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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이야기/강원도

강릉여행, 배롱나무꽃, 선교장과 활래정 200814

강릉 선교장(船橋莊)은 집 앞이 경포호수였으므로 배로 다리를 만들어 호수를 건너 다녔으며 이로 인해 선교장이라 불렀다.


선교장 초입에 넓은 연못이 있고 이 연못에 활래정이라는 정자가 두 다리를 연못에 박은 채 시인 묵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또한 연못 네 모서리와 둘레에 배롱나무를 심어 붉은 꽃을 피울 때면 연꽃과 활래정과 함께 아름다움을 다툰다.


오죽헌과 마찬가지로 여기도 조금 늦어서 개화시기의 절정은 지난것 같다.
더구나 연꽃은 전부 져버리고 연잎만 무성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활래정


선교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으로 인기 있는 스타건물인 활래정은 1816년에 이내번의 손자 이후가 지었는데 앞쪽 돌기둥이 연못 속에 뿌리박고 있는 모습이 창덕궁 후원의 부용지에 있는 부용정과 닮았다.


연못을 한바퀴 돌며 사진을 찍고 대저택답게 넓은 앞뜰을 거쳐 본채로 간다.
선교장은 전체 건물이 102칸이고 대문이 2개 일반 문이 12개의 거대한 규모로 '대궐 밖 조선 제일 큰 집'으로 소문이 나서 조선시대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유람하려는 풍류 시인, 묵객들이 구름같이 찾아왔고, 절정기 손님용 밥상 소반만 300개가 넘었다고 한다.


건물의 정문인 솟을대문이 우람하고 그 아래에 선교유거(仙嶠幽居)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다. 이는 '신선이 기거하는 그윽한 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행랑채의 길이가 어마어마하게 길다.


동별당 쪽으로 가본다. 동별당은 남자 주인이 거처하는 집으로 '오은고택'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이 집은 입향선조 이내번의 손자 이후가 열화당, 활래정과 같이 지은 집으로 '오은'은 그의 호이고 현판 글씨는 당대 최고의 서예가 여초 김응현의 글씨라 한다.


뒤쪽 언덕에는 사당이 있다.


이 집의 안살림을 총괄하는 안방마님이 기거하는 안채 주옥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하나의 문을 지나 또 하나의 문이 있고 그 안쪽에 또 다른 문이 앞길을 막고 있다. 코로나 19 때문에 안쪽은 사진을 못 찍고 건물의 뒷모습만 담았다.


찾아오는 손님을 모시는 사랑채로 들어가는 문이다. 행랑채가 끝없이 이어지고 이런 형태의 행랑을 줄행랑이라고 하며 여기는 지체가 낮은 손님들이 묵는 사랑채이다.


줄행랑 끝의 오른쪽에 있는 건물이 중사랑으로 중간 레벨의 손님들이 묵는 사랑채이다.


고급 호텔에 해당하는 열화당이다. 여기서는 주인의 가족들이 모여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건물의 왼쪽 지붕에 있는 것은 햇볕을 가리는 차양으로 구리로 제작했다고 한다. 창덕궁 후원 연경당 선향재의 차양은 이보다 규모가 크다.
앞에 있는 푸른 나무는 능소화이다. 지금은 꽃이 다 지고 잎만 남았다.


왼쪽 언덕에는 한국 전통 문화 체험관과 공연장이 있다.


선교장에는 송림이 울창한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좌측으로 가면 백호길, 우측으로 가면 청룡 길이라 이름 붙여놓고 있다. 우리는 백호 길을 따라가며 진한 솔향을 맡으며 선교장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반대편에 보이는 담장 너머가 청룡길이다.


왼쪽에 차양이 잇는 곳이 열화당이고, 그 오른쪽이 안주인이 사는 안채 주옥 건물들이다.


여기가 선교장 전체 건물이 다 보이는 장소이다. 왼쪽의 열화당, 중 사랑에서부터 오른쪽 끝에 있는 활래정까지 한눈에 다 보인다.


연못과 활래정을 위에서 내려다본모습이다.


선교장 관람을 마치고 카페 리몽에서 시원한 한잔의 커피로 더위를 식힌다.


선교장 2차 방문

일자 : 2022년 6월 20일, 맑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