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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성지순례/대전교구

<국내성지172> 황석두 성인 안장지, 삽티 성지 220121 삽티는 내포의 사도 이존창이 홍산으로 피신하여 선교 활동을 한 시절부터 교우들이 숨어 살기 시작한 곳이다. 1850년대에 충북 연풍에서 배척받은 황석두 루카 성인은 가족들과 삽티로 이주하였다. 황석두의 양자 황천일 요한과 조카 황기원 안드레아도 여기에 살았다. 황석두 성인은 인근 산막골에서 선교사 페롱(Feron) 신부를 보필하면서, 하부 내포의 산골 교우촌들을 순회하여 돌보았다. 병인박해로 1866년 3월 30일에 갈매못에서 성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와 함께 순교한 황석두 성인의 시신을 황천일과 황기원이 수습하여 그해 5월에 여기 삽티에 안장하였다. 이 때문에 황천일과 황기원이 홍산 관아에 체포되어 서울에서 순교하였으며, 56년 뒤에 황기원의 딸 황 마르타가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병인년) 4월 1.. 더보기
<국내성지157> 당진 황무실 성지 210324 주소 : 충남 당진시 합덕읍 석우리 1013 관할 : 신합덕 성당 041-362-5947 황무실은 오래된 교우촌으로 충청도 내포 지역에 복음이 전해진 직후 1785년경부터 신자들이 거주하였다. 초기 신자로 알려진 유군명(시메온)은 입교한 뒤 종들을 면천하여 일찍부터 하느님 안에서 평등을 실현하였다. 100여 명의 신자가 거주했던 황무실 교우촌은 박해 중에 숨어서 활동하던 프랑스 선교사들의 안식처였다. 이 때문에 프랑스에서 도입된 영해회(일명 성영회) 사업이 일찍부터 시작되었으며 고아들을 입양하여 가족으로 삼았다. 이곳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 가운데 메스트르(Maistre) 신부와 랑드르(Landre) 신부가 각각 1857년과 1863년에 병으로 선종하여 묻혔다. 황무실의 첫 순교자로 기록된 이보현(프란치스.. 더보기
<국내성지156> 대흥 봉수산 순교성지 210324 주소 : 충남 예산군 대흥면 의좋은형제길 25-14 전화번호 : 041-333-0202 http://cafe.daum.net/bongsusan1801 대흥봉수산순교성지 대흥봉수산순교성지 cafe.daum.net 대흥은 1801년 신유박해 때 김정득 베드로 복자가 신앙을 증언하고 순교한 마을이다. 대흥 봉수산 성지와 연고가 있는 순교자는 김정득 복자 외에 황 베드로, 백청여, 원지우 안드레아, 이 루도비코, 이 아우구스티노 등이 있다. 김정득 복자는 예산에서 순교한 김광옥 안드레아 복자와 함께 '의좋은 순교자'로 알려져 있다. 두 순교자는 서로 고향이 달랐으나 공주 무성산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가 신유박해 때 체포되었다. 그들은 예산, 홍주, 청주를 거쳐 한양까지 이송되었으며, 여러 차례 형벌을 받으면서.. 더보기
<국내성지155> 보령 서짓골 성지 210323 주소 : 충남 보령시 미산면 평라리 438-3 전화번호 : 041-836-9625 http://cafe.daum.net/southnaepo(하부 내포 성지) 1866년(병인년) 3월 30일 갈매못에서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와 루카 위앵 신부와 베드로 오매트르 신부와 장주기 요셉과 황석두 루카가 참수되어 그 시신이 모래자갈 속에 방치되었다. 두 달 뒤, 황석두 성인의 시신은 가족들의 손으로 수습되어 삽티에 안장되었다. 그 뒤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 등 순교자 4위의 시신은 서짓골에 살던 신자들에 의해 9월 1일(음력 7월 15일) 이곳에 묻혔다. 목숨 걸고 순교자의 시신을 매장한 서짓골 신자들은 몇 달 후 체포되어 서울에서 처형되었다. 그래서 한동안 순교자들의 무덤을 지킬 사람이 없다가, 16년 뒤인 1882.. 더보기
<국내성지154> 부여 도앙골 성지 210323 주소 : 충남 부여군 내산면 금지로 302 전화번호 : 041-836-9625 http://cafe.daum.net/southnapo(하부 내포 성지) 도앙골은 부여, 보령, 서천의 3개 시군이 맞닿은 월명산 아래 깊은 계곡 안에 있는 마을이다. 이곳은 산길이 맞닿는 계곡의 막다른 지점으로, 하부 내포의 산간 지역에 숨어 살던 신자들이 연통하기 수월하였다. 도앙골 교우촌은 최양업 토마스 신부가 조선으로 귀국한 이후 첫 번째 편지를 쓴 곳이다. 최양업 신부는 천신만고 끝에 1849년 말 귀국하여 전국 곳곳의 신자들을 찾아 열 달 동안 고된 순방을 마치고, 이곳의 신자 집에서 귀국 뒤 활동 보고서로서 첫 편지를 썼다. 편지에서 도앙골 같은 산골에 사는 신자들과 근처 산골에 사는 신자들은 평야 지대의 신자들보.. 더보기
<국내성지108> 순교복자 인언민 사적지, 삽교 배나드리 190430 배나드리는 예산군 삽교읍 동남쪽 삽교천 가에 위치한 마을로 도리(島里)라고도 불렸다. 바다로 통하는 삽교천에 밀물 때면 사방에 물이 차 섬이 되어 배를 타고 다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816년 봄 경상도에서 발생한 박해의 영향이 배나드리에도 미쳤다. 내포 지방 출신 신자들이 경상도에 피신하여 살았기 때문이다. 1817년 10월 배나드리에서 20~30명 가량의 신자들이 체포되었다. 그중 민첨지 베드로와 형수 안나, 송첨지 요셉, 손연욱 요셉, 민숙간 등은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감옥에서 순교하였다. 손연욱의 부친 손여심은 오랫동안 해미 옥에 갇혀 있다가 10년 뒤인 1827년에 순교하였다. 배나드리 인근에서 가장 잘 알려진 순교자는 복자 인언민 마르티노이다. 그는 1737년 충청도 덕산 주례(삽교읍 .. 더보기
<국내성지107> 6곳의 순교터, 홍주 순교성지 190322 홍주 성지는 충청도의 첫 순교터이며,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성지이다. 홍주는 1784년 한국 천주교 설립 초기부터 충청도의 첫 신자인 이존창의 영향으로 복음이 활발히 전파된 곳이다. 천주교 신자가 제일 많았던 홍주 지역(내포 지역)은 행정, 군사의 요충지인 홍주목과 진영이 있던 관계로 많은 순교자가 탄생하였다. 기록상으로만 초기 박해(신해~정사)동안 8명, 이어 중기 박해(신유~기해)동안 4명, 병인박해에 200명이나 된다(총212명) 박해 기간(1791~1869년) 동안 무명 순교자까지 1,000명이 넘는 순교자를 탄생시킨 거룩한 성지이다. 특히 원시장 베드로는 신해박해 때 홍주 옥에서 세례를 받고 추운 날 동사형으로 순교하여 충청도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더보기
<국내성지106> 공주 황새바위 순교성지 190322 공주에 있는 황새바위 순교성지는 조선 천주교회 박해 역사 100년 동안 가장 많은 순교자들이 처형된 장소로 이름이 확인된 순교자가 337위에 이르고, 무명 순교자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공주는 조선 시대에 충청 감영이 있던 중심 도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충청도 전역의 신자들이 체포되어 배교하지 않으면 공주로 압송되어 최종 문초 고문 판결 처형되었고, 다른 지역의 신자들도 공주로 보내 최종 형을 집행하였다. 황새바위 순교성지에서 기려야 할 순교자로는 병인박해 때 향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한 손자선 토마스 성인이 있고, 신유박해 때 참수 치명한 내포의 사도 이존창 루도비코 순교자가 있다. 또한 124위 복자 이국승 바오로, 김원중 스테파노, 청양 정산에서 순교한 이도기 바오로가 있다. 황새바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