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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이야기/강원도

강릉여행, 배롱나무꽃, 강릉 오죽헌 200814

수령이 600년이나 된다는 배롱나무꽃을 보러 강릉 오죽헌으로 간다.
뒤뜰에 까마귀처럼 까만 대나무가 많아서 오죽헌(烏竹軒)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오죽헌이라는 이름이 여수에도 있고 화순에도 있어서 강릉 오죽헌이라 부른다.


오만 원권 지폐에 신사임당의 초상이 들어가고 오천 원권 지폐에 율곡 초상이 들어가서
세계 최초로 모자가 화폐 인물이 된 것을 기념하는 조형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기념 촬영을 한다.


65세 이상은 무료 입장이다.


입구부터 중앙 분리대 화단에 배롱나무를 식재하여 줄을 잇고 있다.
배롱나무 사이사이에 줄기가 까만 오죽을 심어 오죽헌에 왔음을 실감나게 한다.


율곡 이이의 동상이다.
앞에 있는 '견득사의'는 소학에 나오는 말로 '이득을 보거든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뜻이다.


오죽헌으로 들어가는 자경문과 그 앞의 넓은 광장이다. 광장에는 대형의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에 강릉 오죽헌의 설명문과 안내도가 있다.
강릉 오죽헌은 신사임당의 생가이자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며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어있다.


자경문 주위에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고 꽃이 피어 있다.
아직은 나무가 크지도 않고 개화 상태도 피크는 조금 지난 것 같다.


자경문은 오죽헌의 안과 밖을 가르는 문이다.
율곡이 어머니를 여의고 금강산에 들어갔다가 유학에 뜻을 두고 강릉 외가로 와 외할머니 앞에서 '스스로 경계하는 글' 11조를 지었는데 이를 율곡의 자경문(自警文)이라 한다. 이를 따서 지은 문의 이름이다.


자경문의 안쪽에도 넓은 광장이 있고 오죽헌과 문성사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문이 있다.
이 담장에도 여러 그루의 배롱나무가 심어져 지조 높은 선비의 단심 인양 붉은빛이 강렬하다.


율곡 이이의 영정을 모신 사당 문성사이다.


율곡 이이의 영정이다. 이당 김은호 화백이 그린 그림으로 표준 영정으로 선정되었다.


문성사를 지키는 절개 굳은 씩씩한 소나무 율곡송의 모습이 듬직하다.


오늘의 주인공 사임당 배롱나무이다.
600살이 넘는다는데 나무가 그리 크다는 느낌이 없다. 병산서원의 노거수는 380살이라는데 이보다 훨씬 굵고 키도 크다.
나무의 가지 끝을 인공적으로 잘라 주는지 사진으로 보기에 매년 같은 모습이다.


강릉 오죽헌의 주무대이다. 왼쪽 마루방에서 율곡 이이가 여섯 살까지 공부했다는 곳이다.


신사임당이 용꿈을 꾸고 율곡을 낳았다는 곳이다. 신사임당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신사임당과 율곡이 직접 가꾸었다고 하는 율곡매이다.
천연기념물 제48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홍매화이다.


오죽헌의 사랑채이다.
기둥의 주련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라고 한다.


운담문을 나가면 어제각이 있다.
어제각은 율곡의 저서 '격몽요결'과 어린 시절 사용하던 벼루를 보관하고 있는 전각이다.
임금의 명에 의해 지은 집이라서 어제각이라 한다.


오죽헌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다.
여전히 붉은 배롱나무꽃이 오죽헌 전부를 보호하듯이 감싸고 있다.


자경문으로 들어가서 입지문으로 나온다.
입지문(立志門)은 율곡의 자경문(自警文) 제1조 입지(立志)(성인이 되려는 큰 뜻을 가져야 한다)에서 따온 이름이다.


오죽헌과 배롱나무꽃은 선비의 지조와 단심이라는 면에서 잘 어울린다는 감명을 받으며 선교장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