죽림굴(대재 공소)은 기해박해(1839년)를 피해 충청도 일원과 영남 각처에서 피난해 온 교우들과 간월의 교우들이 좀 더 안전한 곳을 찾다가 발견한 박해 시대(1840~1868년)의 공소로 언양 지방의 첫 공소인 간월 공소에 이은 두 번째 공소이다. 이 공소는 샤스탕 정 신부와 다블뤼 안 신부가 1840년부터 1860년까지 사목을 담당했던 곳이며, 경신박해(1860년) 때는 박해를 피해 들어온 최양업 신부가 3개월 동안 은신했던 곳이기도 하다. 최 신부는 이 곳에서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집전하며 자신의 마지막 편지를 썼다고 한다. 그 외에도 울산 장대에서 처형된 세 분의 복자 허인백, 이양등, 김종륜이 한때 이곳에서 머물렀으며, 김 아가타도 최 신부를 도우며 이곳에서 지냈다고 한다. 이후 계속되는 경신박.. 더보기
<국내성지067> 울산 병영 순교성지 190211 울산 병영장대는 당시 경상좌도 병마절도사가 있어 군사 훈련뿐 아니라 중죄인을 처형하던 곳으로 병인박해(1866~1873년) 중에 3인 순교자를 포함하여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된 순교터이다. 복자 허인백 야고보 순교자는 간월산 아래에 살다가 죽령 교우촌(언양 죽림굴, 대재 공소)으로 이주하였다. 이즈음 오페르트의 남연군 묘 도굴 사건(1868년)으로 대원군은 박해령을 내렸고, 당시 죽령 교우촌에서 공소 회장을 맡고 있던 복자 이양등 베드로 순교자와 이주해 왔던 복자 김종륜 루카 순교자도 함께 체포되어 울산 장대에서 십자 성호를 긋고, 예수 마리아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1868년 9월 14일(음력 7월 28일) 군문효수형(군영에서 죄인의 목을 베어 그 머리를 매달아 걸어 두어 군중에게 경계심을 주는 형벌.. 더보기
<국내성지064> 살 수 있는 터, 살티 신앙 사적지 190210 경부고속도로 언양 나들목에서 12km 남짓한 거리에 있는 살티는 언양 성당, 시외버스 터미널, 석남사를 지나 1km 쯤 더 간 곳에 있다. 경상북도 청도군, 경상남도 밀양군.울주군의 경계 지점에 있는 가지산(1,241m)의 중턱에 위치한 살티는 원래 예로부터 전쟁을 위한 화살을 만들었던 곳이라 해서 시현(矢峴)으로도 불리었다. 살티 공소 신유박해(1801년)와 기해박해(1839년)를 거치면서 간월, 죽림굴로 숨어들었던 신자들이 경상도 지역에 본격적으로 행해진 경신박해(1860년)와 병인박해(1866년)를 피해 더욱 안전한 곳을 찾다가 모여든 곳이 안살티(현재 청수골 주변)이다. '살티'라는 말의 유래는 당시 포졸들이 신자들을 찾아 석남사까지 왔다가 경주로 빠져 나감으로써 이곳의 신자들이 죽음을 면하고 무.. 더보기
<국내성지063> 언양 성당 신앙 사적지 190210 오늘부터 부산교구 성지 8곳과 마산교구 성지 6곳을 둘러보기 위하여 5박 6일간의 성지순례 여행을 떠난다. 부산지역은 해운대에 있는 한화리조트 해운대 티볼리, 마산지역은 한화리조트 거제 벨버디어에 캠프를 차리기로 예약이 되어있다. 역시 제주도 순례에 동행을 했던 이재현 요셉 부부가 이번에도 동행을 하고 요셉의 차로 네사람이 출발했다. 부산을 향하여 가는 길에 언양에 언양 성당, 살티 공소, 죽림굴의 세 곳의 성지가 몰려 있어서 먼저 들리기로 했다. 세 곳중 죽림굴은 산중에 있어 지세도 험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듯하여 돌아오는 길에 가고 대신 양산 통도사의 자장매를 보기로 수정했다. 경부고속도로 언양IC에서 내려 언양 성당을 찾아가는 길은 제법 멀었다. 언양 성당 믿음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각 공소 대표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