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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이야기/경기도

<조선왕릉> 고양 서삼릉(2), 희릉과 예릉 210420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 40기의 답사를 완료 단계에 이르렀다. 고양에 있는 서삼릉(희릉, 예릉, 효릉)과 파주에 있는 파주삼릉(공릉, 순릉, 영릉)을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있는 서삼릉으로 간다.

 

 

서삼릉 입구에 있는 주차장이 좁아서 진입로 도로변에 주차들을 하고 있다.

 

 

매표소 입구 왼쪽에는 효릉 관람시 통과해야 하는 젖소개량사업소 정문이 있다.

 

 

매표소 오른쪽으로는 경마목장이 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서삼릉 입구로 들어선다.

 

 

서삼릉에는 원래 희릉, 효릉, 예릉의 세 능이 있어서 서삼릉이다. 그런데 서삼릉에는 현재 희릉과 예릉 만 관람이 가능하다. 효릉과 소경원, 회묘, 태실 등이 있는 지역이 젖소개량사업소에 매각이 되어 땅 주인인 젖소개량사업소의 허가가 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한 비공개지역이 되었다. 

 

 

나는 이번 서삼릉 관람을 하기 전에 문화재청 규정에 따라 궁릉 유적 본부 조선왕릉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공개 제한 지역 출입 신청서'를 다운로드하여 '학술조사 목적'으로 '20일 전에' 출입허가신청을 하였다. 그 결과 서삼릉에서는 허가 의사가 있으니 효릉이 위치해 있는 땅 주인 젖소개량사업소의 허가를 먼저 받으라는 답변이 왔다.

젖소개량사업소에 전화를 하여 학술목적으로 2인의 출입허가를 요청하였더니, 코로나 때문에 출입이 금지되고 있으니 출입금지 해지 여부를 매월 전화로 체크해 보라는 답변이다.

그래서 아쉽지만 오늘은 효릉 지역을 뺀 희릉과 예릉만을 관람하게 되었다.

 

 

표사는곳과 표 받는 곳을 통과하면 화장실 앞에 있는 희귀 소나무인 백송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희릉과 예릉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관람의 편의상 오른쪽에 있는 희릉으로 먼저 간다.

 

 

봄을 맞은 소나무와 활엽수들이 신록이 한창이다.

 

 

희릉의 홍살문이다. 금천교는 생략되었고, 좌우에 있어야 할 수복방과 수라간도 없다.

 

 

희릉은 조선 제11대 임금 중종의 두 번째 왕비인 장경왕후 윤 씨의 능이다.

장경왕후(1491~1515)는 윤여필의 딸로, 1506년 중종의 후궁 숙의가 되었다가 다음 해에 첫 번째 왕후 단경왕후가 폐위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중종 사이에서 1남(인종) 1녀(효혜 공주)를 낳았으며, 1515년(중종 10) 인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25세에 세상을 떠났다. 희릉은 처음 태종의 헌릉 서쪽 언덕에 조성되었다가 1537년(중종 32)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1544년(중종 39)에 중종이 세상을 떠나자 장경왕후릉 옆에 중종의 능을 조성하여 정릉이 되었다가, 1562년 세 번째 왕후였던 문정왕후가 자신이 죽은 후에 중종과 합장하기 위하여 중종의 능을 현재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정릉 자리로 옮겨오자 장경왕후의 능만 남게 되고 능호도 희릉으로 고쳐졌다.

그 후 중종이 묻혀있는 정릉이 수해를 많이 입자 중종과의 합장을 염원하던 문정왕후의 뜻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아들 명종이 문정왕후를 서울 노원구의 태릉에 안장한다.

그리하여 결국 중종과 세 왕후는 뿔뿔이 흩어져 모두가 외로운 고혼이 되었다.

중종  :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정릉

첫째왕후 단경왕후  :  경기도 양주시 온릉

두째왕후 장경왕후  :  고양시 서삼릉내 희릉

셋째왕후 문정왕후  :  서울시 노원구 태릉

 

 

 

향로와 어로
판위
정자각
신로가 왕릉의 강(언덕)까지 이어져 있다. 조선왕릉 중 유일한 모습이다.
예감

 

능침 공간의 모습이다. 올라갈 수가 없어서 서삼릉의 사진을 카피해 왔다.

 

 

비각이다. 비석에는 '조선국 장경왕후 희릉'이라 새겨져 있다.

 

 

울창한 수림에 마침 야광나무가 활짝 꽃을 피우고 있다.

 

 

울창한 수림 신록 사이의 길을 따라 예릉으로 간다. 서삼릉의 울창한 숲길은 예전부터 서울시민과 고양시민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여기도 야광나무가 한그루 멋지게 꽃을 피우고 있다.

 

 

이건 귀룽나무인 것 같은데 자신이 없다.

 

 

예릉 입구이다.

 

금천교

 

 

예릉은 조선 제25대 임금 철종장황제와 철인장황후 김 씨의 능이다.

철종장황제(1831~1863, 재위 1849~1863)는 전계대원군과 용성부대부인의 아들로(강화도령), 1849년 헌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순원숙황후의 명으로 순조의 아들로 입적되어 왕위에 올랐다. 삼정(전정, 군정, 환곡)의 문란으로 지방에서 민란이 일어나자 이를 수습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였으나 안동 김 씨의 세도로 인해 국정을 바로잡지 못하였다. 1863년 33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대한제국 선포 후 1908년(융희 2) 황제로 추존되었다.

철인장황후(1837~1878)는 김문근의 딸로, 1851년(철종 2)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1858년(철종 9) 원자를 낳았으나 일찍 죽는 비운을 겪었다. 고종이 왕위에 오른 후 대비가 되었으며, 1878년(고종 15) 42세로 세상을 떠났다. 대한제국 선포 후 1908년(융희 2) 황후로 추존되었다.

 

 

향로와 어로, 오른쪽에 판위가 있다.
정자각
신로
산신석과 예감이 같이 있다.

 

 

능침 공간

 

 

국조상례보편의 예에 따라 조성된 마지막 조선왕릉의 형태이다. 쌍릉의 형식으로 뒤에서 볼 때 오른쪽이 철종장황제, 왼쪽이 철인장황후의 능침이다. 봉분에 병풍석은 없고 난간석만 있다.

 

 

비각이다. 비석에는 '대한 철종장황제 예릉 철인장황후 부좌'라고 새겨져 있다.

 

 

수라간은 없고 수복방의 흔적만 남아 있다.

 

 

의령원과 효창원으로 간다.

 

 

관리사무소 건물 앞에 철쭉이 한창이다.

 

 

의령원과 효창원이다.

 

 

의령원은 추존 장조의황제(사도세자)의 맏아들 의소세손(정조의 형)의 원이다.

 

 

효창원은 조선 제22대 정조 선황제의 맏아들 문효세자의 원이다.

 

 

 

제각
표석

 

 

매표소 옆의 금낭화가 떠나는 발길을 전송한다.

 

 

 

서삼릉 주차장에서 약 600m 나오면 닭백숙 요리와 만두, 밀국수를 맛깔나게 잘하는 음식점 너른마당이 있어서 허기진 배를 달래기에 안성맞춤이다. 또 기품 있는 한옥 건물에다 넓은 연못가에 배치해 놓은 돌조각들이 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