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는 수도 방어의 요충지로서 고려 시대부터 외세와 격렬하게 충돌해 온 역사의 현장이다.
이런 강화 지역이 교회와 특별한 관계를 가지기 시작한 것은 1866년 병인양요와 연이은 병인박해 때이다.
1866년 병인양요 때 조선 정부가 프랑스 인 성직자 9명을 처형한 책임을 물어 강화도를 점령하고자
프랑스 함대가 바로 이곳 갑곶 돈대로 상륙,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했다.
결국 프랑스 군은 후퇴했으나
이 때문에 강화 지방에는 한국 천주교회의 가장 극심했던 박해의 하나로 기억되는 병인박해가 시작되게 된다.
이 박해로 1868년 최인서, 장치선, 박서방, 조서방 등이 강화 진무영에서 순교했고,
1871년 박상손, 최순복, 우윤집 등이 강화 갑곶 진두에서 효수되었다.
성지에는 순교자 3위비가 세워져 그분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아버지 박 바오로의 삶을 이어받아
평생 동안 순교자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순교자들의 삶을 정리하며 사셨던
증거자 박순집 베드로의 유해를 모신 묘가 있다.
(한국천주교성지순례/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갑곶 순교 성지는 김포에서 강화대교를 건너면 왼쪽 바닷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성지 입구에 들어서면 예수성심상이 순례자를 환영한다.
조금 더 올라가면 지하성당이 있는데 잠겨있어 내부는 들어가지 못헀다.
도로가 끝나는 곳에 주차장이 있고 갑곶순교성지 표지석과 안내도가 있다.
왼쪽에 갑곶 성지 50주년 기념성당이 돈대의 형상으로 지어졌다.
입구 왼쪽 건물 벽에 성지 방문 확인 스탬프가 비치되 있다.
특이하게 이 곳에서는 성지내 곳곳에 스탬프가 비치되 있지만 스탬프에 그림만 있고 갑곶순교성지라는 글자가 없는데
여기에 있는 스탬프만 그림 아래에 '갑곶순교성지'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다.
기념성당이 돈대의 형상을 본따서 만들어졌다.
성당 오른쪽으로 언덕을 오르면 성모상이 있고 언덕 위에 순교자 3위비가 있다
순교자 삼위비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 군함에 왕래했다는 죄목으로 효수형 당한 박상손, 최순복, 우윤집 순교자를 기리는 곳이다.
평생 동안 순교자들의 행적을 증언하며 사셨던 박순집 베드로(1830~1911)의 묘가 있다.
언덕에서 올라온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십자가의 길과 야외마당이 있다.
" 여기서나마 제 뜻대로 십자가를 고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제가 가는 십자가의 길이 끝없는 길이 아님을,
혼자 가는 길이 아님을,
무의미한 길이 아님을
믿게 해 주소서. "
우물터
예수상과 야외마당
단체 순례객들이 타고 오는 대형차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이곳을 통해 밖으로 나갈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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