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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출사/수도권

사라져 가는 큰제비고깔, 남한산성 200731

장맛비로 인해 야생화 출사를 못 나간지도 벌써 20일이 넘는 것 같다.

그런데도 앞으로도 8월 10일까지 계속 비가 온다는 예보다.

오늘은 잠시 비가 그치고 흐린 날씨가 지속된다는 예보에 따라 큰제비고깔을 보러 남한산성으로 갔다.

 

큰제비고깔 서식지는 남문과 서문 중간지점인 수어장대 아래 성 밖 숲에 있는데 오늘은 남문주차장이 크로즈 되어 중앙주차장에 파킹을 하고  북문으로 올라 서문을 거쳐 수어장대로 가는 코스를 택했다.

북문에서 수어장대까지는 거리상으로는 1.7km 밖에 안되지만 수어장대가 가장 높은 곳에 있어 오르막 길이 지속되는 터라 삼복더위 한 중간인 지금, 더구나 장마 중이라 습도가 높은 오늘 같은 날은 땀깨나 흘려야 한다.

 

 

남한산성에는 동, 서, 남, 북 네 개의 문이 있는데 문마다 별도의 이름이 붙어있다. 북문인 이 문의 이름은 '전승문'이다.

'싸움에 지지 말고 모두 승리한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라는데, 불행하게도 딱 한 번의 전투에서 대패하고 그 후는 전쟁이 없었다.

 

 

병자호란(1636년) 당시 3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이문을 열고 나가 2만 명의 청나라 군사와 맞붙어 전멸하고, 임금 인조가 청 태종 앞에서 삼배구고두례를 올리고 신하가 되는, 한반도 역사 이래 최대의 굴욕을 겪는 삼전도 굴욕의 출발점이다.

 

 

육수깨나 흘리며 한고비를 올라서니 시야가 트이고 성곽이 주는 곡선의 율동이 마음을 부드럽게 해 준다.

 

 

남한산성에 특히 많이 살고 있는 누리장나무가 한창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누리장나무는 누린내가 난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실제 냄새를 맡아보면 누린내가 나지만 그리 역겨운 냄새는 아니다. 하지만 가을이 되면 빨간 열매가 주는 아름다움이 누린내로 인한 불명예를 씻고도 남는다.

 

 

이어지는 성벽과 주도로가 헤어지는 갈림길이다. 이 아래쯤에 좀 있으면 병아리풀이 모습을 드러내고 길가에 엎드려 사진 찍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이쯤이면 눈 속을 파고드는 땀이 고통스러우면서도 주변에 펼쳐지는 장대한 소나무 군락과 힘이 넘칠 대로 넘치는 숲의 활력에 취해 오르막 길이 힘든 줄도 모른다.

 

 

'우익문'이라는 이름이 붙은 서문이다. 문을 나가 오른쪽으로 가면 전망대가 있다. 이 전망대에서 롯데타워를 중심으로 한 서울의 강동지역과 저 멀리 남산까지 이어지는 한강의 모습을 한눈에 구경할 수 있다. 또한 서울시내로 떨어지는 일몰의 장관을 담으려는 사진가들의 자리다툼이 치열한 곳이기도 하다.

 

 

리드미컬한 곡선미를 즐기며 성곽을 따라가노라면 시야가 탁 트이는 지역이 나오고 롯데타워가 눈앞에 나타난다.

왼쪽에 화장실이 있는 휴식 장소가 있고 쭉쭉 뻗은 소나무 숲 아래에서 솔향기를 맡으며 흘린 땀을 닦는다.

 

 

수어장대를 300m 남겨놓은 이 지점에서 보는 성곽의 곡선미가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드디어 수어장대 입구에 도착했다.

 

 

수어장대는 남한산성 방위의 총사령관인 수어사가 상주하며 감시하고 지휘하는 지휘소이다.

재작년에 왔을 때는 한 바퀴 둘러봤는데 오늘은 정비공사 중이라 올라갈 수가 없다.

 

 

시간도 빛이 들어오는 11시가 되었고 하여 바로 큰제비고깔 서식지로 간다. 

예년에는 성벽 앞에 있는 풀밭에 싱아가 서식했는데 올 해는 싱아를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자연생태계의 변화가 심하긴 해도 매년 올 때마다 싱아를 만났는데 올해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조금 불안하다.

 

 

불안감이 현실로 닦아왔다. 큰제비고깔 서식지도 칡덩굴을 포함한 다른 식물들이 점령해 버렸고, 여섯 포기의 큰제비고깔이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2015년에 처음 내가 여기 왔을 때는 이곳 전체가 큰제비고깔 밭이었는데 매년 줄어들어 이제는 그 명맥마저 사라지기 직전이다. 큰제비고깔 뿐이 아니고 다른 야생화들도 점점 개체수가 줄어들거나 이미 사라진 것도 있다. 고산 지대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 야생화가 많이 서식하여 '야생화의 보고'라는 별칭을 듣던 남한산성도 이젠 옛날이야기가 되어간다.

 

큰제비고깔 설명과 더보기  :  blog.daum.net/ygkgyou/211#none

 

큰제비고깔

학명 : Delphinium maackianum Regel 분류 : 미나리아재비과 제비고깔속 여러해살이풀 꽃말 : 위엄, 영웅 원산지/분포지 : 한국 / 한국, 만주, 우수리강, 헤이룽강 서식지 : 햇볕이 많이 들지 않는 산기슭 ��

blog.daum.net

 

 

 

내년에 또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지금 있는 것만이라도 정성껏 담아둔다. 빛도 가끔씩 왔다 갔다 하고 아주 작은 종류의 벌이지만 벌들도 협조를 아끼지 않으니 땀 흘린 보람도 있다.

 

 

 

 

 

 

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다른 꽃들도 많았었는데 오늘은 꽃층층이꽃 몇 포기 밖에는 만날 수가 없다.

 

 

아쉽고 허전한 마음을 안고 하산을 한다.

청노루귀, 청닭의난초, 제비난초, 천마, 흰지치, 털중나리 등 그동안 많은 희귀 야생화들이 사라졌거나 사라져 가고 있다.

그중에는 강원도 등지의 800m 이상 고산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꽃도 있는데, 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마음만 애타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