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령포(淸령浦)(명승 제50호)는 영월 읍내 서쪽 서강 건너편의 울창한 솔밭이다.
동.남.북 삼면으로 깊은 강물이 머리띠처럼 맴돌아가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다. 형상은 반도 모양이지만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는 육지 속의 작은 섬이다.
조선 제6대 왕인 단종(홍위)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상왕으로 있다가 1456년 박팽년, 성삼문 등 사육신들의 상왕복위 움직임이 사전에 누설되어 모두 죽임을 당하는 사육신사건이 일어나고 다음해인 1457년 6월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이곳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단종은 이 적막한 곳에서 약 두 달 정도 외부와 두절된 유배생활을 했으며, 뜻밖의 큰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기게 되어 영월 동헌의 객사인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긴다. 그해 9월 금성대군의 단종복위 움직임이 발각되고 단종은 노산군에서 폐서인 되었다가 1457년 10월 24일 17세의 어린 나이로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했다.
예나 지금이나 청령포를 들어가려면 나룻배로 건너갈 수 밖에 없다.
이용객만 있으면 수시로 다니는 나룻배를 타고 건너는 초록빛 강물은 비단결처럼 곱고 맑다.
오죽하면 그 이름도 맑을 청(淸), 물맑을 령(령), 물가 포(浦), 청령포라 했을까.
왕자갈이 뒹구는 모래톱을 지나 잡초가 뒤섞여 자라는 풀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모진 강바람에 몸을 뒤틀며 굳세게 자란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들어찬 솔밭에 다다른다.
수백 년생의 거송들이 빽빽이 들어선 이 청령포숲이 2004년에 산림청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되었음을 알리는 표지판과
청령포에대한 설명과 안내도가 그려진 간판이 관람객들을 반긴다.
조금 왼쪽 옆에 있는 청령포 안내 간판이 알기쉽게 관람 코스를 안내해준다.
단종어소(端宗御所)로 간다
유배 당시 단종이 거처하던 집으로 단종 사후 이집은 더 이상 사람이 살지않아 무너져 버린것을 2000년 4월에 당시 모습에따라 복원했다.
단종이 머물던 본채이다. 밀납인형으로 단종과 시종의 모습을 재현했다.
단묘재본부시유지비(端廟在本府時遺址碑) (단종이 이곳에 계실 때의 옛터이다)
영조 39년(1763)에 집이 유실된 후에 옛터를 알리기 위해 영조 친필로 쓴 비석을 세웠다.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행랑채의 재현 모습이다.
단종어소를 나와 잘 정비된 데크길을 따라가면 관음송을 만나게 된다.
관음송(觀音松) (천연기념물 제349호)
높이 30m, 둘레 5m의 소나무로 수령이 약 600년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 두 갈래로 갈라진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나무를 관음송이라 부르는 것은, 이 나무가 단종의 유배 당시 모습을 보았다하여 볼 관(觀),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하여 소리 음(音)자를 써 관음송이라 했다.
다음은 망향탑과 노산대로 간다.
망향탑(望鄕塔)
청령포 서쪽 절벽인 육육봉과 노산대 사이에 있는 돌탑으로 어린 단종이 유배생활을 하면서 이곳에 올라 한양을 그리고 두고 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막돌을 주워 쌓아 올렸다는 탑으로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다. 애절했던 단종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유적이다.
노산대(魯山臺)
단종이 유배생활 중 해질 무렵이면 여기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던 곳으로 노산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노산대는 청령포에서 가장 높은 절벽으로 여기서 내려다보는 서강의 풍광이 너무나 아름답다.
청령포 솔밭을 한 바퀴 휘돌아 다시 선착장 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영조 2년(1726)에 세운 금표비라는 비석과 만나게 된다.
금표비(禁標碑)
비석 앞면에는 '청령포금표'라고 쓰여있고, 뒷면에는 '동서로 300척 남북으로 490척과 이후에 진흙이 쌓여 생기는 곳도 금지한다'라고 쓰여있다.
이는 단종이 유배되었던 이곳에 일반 백성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지만, 이는 곧 단종의 행동 제약 범위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어린 단종은 이렇게 세상과 격리되어 무섭도록 조용하고 을씨년스런 솔밭 속에서 유배의 나날을 보냈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온다.
청령포 답사를 끝내고 돌아서려는데 금표비와 단종어소 사이에 상자처럼 생긴 구조물이 있고 그 위에 무언가 글씨가 쓰여져 있다.
그 내용을 읽어보니 실제 단종이 남긴 글인지 후세 사람이 단종의 마음을 기려 쓴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유배길의 단종의 절절한 회한이 담겨있는 글이다.
되돌아 나오는 길의 나룻배도, 흐르는 강물도 600년 전의 비극을 알고 있다는 듯 그저 말없이 흐르고 건너줄 뿐이다.
강둑에 앉아 단종에게 사약을 진어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통한 심정으로 청령포를 바라보며 읊었다는 금부도사 왕방연의 시조를 읊조려 보며 마음을 달랜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 놋다.
참고 : 내 안 - 내 마음, 예놋다 -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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