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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국내성지076> 한국판 카타콤바, 죽림굴 신앙사적지 190215 죽림굴(대재 공소)은 기해박해(1839년)를 피해 충청도 일원과 영남 각처에서 피난해 온 교우들과 간월의 교우들이 좀 더 안전한 곳을 찾다가 발견한 박해 시대(1840~1868년)의 공소로 언양 지방의 첫 공소인 간월 공소에 이은 두 번째 공소이다. 이 공소는 샤스탕 정 신부와 다블뤼 안 신부가 1840년부터 1860년까지 사목을 담당했던 곳이며, 경신박해(1860년) 때는 박해를 피해 들어온 최양업 신부가 3개월 동안 은신했던 곳이기도 하다. 최 신부는 이 곳에서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집전하며 자신의 마지막 편지를 썼다고 한다. 그 외에도 울산 장대에서 처형된 세 분의 복자 허인백, 이양등, 김종륜이 한때 이곳에서 머물렀으며, 김 아가타도 최 신부를 도우며 이곳에서 지냈다고 한다. 이후 계속되는 경신박.. 더보기
<국내성지069> 첫 순교자, 김범우 순교자 성지 190212 김범우는 1751년 서울 남부의 명례방(현 명동 주교좌성당)에서 중인(中人) 역관의 8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784년 평소 친분이 있던 이벽의 권면으로 입교하여, 이승훈 베드로에게서 토마스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 후 그의 집에서 정기적인 신앙 집회를 가졌으나, 곧 '을사 추조 적발 사건'(1785년)이 발생하면서 지방으로 유배되었다. 유배된 후에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다 유배된 지 2년 만인 1787년 9월 14일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최근까지 김범우의 유배지는 달레가 쓴 [한국천주교회사]에 근거하여 충청도 단양(丹陽)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980년 초 김범우의 후손이 나타나면서, 충청도 단양이 아니라 밀양 단장(丹場)임이 새롭게 밝혀졌다. .. 더보기
<국내성지068> 조씨형제 순교자묘 190212 부산시 강서구 생곡동 배씨(裵氏) 가문의 선산에는 배씨가 아닌 조씨(曺氏) 성을 가진 형제의 묘가 있다. 창녕 조씨 조석빈과 조석증 두 형제는 천주교로 개종한 뒤, 천주교 연구와 전교를 열심히 하였다. 그들은 생곡의 배정문의 동서학당에 은거하면서, 유학과 서학의 비교 연구에 힘쓰고, 한문 성경을 한서(漢書) 속에 감춘 나무 상자를 메고 양반 집안을 찾아다니며 전교하였다. 병인박해가 일어난 2년 뒤인 1868년 무진년에 두 형제는 가락면 상덕리 편도 부락에서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동래 아문으로 끌려간 이들은 배교를 강요받으며 심한 고문을 받았지만, 끝까지 배교를 거부하면서 신앙을 증언하다가 김해읍 왜장대에서 참수당했다. 고문을 하는 사람조차도 이들의 강인한 신앙에 감탄했다고 한다. 순교한 이들 형제의 시.. 더보기
<국내성지067> 울산 병영 순교성지 190211 울산 병영장대는 당시 경상좌도 병마절도사가 있어 군사 훈련뿐 아니라 중죄인을 처형하던 곳으로 병인박해(1866~1873년) 중에 3인 순교자를 포함하여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된 순교터이다. 복자 허인백 야고보 순교자는 간월산 아래에 살다가 죽령 교우촌(언양 죽림굴, 대재 공소)으로 이주하였다. 이즈음 오페르트의 남연군 묘 도굴 사건(1868년)으로 대원군은 박해령을 내렸고, 당시 죽령 교우촌에서 공소 회장을 맡고 있던 복자 이양등 베드로 순교자와 이주해 왔던 복자 김종륜 루카 순교자도 함께 체포되어 울산 장대에서 십자 성호를 긋고, 예수 마리아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1868년 9월 14일(음력 7월 28일) 군문효수형(군영에서 죄인의 목을 베어 그 머리를 매달아 걸어 두어 군중에게 경계심을 주는 형벌.. 더보기
<국내성지066> 부산 순교자 묘소, 오륜대 순교자성지 190211 오륜대 순교자 성지는 부산에서 순교하신 8분의 '부산 순교자 묘소'와 한국 순교 성인 103위 중 26위의 유해를 안치한 '순교자 성당'이 있는 곳이다. 이곳 부산에서는 1866년 병인박해에 이어 1868년 무진년 8월 4일(양력 9월 20일)에 동래 지역의 회장이었던 이정식 요한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이정식의 대자였던 양재현 마르티노를 비롯하여 함께 옥에 갇혔던 여덟 분의 신자들이 수영 장대에서 군문효수의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 후 명장동(동래구 명장동 산96)에 묻혀 있던 이정식 요한 회장의 가족 네 분의 무덤만이 조사 확인되어, 1977년 9월 19일 이곳 오륜대로 이장하여 '부산 순교자 묘소'로 꾸몄다. 현재에는 네 분의 무덤 외에 다른 네 분의 무덤이 가묘로 단장되어 있으며, 특히 이정식 .. 더보기
<국내성지065> 경상좌수영, 수영장대 순교성지 190211 수영 장대골은 병인박해 당시 경상 좌수영이었던 곳으로, 많은 천주교 교인들이 처형당한 순교 현장이기도 하다. 박해가 진행되는 동안 동래의 전교회장 이정식 요한은 위험을 피해 가족들과 함께 기장과 울산 등지로 피신한다. 그러나 동래 포졸들은 갑자기 없어진 사람들에게 의심을 품고 그들의 종적을 찾았고, 마침내 울산에서 이 회장을 비롯하여 아들인 이월주 프란치스코, 박조이 마리아 부부, 조카 이삼근 베드로 등 일가족 4명과 교우 이관복 야고보, 차장득 프란치스코, 옥조이 바르바라를 찾아냈다. 이에 앞서 동래에서는 양재현 마르티노가 체포되었다. 1868년 8월 4일(양력 9월 20일), 동래옥에 갇혀 있던 증거자 8명은 참수형 판결을 받고 수영장대로 끌려 나가 영화로운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 후 이정식의 가족 .. 더보기
<국내성지064> 살 수 있는 터, 살티 신앙 사적지 190210 경부고속도로 언양 나들목에서 12km 남짓한 거리에 있는 살티는 언양 성당, 시외버스 터미널, 석남사를 지나 1km 쯤 더 간 곳에 있다. 경상북도 청도군, 경상남도 밀양군.울주군의 경계 지점에 있는 가지산(1,241m)의 중턱에 위치한 살티는 원래 예로부터 전쟁을 위한 화살을 만들었던 곳이라 해서 시현(矢峴)으로도 불리었다. 살티 공소 신유박해(1801년)와 기해박해(1839년)를 거치면서 간월, 죽림굴로 숨어들었던 신자들이 경상도 지역에 본격적으로 행해진 경신박해(1860년)와 병인박해(1866년)를 피해 더욱 안전한 곳을 찾다가 모여든 곳이 안살티(현재 청수골 주변)이다. '살티'라는 말의 유래는 당시 포졸들이 신자들을 찾아 석남사까지 왔다가 경주로 빠져 나감으로써 이곳의 신자들이 죽음을 면하고 무.. 더보기
<국내성지063> 언양 성당 신앙 사적지 190210 오늘부터 부산교구 성지 8곳과 마산교구 성지 6곳을 둘러보기 위하여 5박 6일간의 성지순례 여행을 떠난다. 부산지역은 해운대에 있는 한화리조트 해운대 티볼리, 마산지역은 한화리조트 거제 벨버디어에 캠프를 차리기로 예약이 되어있다. 역시 제주도 순례에 동행을 했던 이재현 요셉 부부가 이번에도 동행을 하고 요셉의 차로 네사람이 출발했다. 부산을 향하여 가는 길에 언양에 언양 성당, 살티 공소, 죽림굴의 세 곳의 성지가 몰려 있어서 먼저 들리기로 했다. 세 곳중 죽림굴은 산중에 있어 지세도 험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듯하여 돌아오는 길에 가고 대신 양산 통도사의 자장매를 보기로 수정했다. 경부고속도로 언양IC에서 내려 언양 성당을 찾아가는 길은 제법 멀었다. 언양 성당 믿음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각 공소 대표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