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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성지순례/전주교구

<국내성지175> 고창 개갑장터 순교성지 231109 주소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공음면 서운대로 91 (석교리) 관할 성당 : 고창 성당 (063-564-2044) 순례일자 : 2023년 11월 9일, 흐림 무장현 공음치면(현 공음면 석교리)의 개갑 장터는 유명한 우시장이었다. 복자 최여겸(마티아)은 전라도 무장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고, 윤지충에게 교리를 배웠다. 충청도 한산으로 장가든 뒤 이존창을 통하여 독실한 신자가 되었고 고향으로 돌아와 무장, 흥덕, 고창, 영광, 함평 등 서남 해안 지역을 대상으로 많은 이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무장에 사는 조카 최수천과 최일안, 함평의 남중만, 흥덕의 김처당, 영광의 이화백 등 28명을 입교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신유박해 때 체포되어 무장과 전주에서 심문받은 뒤 한양으로 압송되어 포도청과 형조에서 문초를 받았.. 더보기
<국내성지114>여산 하늘의 문 성당 (백지사터, 숲정이, 배다리) 190622 여산 성지는 무진박해(1868년) 순교지이다. [치명일기]에 기록된 순교자만도 23명에 이르며 그 외에도 이름을 알 수 없는 많은 이들이 순교하였다. (김성첨 토마스, 김성화 야고보, 성 손선지의 딸 손막달레나 등), 이들은 여산, 고산, 금산, 진산, 등지에서 잡혀왔는데, 고산 넓은바위에서 잡혀온 이들이 많았고, 여산옥, 숲정이, 뒷말, 배다리, 장터, 기금터, 백지사터 등지에서 순교하였다. 여산 성지는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은 순교자들이 하늘 나라로 들어간 '하늘의 문'이다. 순교자들은 박해의 모진 고난 가운데 성령의 도우심으로 마지막 순교의 순간까지 신앙을 고백하였다. 특별히 성경에 나오는 성령의 모습을 순교자들이 직접 증언한 '성령의 순교지'라 할 수 있는데, 참수형을 당한 숲정이는 '불의 순교.. 더보기
<국내성지113> 한정흠 순교사적지, 김제순교성지 190622 한정흠(스타니슬라오)은 전라도 김제의 가난한 양반 출신으로 유항검 집에서 자녀들의 스승으로 생활하며 천주교를 접하게 되었고, 세례를 받고 난 뒤에는 오직 교회 일에만 전념하였다. 신유박해 때 유항검과 함께 체포되어 전라 감영에서 혹독한 형벌과 심문을 받았다. 그 뒤 한양으로 압송되어 포도청과 형조에서 문초를 받았지만, "죽는 것이 사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8월 11일 형조에서는 해읍정법에 따라 한정흠을 김제로 보내어 처형하도록 명하였다. 사형 판결문에는, "유항검의 집에 다년간 머물면서 사학에 깊이 빠졌고, 그 가르침을 독실히 믿었다. 예수를 삼가 받들었고, 주문모 신부를 스승으로 섬겼다. 첨례를 지냈고, 요사스런 상을 받들었으며, 더러운 물건을 지니고 있었다. 사당을 허물고 .. 더보기
<국내성지112> 순교사적지, 전주 옥 터 190622 조선 시대 전주는 전라도 중심지여서 신자들이 각지에서 체포되어 전주 옥에 갇혀 심문, 고문을 당하고 순교하였다. 신유박해(1801년) 때는 동정 부부인 유중철과 그의 동생 유문석이 교살되었고, 이순이 루갈다는 옥중 편지를 작성하였다. 정해박해(1827년) 때는 240여 명이 넘는 천주교인들이 감금되어 문초를 받았다. 이 때 이순이의 동생 이경언도 이곳에서 옥사하였다. 기해박해(1839년) 때는 김조이 아나스타시아, 홍봉주 토마스의 아내 심조이 바르바라가 옥중 생활에서 얻은 병과 형벌 때 생긴 상처로 옥중에서 순교하였으며, 순교 역사상 가장 어린 이봉금 아나스타시아가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이때 이봉금의 나이는 만으로 12세를 넘지 않았다고 한다. 박해 시기에 옥은 고통스러운 곳이었지만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더보기
<국내성지095> 한국 두번째 성당, 첫 한옥성당, 되재성당 190322 1886년 한불 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고산 지역에 성당이 세워지는데 이곳이 바로 1895년에 완공된 되재 성당이다. 고산 본당의 전신인 되재 성당은 1893년에 비에모 신부가 차돌배기(현 백석, 완주군 운주면 구제리)에 거처를 정하고 전교를 시작할 때로부터 시작된다. 비에모 신부가 이곳에 본당을 정한 이유는 박해의 여파가 남아 신자들이 주로 산간 지대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곳 고산 지역에는 1801년 신유박해 이후부터 박해를 피해 각처에서 몰려든 신자들이 많았으며 병인박해 때에는 이 일대에 교우촌이 무려 56곳이나 됐다고 전해진다. 실재로 되재 성당이 설립된 뒤 성당 주변에는 큰 교우촌이 형성되었으나, 그 후 신자들의 이주로 교세가 위축되었다. 되재 성당은 단층 3칸 * 8칸짜리 한.. 더보기
<국내성지094> 여산 숲정이 순교성지 190322 여산 성지는 무진박해(1868년) 때에 많은 천주교인들이 순교당한 순교성지이다. 순교자들은 당시 여산군의 속읍지였던 고산, 금산, 진산 등에 숨어 살다가 잡혀 온 이들이다. 여산은 당시 사법권을 지닌 부사가 있었기 때문에 교우들이 붙잡혀 오면 여산에서 처형되었다. [치명일기]에 기록된 순교자만도 25명에 이르며 그 외에도 이름을 알지 못한 많은 이들이 순교하였다. 숲정이, 뒷말, 배다리, 장터, 기금터, 감옥터, 백지사터 (여산 칠순교지) 등 여산면 전체가 순교성지라 할 수 있다. 이곳은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방법으로 신자들을 처형하였는데, 특히 참수형, 수장형, 백지사형 등은 유명하다. 순교자들은 박해의 모진 고난 가운데 성령의 도우심으로 마지막 순교의 순간까지 목숨을 바쳐 신.. 더보기
<국내성지093> '하느님을 부르며' 살아온 신앙터, 천호 190322 천호산(天壺山)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천호(天呼) 성지는 그 이름처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백성들이 교우촌을 이루고 '하느님을 부르며' 살아온 신앙의 터전이다. 천호 성지에는 박해 시대에 다리실 교우촌(천호 공소)을 포함한 총 7개의 공소가 있었는데 교우촌이 형성되었던 각 지역은 산세가 험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 말할 정도로 첩첩산중이었다. 이런 곳으로 숨어들어 와 땅을 일구고 신앙생활을 하던 교우들의 피와 땀이 지금의 한국 천주교를 일구었을 것이다. 천호는 호남이 자랑하는 천주교의 대표적 사적지로 1866년 12월에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여섯 성인 중 네 분인 이명서 베드로, 손선지 베드로,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한재권 요셉 성인과, 같은 해 8월 충청도 공주에서 순교한 김영오 아우구스티노, .. 더보기
<국내성지092> 6성인12복자 순교지, 전주 숲정이 190320 숲정이 성지는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숲정이' 또는 '숲머리'라고도 하는데 이곳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유항검의 가족이 처음 참수되면서부터 순교자의 피가 마르지 않은 곳이다. 숲정이는 기해박해, 병인박해 때에도 수많은 유혈이 있었는데 순교자 중에서 신원이 밝혀진 사람은 1839년에 참수된 복자 신태보 베드로, 이태권 베드로, 이일언 욥, 정태봉 바오로, 김대권 베드로 등 5명이고, 1866년 병인박해 때 전북 완주군 소양면 신리에 살던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손선지 베드로, 정원지 베드로 등의 이름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1867년에는 김사집 필립보를 비롯한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이 이곳에서 치명하였다. 1984년 전라북도 기념물 제 71호로 지정된 숲정이는 여러 현세적인 이유와 도시 개발에 밀려 본디 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