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 성당은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이다.
신나무골에서 사목하던 김보록 신부가 대구 본당을 설정하고 1899년에 한옥 성당을 봉헌했는데,
이것이 곧 현재의 계산 주교좌성당의 전신이다.
그 뒤 이 한옥 성당은 화재로 소실되고 1903년에 현재의 고딕식 성당 건물이 뮈텔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됐는데
1911년에 주교좌성당으로 지정되면서 종탑을 높였고 그 뒤에도 몇 차례의 부분적인 보수로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주교좌성당답게 신자들의 활동도 두드러졌는데
신학문 교육 기관인 성립학교의 여자부는 대구지역 여성 교육의 요람이 되었으며 후에 효성보통학교로 승격되어 이 지역의 대표적인 초등 교육 기관으로 성장했고,
1909년에는 가톨릭 청년회의 효시인 성립학우회가, 1912년에는 명도회를 발족해 교회 주보를 창간했다.
1990년부터 활동해 온 연령회는 천주교의 이웃 사랑을 실천적으로 보여준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유물관에는 초기에 사용했던 촛대, 동방 박사상 등 귀한 유물이 많은데
그 가운데 '십자가 보목'은 파리 주교관의 보물 보관소에 있던 것을 아멜리 추기경이 1912년에 초대 교구장인 드망즈 주교에게 보낸 것이다.
(한국천주교성지순례/한국천주교주교회의)
대구에 일이 있어 친척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됬는데 다음날이 주일이어서 성지순례 겸 계산 성당에서 미사를 보기로 했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하늘을 찌를듯 높은 종탑과 우람한 성당 건물에 압도 당했다.
사적 제 290호로 지정된 계산 성당의 연혁을 알려주는 비석과 팻말이다.
9시 미사를 집전하러 사제님도 성당으로 들어 가신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입구에 있는 성수대 위에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방문 표지판이 있다.
성당 내부의 모습이다.
자리에 앉아 미사에 참례했다.
미사가 끝나고 성당 밖으로 나와 성당 전경을 둘러본다.
1994년의 화재로 불타버린 사제관의 모형이다.
다시 신축하지는 않고 모형만 유지하고 있다.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성모님 모습이다
내가 소속된 분당 성 루카 성당의 성모상도 이런 모습이다.
입구에 있는 작은 공원이다.
이 곳에 계산 성당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들이 전시되 있다.
계산 성당 초대 주임 신부 김보록 신부상
계산 성당 관련 사진들
시간 부족으로 유물관을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채 계산 성당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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