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 썸네일형 리스트형 <아름다운성당> 명동대성당 190123 한국 천주교의 총본산으로 1892년에 착공해 1898년에 준공했다. 사적 제258호로 지정되었으며 종현성당, 명동천주교당이라고도 한다. 명동성당이 세워진 곳은 원래 역관 김범우의 집이 있던 자리로 이승훈, 정약전의 3형제, 권일신 형제 등이 모여 조선 천주교회를 탄생시킨 곳이다. 우리나라 근대 시기에 지어진 대표적인 건물로 평면은 라틴 십자형 삼랑식이고, 고딕 양식의 벽돌 건물이다. 설계와 감독은 프랑스인 신부 코스트가 담당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자들의 유해를 지하 묘지에 안장했으며, 1945년 이름을 종현성당에서 명동대성당으로 바꾸었다. 교회창설 200주년이었던 1981년에 스테인드 글라스 등 대대적인 수리공사에 착수해 1984년 마무리했다.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며 구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더보기 <국내성지100> 영남 제일의 순교터, 관덕정순교성지 190405 대구대교구 제2주보성인이신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곳이며, 많은 신앙 선조들이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참수 치명당한 거룩한 곳으로, 공식 명칭은 '천주교 대구 관덕정 순교성지'이다. 관덕정은 조선 시대 무과 시험 제도의 하나인 도시(都試)를 행하던 도시청으로 조선 영조 25년에 세운 건물로 옛 이름은 관덕당이었다. 관덕당은 누각과 넓은 마당이 있어 군사 조련이나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장으로 쓰이던 곳이었는데, 그런 이유로 이곳에서 사형 집행도 이루어졌다. 관덕당에서는 1815년 을해박해 때 7명이 순교했으며, 1827년 정해박해 때 3명, 1866년 병인박해 때 이윤일 요한 성인을 비롯하여 7명이 순교했다.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는 날뫼, 묵리 등을 거쳐 1976년 미리내 무명 순교자.. 더보기 <국내성지099> 루르드 성모님을 모신곳, 성모당 190405 성모당은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안에 위치한, 대구대교구의 제1주보이신 루르드 성모님을 모신 곳이다. 성모 동굴과 크기와 바위 모양까지 똑같고, 둘러싼 벽돌당은 레오 13세 교황이 로마에 지은 루르드 동굴의 벽돌당과 같다. 1911년 대구대교구의 초대 교구장이 된 드망즈 주교가 주교관, 신학교, 주교좌성당 증축이 이루어진다면 대구가 가장 잘 바라다보이는 곳에 성모 동굴을 짓기로 허원했다. 그리하여 드망즈 주교가 직접 "1911 EX VOTO IMMACULATAE CONCEPTIONI(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드린 서약에 의해) 1918"이라는 글을 새긴 성모당이 완공되어 1918년 10월 13일 축복식을 가졌다. 1973년 5월부터는 성모의 밤 행사를 개최하면서 유명해졌고, 교구의 제2주보성인이신 이윤일.. 더보기 <국내성지067> 울산 병영 순교성지 190211 울산 병영장대는 당시 경상좌도 병마절도사가 있어 군사 훈련뿐 아니라 중죄인을 처형하던 곳으로 병인박해(1866~1873년) 중에 3인 순교자를 포함하여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된 순교터이다. 복자 허인백 야고보 순교자는 간월산 아래에 살다가 죽령 교우촌(언양 죽림굴, 대재 공소)으로 이주하였다. 이즈음 오페르트의 남연군 묘 도굴 사건(1868년)으로 대원군은 박해령을 내렸고, 당시 죽령 교우촌에서 공소 회장을 맡고 있던 복자 이양등 베드로 순교자와 이주해 왔던 복자 김종륜 루카 순교자도 함께 체포되어 울산 장대에서 십자 성호를 긋고, 예수 마리아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1868년 9월 14일(음력 7월 28일) 군문효수형(군영에서 죄인의 목을 베어 그 머리를 매달아 걸어 두어 군중에게 경계심을 주는 형벌.. 더보기 <국내성지019> 대구대교구 계산 주교좌성당 180520 계산 성당은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이다. 신나무골에서 사목하던 김보록 신부가 대구 본당을 설정하고 1899년에 한옥 성당을 봉헌했는데, 이것이 곧 현재의 계산 주교좌성당의 전신이다. 그 뒤 이 한옥 성당은 화재로 소실되고 1903년에 현재의 고딕식 성당 건물이 뮈텔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됐는데 1911년에 주교좌성당으로 지정되면서 종탑을 높였고 그 뒤에도 몇 차례의 부분적인 보수로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주교좌성당답게 신자들의 활동도 두드러졌는데 신학문 교육 기관인 성립학교의 여자부는 대구지역 여성 교육의 요람이 되었으며 후에 효성보통학교로 승격되어 이 지역의 대표적인 초등 교육 기관으로 성장했고, 1909년에는 가톨릭 청년회의 효시인 성립학우회가, 1912년에는 명도회를 발족해 교회 주보를.. 더보기 <국내성지013> 생과 사의 갈림길, 광희문 180306 광희문은 서울 성곽의 사소문(홍화문, 광희문, 소덕문, 창의문으로 사대문 사이에 세웠던 문) 중에 동남 방향에 있는 성문으로 장충단에서 한강 사이의 남소문이 없어진 뒤 북쪽의 수구문을 일컬어 광희문이라고 불렀다. 본디 수구문은 서소문과 함께 도성 안의 시체를 성 밖으로 운반해 내던 곳으로 송장 또는 시체의 문이라는 뜻에서 시구문(屍口門)이라고도 불렀다. 서울과 수원, 용인 등 인근 지역의 교우들이 도성 안으로 끌려 들어왔고 가혹한 고문 속에서 배교를 강요당하다가 끝내 이를 거부함으로써 치명의 길을 가야 했다. 도성 안에서 참수 치명한 순교자들의 시신은 짐짝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이곳에 내다버려졌으니 실로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이었다 살아서 이 문을 들어섰던 이들은 나중에는 시체가 되어 한마디 말.. 더보기 <국내성지009> 평신도들의 순교터, 서소문순교성지 180303 서소문 성지는 조선시대 공식 사형 집행장으로, 사직단 서쪽에 처형장을 두어야 한다는 '예기'의 가르침과 최종 사형 판결을 내리는 형조나 의금부와 그리 멀지 않다는 편의성,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칠패시장'이 있어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대부분의 처형이 이루어지던 곳이다. 1801년 신유박해 이래 이 처형장에서 순교하신 분은 신원이 확인된 분만도 100명이 넘는다. 이 가운데 44위가 시성되었는데 단일 순교지로는 성인을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정하상 바오로와 김효임 골룸바, 김효주 아녜스 성인 등이 있다. 또한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를 시복하셨다. 서소문에서 순교하신 신유박해 순교자 25위와 181.. 더보기 <국내성지002> 한국천주교의 상징, 주교좌 명동대성당 180213 민속 명절 설을 앞두고 한국 천주교의 상징이자 심장인 명동대성당을 찾았다. 오전 일찍 찾아간 명동대성당은 고요속에 엄숙히 서있고 하늘의 서광인양 태양의 후광이 빛난다. 명동대성당은 한국 천주교가 탄생한 곳이자 첫번째 본당이다.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한뒤 귀국하여 명례방(지금의 명동)에 있던 김범우의 집에서 신앙공동체를 형성하고 신앙집회를 갖기 시작하였다 이로써 한국인 고유의 힘에 의해 한국 천주교가 탄생하였고, 이를 금지하는 위정자들에 의해 탄압을 받고 집주인 김범우는 최초의 순교자(1786년)가 된다. 그 후 1882년부터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블랑 주교가 이 집과 주변터를 매입했고 1887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우여곡절 끝에1898년 5월 29일에 봉헌하게 된다. 그리하여 한국천주교의 첫번째 .. 더보기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