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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친형제 송년회, 더 플라자호텔 도원 221204 장소 :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로 119(태평로2가 23) The PLAZA Hotel 도원레스토랑(중국식당) 날자 : 2022년 12월 4일(일) 오후 6시 참석자 : 친가 3남매 부부 3층 도원(TAOYUEN) 송년만찬 더보기
<한국누정011> 서울 전망 명소, 남산 팔각정 220225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삼일대로 231(예장동), 남산공원 내 촬영일자 : 2022년 2월 25일, 흐림 남산 팔각정은 1959년 이승만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우남정을 1960년 4.19의거 때 철폐한 후 1968년 11월 11일 건립된 역사를 갖고 있다. 팔각정은 남산 정상에 세워져 있어 서울시가가 눈아래 펼쳐진다. 남산은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한 서울의 상징으로서 높이는 해발 265m이고 본래 이름은 인경산이었으나 조선조 태조가 도읍지를 개성에서 서울로 옮겨 온 뒤에 남쪽에 있는 산이므로 '남산'으로 지칭되었고 풍수지리상 안산으로 중요한 산이다. 남산팔각정에서는 매년 새해 첫날 해맞이행사가 개최되고 저녁이면 저녁놀이 황홀한 곳이다. 또한 지척에 있는 서울타워의 전망대에서는 서울 전경이 한 눈.. 더보기
<필름사진 추억여행> 대구 약령시 한방축제 030508 장소 : 대구광역시 중구 달구벌대로 415길 49, 약령시장 출사일자 : 2003년 5월 8일, 맑음 카메라 : Nikon FM2, 필름 : Kodak Gold, 사진스캔 더보기
<국내성지169> 평화의 안식처, 성직자 묘지 211228 1915년에 조성된 성직자 묘지는 대구대교구청 내에 자리하며, '남산 100년 향수 길'인 성모당, 성 유스티노 신학교,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과 이어져 있다. 이곳에는 초대 교구장인 드망즈 주교를 비롯한 7명의 주교, 6명의 몬시뇰, 63명의 사제, 그리고 2명의 차부제가 잠들어 있다. 묘지 입구에는 "Hodie Mihi Cras Tibi."(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는 "그의 운명을 돌이켜 보며 네 운명도 같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어제는 그의 차례요, 오늘은 네 차례다."(집회 38,22)에서 따온 라틴 말이다. 묘지를 들어서면 큰 화강암 십자가가 보이는데, 그 아래에는 "그때 하늘에서 사람의 아들의 표징이 나타날 것이다."(마태 24,30)라고 적혀 있다. 이는 공심.. 더보기
<국내성지168> 성 유스티노 신학교 211228 대구대교구의 초대 교구장인 드망즈 주교는 신학교를 설립하고자 했지만 재정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그런데 중국 상하이의 어떤 신자가 거액을 희사하면서 '유스티노 성인'을 주보로 모실 것을 요청하여, 1914년 '성 유스티노 신학교'가 설립되었다. 일제의 탄압으로 성 유스티노 신학교가 1945년 3월 19일 문을 닫기까지 모두 67명의 사제가 배출되어 삼남 지방의 신자들의 영적인 유익을 위한 사목 활동을 하였다. 이후 40여 년이 지난 1982년 '선목 신학대학'으로 재개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 유스티노 신학교 건물(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23호)은 프와넬 신부가 설계하였고, 공사는 중국인 기술자들이 맡았으며, 책임자는 프랑스 영사관을 건축할 때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성 유스티노 신학교는 ㄷ자형 평면.. 더보기
<국내성지166> 순교 사적지, 경상 감영과 옥 터 211228 경상 감영은 조선 시대 경상도 지역의 행정 중심지이며 천주교인들에게는 신앙을 증언한 곳이자 순교한 순교지이다. 1815년 경상도 북부와 강원도 남부 지방에 을해박해가 일어나자 청송 노래산, 진보 머루산, 일월산 곧은정, 우련밭에 있는 신자들이 붙잡혀 감영으로 이송되어 취조를 받았다. 그들 가운데 김윤덕 아가타 막달레나는 장사(杖死)하고, 최봉한 프란치스코, 김시우 알렉시오, 서석봉 안드레아, 김흥금, 김장복, 안치룡 등은 경상 감영 옥에서 옥사하였으며, 살아남은 7명은 대구 관덕정에서 참수형을 당하였다. 또한 1827년 정해박해의 여파로 상주 잣골, 상주 멍에목, 상주 앵무동, 봉화 곰직이에 살던 신자들이 체포되어 경상 감영으로 이송되었다. 이들 가운데 박경화 바오로, 김세박 암브로시오, 안군심 리카르도.. 더보기
조선왕조 별궁, 덕수궁 200208 덕수궁의 옛 이름은 경운궁이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도성 내 궁궐이 모두 소실되어 한양으로 환도한 선조가 월산대군의 옛집을 임시 행궁으로 사용하면서 궁궐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광해군이 1611년 재건한 창덕궁으로 어가를 옮기면서 별궁인 경운궁이 되었다. 1896년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경운궁의 궁역을 확장하고 새로이 전각들을 건축하였으며,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으뜸 궁궐로 삼았다. 으뜸 궁궐의 격에 맞는 궁궐 조성을 위해 궁역을 지속적으로 확장하였으나 이미 자리 잡은 미국, 영국, 러시아 공사관과 선교사 주거지로 인해 궁역의 경계가 불규칙해졌다. 전성기 때의 경운궁은 현 예원학교와 덕수초등학교, 옛 경기여고 일대를 포함하는, 현재 넓이의 3배에 달하는 큰 궁궐이었다. 현재의 덕수궁 영역 외.. 더보기
<국내성지130> 답동 주교좌성당 191128 답동 성당은 인천교구 주교좌성당으로 주보성인은 바오로 성인이다. 1888년부터 개항지인 제물포 지역에서 조선교구가 성당 대지를 물색하면서 성당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대지 매입을 결정한 파리 외방전교회는 빌렘 신부(한국명 홍석구)를 초대 주임 신부로 임명하고 1889년 7월 1일 제물포 본당(현 답동 성당)을 설립하였다. 1893년 3대 주임 마라발 신부(서요셉, 1893-1904년)가 본격적으로 성당 건립을 시작하였다. 1894년 청.일전쟁으로 잠시 중단되었다가 1895년 정초식을 하여 이듬해 종탑이 완공되었다. 1897년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1890-1933년)가 참석한 가운데 축성식이 거행되었다. 성당 건물은 전면에 3개의 종탑을 갖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1933년 신자 수가 1,500여 명에 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