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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성지순례/아름다운성당

<아름다운성당> 음성 감곡매괴성당 181012

 

 

 

 

 

위치 :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성당길 10

문화재 지정 : [감곡성당]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8호(1996.01.05지정)

 

 

 

 

 

 

 

감곡본당은 1896년 설립되어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초대 본당 임가밀로 신부는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으로 1893년 서품을 받은후 바로 입국하여 그다음해인1894년 첫 본당으로 유서 깊은 교우촌,신학당이 있었던 여주 부엉골에 부임하게 된다. 하지만 본당 사목지가 북쪽끝에 위치해 있을 뿐 아니라 산지부락 이어서 본당 이전을 생각 하던중 사목 방문차 여주를 지나 장호원에 이르러 산밑에 대궐같은 집을 보고 이곳이 본당 사목지로서 가장 적합 하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그즉시 임가밀로 신부는 "성모님 만일 저 대궐같은 집과 산을 저의 소유로 주신다면 저는 당신의 비천한 종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주보가 매괴 성모님이 되실 것입니다." 라고 기도 하였으며, 부엉골로 돌아가서 매괴 성모님께 끊임없이 청하였다. 당시 대궐같은 집은 명성황후의 육촌 오빠인 민응식의 집이었고1882년 임오군란때 명성황후가 피신왔던 곳이기도 하다. 1896년 5월 성모성월에 그 모든 집터와 산을 매입, 매괴성월인 10월7일 본당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결국 임가밀로 신부가 처음에 기도한대로 감곡본당을 성모님께 봉헌하여 이곳이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이 된 것이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감곡성당은 설립 당시부터 기적이라고 생각될 만한 일들이 많았다. 민응식의 집을 싼 값에 살 수 있게 된 것이 그렇고,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감곡성당 터를 신사로 이용하려 하였을 때 공사 중 여러 기상 이변 등으로 공사가 진행되지 못했던 것도 그렇다

 

 

 

 

 

 

 

 

 

 

 

또 전해지는 일화로는 6·25전쟁 때 감곡성당이 인민군의 임시 요새로 사용된 적이 있었는데 이때 인민군은 성당 위에 모셔진 성모상을 총을 쏴서 깨어버리려 하였으나 총알이 무려 7발이나 성모상을 관통하였는데도 성모상이 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망치로 성모상을 깨어 버리려 하자 성모상이 눈물을 흘려 그 인민군이 성모상을 훼손할 수 없었다고 한다. 또한 감곡에서 장호원으로 이르는 다리를 끊기 위해 비행기 폭격이 엄청나게 많았지만 이 역시 끊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은 이를 성모님의 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전)

 

 

 

 

 

 

 

 

 

 

 

 

 

 

임가밀로(C.Bouillon) 신부는 프랑스 외방 전교회 소속의 신부로서, 1893년에 서품을 받고 바로 입국하여 1894년에 여주 부엉골에 부임하였다. 1896년 감곡성당을 건립하고 제1대 신부가 된 이래 1947년까지 51년간 감곡성당에서 사목을 하였다. 임가밀로 신부는 본당에 있는 동안 지역 사회의 복음화에 앞장섰으며,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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