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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성지순례/마산교구

<국내성지072> 남의 문중산에 평장, 복자 박대식 묘 190213

복자 박대식 빅토리노는 1811년 김해시 진례면 시예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부유했으며 언제부터 신앙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부친 박민혁과 형제들은(대붕, 대흥, 대식)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 병인박해를 만나게 된다.

 

병인박해 때는 가족 모두가 피신하여 잡히지 않았으나, 1868년 무진박해 때 박대식은 조카인 박수연과 함께 붙잡힌다.

박대식은 경상 감영에서 연일 배교를 강요당하며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1868년 8월 27일(음) 조카 박수연과 함께 참수 치명한다.

당시 박수연은 예비 신자 신분이었다.

 

박대식의 가족들은 순교자의 시신을 모셔 와 선산에 모시려하였으나 마을 사람들과 집안의 외인들이 반대하자 하는 수 없이 그의 아들 삼 형제(종립, 종반, 종철)와 형제들이 마을 뒷산인 챗골[茶谷] 유씨들의 문중산에 평장(平葬)으로 매장하였다.

그 후 120년이 지난 1956년 봄에 후손들이 무덤의 봉분을 크게 하고 순교자 부인의 묘도 이장하여 완전한 묘역으로 가꾸었다.

 

이 때 순교자의 세례명이 명확하지 않아 세례명을 임시로 '노렌죠'라고 명명했으나 2001년에 순교자의 세례명이 '빅토리노'임을 밝혀 내게 된다.

 

(한국천주교성지순례/한국천주교주교회의)

 

 

 

 

복자 박대식 빅토리노의 묘는 입구를 찾기가 좀 어렵다.

네비게이션으로 책에 나오는대로 "김해시 진례면 청천리 산 30"을 치면 산 30이라는 지번이 워낙 넓어 엉뚱한 데가 나온다.

그 보다는 "순교복자 박대식 빅토리노 묘"라고 치던가, "경남 친환경쌀 클러스터 유통사업단"을 치면 김해 터널 쪽으로 안내를 한다.

김해 터널을 지나기 전 왼쪽에 지금은 폐쇄된 진영 터널이 있고, 그 폐쇄 터널에 유통사업단의 창고가 있다.

그 창고의 50m 전방에 왼쪽 산길로 100m를 가라는 순교자 묘 안내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묘까지 거리는 100m 밖에 안되지만 가파른 산길이라 오르기가 숨가쁘고 힘이든다.

 

 

가쁜 숨을 몰아쉬다 보면 박대식 빅토리노 부부의 묘가 있는 언덕에 도착한다.

 

 

 

 

 

 

박대식 묘에서 내려다 본 진례면의 모습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여기에는 성지 순례 확인 스템프가 없다.

관할 성당인 진례 성당 (055-345-3226)에서 확인해 준다고 하여 진례 성당으로 간다.

 

 

 

 

진례 성당 교육관에 있는 사무실 앞에서 확인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