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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누정/대구.경북

<한국누정208> 김천 연화지 봉황대(鳳凰臺) 230502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 820-1, 연화지 내

건립시기 : 1700년경 창건(읍취헌), 1838년 연화지로 이건(봉황대)

문화재지정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5호

답사일자 : 2023년 5월 2일,  맑음

 

 

 

봉황대(鳳凰臺)는 김천시 교동 연화지 가운데 있는 정자로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서 옛 선비들이 시를 읊고 학문을 토론했던 장소이다. 처음에는 삼락동 마을에 세워 흡취헌이라고 부르다가 군수 윤택이 봉황이 나는 꿈을 꾸고 좋은 징조라 해서 봉황루로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영조 47년(1771)에 고쳐 세우면서 '봉황대'라고 이름을 고쳤다. 그 뒤 정조 16년(1792)에 고쳤으며, 헌종 4년(1838)에는 군수 이능연이 연화지 못 가운데로 옮겨 세웠다. 또한 고종 33년(1896)에 다시 고쳤고 1978년에 김천시에서 고쳤다.

 

봉황대는 출입문인 일각문에 "조양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일각문을 마주보고 있는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2층 누각 형식 건물이다. 막돌로 쌓은 기단 위에 마루방의 네 기둥은 4각 기둥을, 나머지는 둥근 기둥을 세웠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마 밑에는 봉서관(鳳棲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정자 어디에도 봉황대라는 현판은 없지만 지역민들은 봉황대라고 부른다고 한다.

 

 

연화지는 조선시대 초기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명칭인 연화지(鳶嘩池)는 1700년대 당시 김천의 군수였던 윤택(尹澤)이라는 인물이 솔개가 연못에서 날아올라 봉황으로 바뀌는 꿈을 꾸고선, 이 꿈을 길몽이자 좋은 징조라고 여겨 저수지의 이름을 연화지라 붙인 데서 유래되었다. 저수지 둘레에 벚나무가 심어져 있어 벚꽃 명소로 알려져 있는데, 오늘은 벚꽃은 지고 없는 대신 이팝나무꽃이 만개해 있어 아름다움을 더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