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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성지순례/춘천교구

<국내성지142> 소양로 성당(순교자 안토니오 신부) 200220 살신성인 기념 성당인 소양로 성당은 1950년 1월 5일 죽림동 성당에서 분가되었으며, 한국 전쟁에서 순교한 고 안토니오(Anthony Collier) 신부를 기념하는 성당이다. 고 안토니오 신부는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성체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신자들에게도 피신하라고 권고하며 사태를 지켜보았다. 그는 6월 27일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심문을 받고, 공지천변으로 끌려가면서 함께 잡혔던 복사 김경호 가브리엘에게 총격이 있으면 얼른 엎드리라고 이야기 하였다. 마침내 총격이 시작되자 고 신부는 그를 끌어안고 넘어져, 자신은 죽음을 맞으면서도 다른 이를 살리는 살신성인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현 성당은 1956년에 지어졌다. 당시 교구장 구인란(具仁蘭, Thomas F. Quinlan) 토마스 주교는 한국 전쟁으.. 더보기
<국내성지141> 춘천교구 주교관과 교육원 200220 주교관 주교관은 춘천교구장 주교의 거처이자 선교사들이 교구 일을 돕거나 기거하는 거점으로 강원도 지역을 담당하던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가 1958년에 건립하였다. 이 건물은 당시의 전형적인 외국인 선교회 풍으로 지었는데, 유별나게 서향으로 세운 것은 햇빛이 아쉬운 아일랜드 풍습의 영향으로 보인다. 6.25 전쟁이 끝난 뒤, 포격으로 피해가 많았던 춘천에 아일랜드 풍으로 세워진 건물로서, 현재까지 보존이 잘 되어 건축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주교관은 춘천교구청 경내에 위치해 있다. 춘천교구청은 정문이 정서향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주교관 주교관 앞에서 수녀님과 함께 운동을 나가시는 "김운회 루카 주교"님을 만났다. 김운회 주교님은 2010년 3월 25일자로 제7대 춘천교구장에 취임하셔서 지금까지 춘천교구를.. 더보기
<국내성지054> 가장 작은 공소, 금광리공소 190104 금광리 공소는 1887년에 세워졌고 영동 지역 천주교의 모태와 같은 곳이다. 강원도 영동 지역에 천주교가 적극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1866년 9명의 선교사와 수천 명의 교우들이 처형되면서부터 1873년 대원군이 물러나기까지 계속되었던 병인박해라고 할 수 있다. 병인박해를 피해 이주한 신자들은 깊은 산속이나 인적이 드문 곳에서 옹기 굽는 일이나 농사를 지으면서 교우촌을 형성하고 신앙을 전파하면서 생활하였다. 금광리 공소는 한때 영동 지역의 전교 거점 지역으로, 1921년 이철연 프란치스코 신부의 부임과 함께 본당으로 설립될 만큼 신자 수가 많았으나, 향후 신자 수의 증가와 발전 가능성을 고려하여 1923년 주문진으로 본당을 이전하기도 하였다. 현재 노암동 본당의 공소인 이곳은, 박해를 피해 정착하.. 더보기
<국내성지053> 강릉 대도호부 관아 190104 관아는 넓은 의미로는 관원들이 모여 나랏일을 보던 곳 전체를 의미하지만, 좁게는 지방관이 파견되어 업무를 보던 곳을 말한다. 강릉 대도호부 관아는 조선 시대 강릉 대도호부 행정 기관이 위치한 읍치의 공간이다. 1994년 강릉 임영관지라는 이름으로 사적 제388호로 지정되었다가, 2014년 11월 27일 강릉 대도호부 관아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객사문인 임영관 삼문(국보 제51호), 칠사당(강원도 유형 문화재 제7호) 이외에는 대부분 훼손된 것을 복원하였다. 강릉 대도호부 관아는 조선 시대 강릉에 있던 현재의 시청과 같은 역할을 하였지만, 사법권이 있어 죄인을 심문하거나 옥에 가두어 두었다는 것이 현재와 다른 차이점이라 하겠다. 관아에서는 박해 당시 신자들을 심문하기도 하였고, 어떤 이들은 관할 옥에서 .. 더보기
<국내성지052> 양양 아기예수의 성녀데레사성당과 38선 티모테오순례길 190103 양양 성당은 1921년 4월 영동 지역에 최초로 설립된 본당으로, 최문식 신부가 상도문리에 천주당을 세운 것이 기초가 되어 양양 본당이 설립되었다. 1922년 2월 양양읍 서문리로 본당을 옮겼다가, 1936년 대홍수로 성당이 침수되어 1937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성당을 신축하였다. 1937년 7월 양양 본당에 부임한 이광재 티모테오 신부는, 해방 뒤 북한에서 종교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자 북쪽의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남쪽으로 무사히 넘어가도록 도와주었으나 정작 본인은 "양들을 두고 갈 수 없다."며 월남하지 않았다. 또한 평강과 이천에서 사목하던 신부들이 체포되자 이곳을 다니며 사목 활동을 하였고, 전쟁이 일어난 뒤에도 끝까지 남아 교우들을 돌보고 성사를 집전하였다. 이광재 신부는 1950년 10월 9일 .. 더보기
<국내성지051> 춘천교구의 요람, 곰실공소 190102 곰실은 춘천시 동내면 고은리의 옛 지명이며, 곰실 공소는 엄주언 마르티노가 세운 공동체로 현 춘천교구의 요람이다. 엄주언은 우연히 접한 [천주실의]와[쥬교요지]에 감명을 받고 온 가족이 천진암으로 가서 교리 공부를 하고 그곳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춘천 서면 월송리로 돌아와 전교를 하였으나 지역 주민들의 배척을 받았다. 1910년경 곰실 윗너부랭이로 이주한 엄주언은 집 옆에 강당을 세우고 가족들끼리 공동체를 시작하였다. 공동체가 확대되면서 교우 수가 증가하자 아랫너부랭이로 옮기고, 당시 관할 본당이었던 풍수원 본당의 정규하 아우구스티노 신부에게 사목 방문을 부탁하였다. 곰실 공소의 교우 수가 더욱 증가하자, 1920년에는 제대로 규모를 갖춘 공소를 세웠으며, 그해 9월 김유룡 필립보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 더보기
<국내성지050> 죽림동 주교좌성당과 6.25순교자 성직자묘역 190102 죽림동 주교좌성당의 전신은 '곰실 본당'이다. 곰실 본당은 1920년 9월 22일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된 공동체이며, 활발한 전교 활동을 하고자 현재의 자리로 본당을 이전하였다. 성당은 1949년 4월 5일 신축 기공식을 가지고 거의 완공 단계였으나, 전쟁이 일어나면서 성당 한쪽 벽이 무너지고 사제관과 부속 건물이 대파되었다. 전란 중에도 복구 작업을 진행하여 1956년 6월 8일 죽림동 성당의 주보 축일에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우리나라 1950년대 석조 성당 건축의 모습을 잘 보여 주는 건물로 인정되어 등록 문화재 제54호로 등록되었다. 죽림동 주교좌성당의 뒤뜰에는 교구 성직자 묘역이 있는데, 이곳은 춘천교구에서 활동하다가 선종한 사제들이 잠든 곳인 동시에 신앙을 증언하고 목자로서의 소명을 다하려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