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명 : Robinia pseudoacacia L.
크기 : 높이 25m 정도
5월의 따사로운 햇볕은 아무리 게으른 나무도 새싹을 내밀고 꽃을 피우는 한해살이를 시작하게 한다.
새 생명이 움트는 아름다운 5월의 한가운데, 우리의 코끝을 간질이는 꽃이 있다. 바로 아까시나무 꽃이다.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아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 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보며 쌩긋
아카시아 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 길
우리에게 잊혀진 고향의 정경을 그대로 전달해주는 박화목의 동요 〈과수원 길〉에 등장하는 그 꽃이다.
아까시나무는 외국에서 수입한 나무이지만 우리와 너무 친해져 버린 나무다. 그렇다면 아까시나무 꽃은 언제부터 우리 땅에 꽃향기를 풍기기 시작하였을까?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1891년 사가키란 일본 사람이 처음 들여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는 인천에서 무역회사 지점장으로 있었는데, 중국 상해에서 묘목을 구입하여 인천 공원에 심은 이후로 이 땅에는 비로소 아까시나무 세상이 펼쳐지게 되었다. 미국이 고향인 아까시나무는 그 후 1910년경부터 심는 양이 많아져 강토의 구석구석을 누비게 된다. 아까시나무는 콩과 식물로서 토사가 흘러내릴 정도로 황폐해진 민둥산에도 뿌리를 잘 내렸다. 아울러 잘라 버려도 금세 싹이 나올 만큼 강한 생명력과 화력이 좋아 땔나무로서의 역할도 컸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에는 오히려 아까시나무 심기가 더 많아져 한때 우리나라에 심은 전체 나무의 10퍼센트에 육박할 때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고향의 정경을 복사꽃이나 살구꽃으로 나타내기보다 아까시나무의 꽃향기로 더 친근하게 느끼게 되었을 터이다.
꽃은 ‘향긋한 꽃 냄새’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꽃 속에는 질 좋은 맑은 갈색의 꿀을 잔뜩 가지고 있다. 꿀을 따는 사람들은 아까시나무가 꽃 피는 시기를 쫓아 제주도에서부터 휴전선까지 벌통과 함께 올라간다. 우리나라 꿀 생산의 70퍼센트를 아까시나무 꽃에서 딸 정도이다. 1년에 1천억 원이 넘는 수입이 아까시나무 꽃에 걸려 있다. 나무의 쓰임새 또한 이름난 나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재질은 최고의 나무로 치는 느티나무에도 뒤지지 않는다. 노르스름한 색깔에다 단단하며 무늬 또한 일품이다. 예부터 원산지에서는 힘을 받는 마차바퀴로 쓰일 정도였고, 오늘날에는 고급가구를 만드는 재료로 없어서 못 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아까시나무가 좋은 기억으로만 남아 있지는 않다. 우리의 토종 나무를 죽이고 산소에 해악을 끼치는 불효막심한 천하의 망나니라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제침략의 시작과 함께 우리 땅에 들어왔으므로 산을 망치려고 일제가 일부러 심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나무의 특성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선 아까시나무는 공중질소를 고정할 수 있는 뿌리혹박테리아로 무장한 콩과 식물이다. 그래서 다른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하는 메마르고 헐벗은 민둥산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 조선 후기의 정치적 혼란과 민생이 어려워지면서 우리 강토 곳곳은 나무가 거의 없는 민둥산이 많아졌다. 우선 심어서 살 수 있는 나무가 무엇인지 찾던 중에 마침 선택된 나무가 아까시나무였을 뿐이다. 일제가 다른 못된 짓을 했다고 아까시나무까지 같은 도마에 올려놓을 수는 없다.
토종 나무를 죽인다는 이야기도 잘못 알려진 것이다. 아까시나무는 대체로 20~30년의 청년기를 지나면 급격히 자람이 나빠지면서 서서히 주위의 토종 나무에게 자리를 내준다. 한때 32만 헥타르에 이르던 아까시나무 숲은 현재 12만 헥타르만 남아 있고 지금도 급격히 줄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여름철에 잎이 노랗게 변하는 원인불명의 황화병(黃化病)까지 생겨 더욱 밀려나고 있다.
아까시나무를 미워하는 또 다른 이유는 뿌리가 무엄하게도 조상의 산소 속을 뚫고 들어가는 행실 때문이다. 유난히 조상숭배 사상이 강한 우리의 정서로는 아무리 나무라지만 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아까시나무는 햇빛을 좋아하는 나무이다 보니 널찍한 산소 곁 공간이 최상의 자람 터라고 여겨 체면 불구하고 모여든 것이다. 자손을 퍼뜨리는 방법 중 하나가 뿌리 뻗음이어서 산소를 침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요즈음은 주로 석관(石棺)을 쓰므로 들어가는 깊이에 한계가 있고, 또 오래 살지 않는 나무이니 줄기가 죽어버리면 뿌리는 자연스럽게 썩어 없어진다.
아까시나무는 ‘아카시아’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아까시나무 종류는 열대지방에서 주로 자라는 진짜 아카시아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국 원산의 아까시나무가 있지만 전혀 별개의 나무다.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올 때 이 둘을 구별하지 않고 불러온 탓에 혼란이 생긴 것이다. 진짜 ‘아카시아’는 한반도에서는 자랄 수 없으므로 아까시나무라고 불러야 맞는 이름이다.
출처 : 우리나무의 세계 박상진/김영사
아까시나무 (성남시 분당 탄천변 2018년 5월 13일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