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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

<한국누정122> 부여 궁남지 포룡정(抱龍亭) 221014 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궁남로 52 (동남리), 궁남지 답사일자 : 2022년 10월 14일, 맑음 궁남지(宮南池)는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백제의 별궁 연못이다. 무왕 35년(634)에 연못을 궁 남쪽에 팟다는 의 기록을 근거로 궁남지라 부른다. 연못의 중앙부에 석축과 버드나무가 남아 있어 가운데에 섬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포룡정(抱龍亭)은 그 섬에 있는 정자이다. 궁남지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연꽃재배단지이며 궁남지에서 매년 개최되는 '부여서동연꽃축제'는 전국에서 가장 큰 연꽃 축제로 올해로 제20회 축제를 열었다. 지금은 철이 지나 연잎이 시들어가고 있다. 더보기
<한국누정121> 부여 낙화암 백화정(百花亭) 221014 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산4, 낙화암 앞 건립시기 : 1929년 문화재지정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08호 답사일자 : 2022년 10월 14일, 맑음 백화정을 가기 위해 부여 구드래나루 선착장에서 왕복 10,000원 승선료를 내고 유람선을 타고 고란사로 향한다. 구성진 옛노래 백마강을 들으며 유람선을 타고 가는 길에 선장의 설명이 이어진다. 오른쪽 위가 낙화암과 백화정, 그 아래 송시열이 바위에 새겨 놓은 '낙화암' 글씨가 있고, 왼쪽이 고란사이다. 고란사 선착장에서 배를 내려 고란사로 오른다. 고란사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백화정과 만나게 된다. 백화정(百花亭)은 낙화암 위에 있는 정자이다.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사비성이 함락될 때 이곳에서 목숨을 버린 궁인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 더보기
<한국누정120> 부여 자온대 수북정(水北亭) 221014 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 147-2 건립시기 : 조선 광해군 때 문화재지정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00호 답사일자 : 2022년 10월 14일, 맑음 수북정(水北亭)은 부여 팔경의 하나로 백마강변의 자온대 위에 세워진 정자이다. 언제 세워졌는지 정확한 연대는 확인되지 않지만 조선 광해군 때 양주목사를 지낸 김흥국이 이곳에 와 살면서 지은 정자로 김흥국의 호를 따서 '수북정'이라 하였다. 백마강변의 약간 솟은 언덕에 있어 주변 경관이 트여 구드래 일원(명승 제63호)이 한눈에 들어와 시원한 느낌이 든다. 건물의 특징으로 기둥 배치가 외부 기둥과 내부 기둥을 가로줄에 맞추지 않았고, 내부는 별도의 평면으로 되어 있는 모습이다. 천정도 가운데 기둥 부분의 서까래를 감춘 우물천정이고, 주변은.. 더보기
10월의 농촌, 황금들판 221014 더보기
<아름다운성당> 부여 금사리성당 220121 주소 :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성충로1342번길 21(금사리) 충청남도 기념물 제143호 / 1906년, 부여군 최초의 성당 건물 촬영일자 : 2022년 1월 21일 금요일, 맑음 대성당 대성당 내부 모습 옛 성당 건물 전시관 사무실과 사제관 성모 동굴 외부에서 본 성당 전경 더보기
<국내성지172> 황석두 성인 안장지, 삽티 성지 220121 삽티는 내포의 사도 이존창이 홍산으로 피신하여 선교 활동을 한 시절부터 교우들이 숨어 살기 시작한 곳이다. 1850년대에 충북 연풍에서 배척받은 황석두 루카 성인은 가족들과 삽티로 이주하였다. 황석두의 양자 황천일 요한과 조카 황기원 안드레아도 여기에 살았다. 황석두 성인은 인근 산막골에서 선교사 페롱(Feron) 신부를 보필하면서, 하부 내포의 산골 교우촌들을 순회하여 돌보았다. 병인박해로 1866년 3월 30일에 갈매못에서 성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와 함께 순교한 황석두 성인의 시신을 황천일과 황기원이 수습하여 그해 5월에 여기 삽티에 안장하였다. 이 때문에 황천일과 황기원이 홍산 관아에 체포되어 서울에서 순교하였으며, 56년 뒤에 황기원의 딸 황 마르타가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병인년) 4월 1.. 더보기
<국내성지154> 부여 도앙골 성지 210323 주소 : 충남 부여군 내산면 금지로 302 전화번호 : 041-836-9625 http://cafe.daum.net/southnapo(하부 내포 성지) 도앙골은 부여, 보령, 서천의 3개 시군이 맞닿은 월명산 아래 깊은 계곡 안에 있는 마을이다. 이곳은 산길이 맞닿는 계곡의 막다른 지점으로, 하부 내포의 산간 지역에 숨어 살던 신자들이 연통하기 수월하였다. 도앙골 교우촌은 최양업 토마스 신부가 조선으로 귀국한 이후 첫 번째 편지를 쓴 곳이다. 최양업 신부는 천신만고 끝에 1849년 말 귀국하여 전국 곳곳의 신자들을 찾아 열 달 동안 고된 순방을 마치고, 이곳의 신자 집에서 귀국 뒤 활동 보고서로서 첫 편지를 썼다. 편지에서 도앙골 같은 산골에 사는 신자들과 근처 산골에 사는 신자들은 평야 지대의 신자들보.. 더보기
<국내성지044> 손선지 성인과 정문호 성인의 고향, 부여 홍산 지석리 181214 지석리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숲정이에서 순교한 손선지 베드로와 정문호 바르톨로메오의 고향이다. 두 분은 1984년 한국을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어려서 입교한 손선지 성인은 열심한 신앙으로 16세 때 샤스탕 신부로부터 회장으로 임명되었고, 병인박해 때는 전주 지방의 교우촌인 대성동 신리골에 살며 자신의 집을 공소로 사용했다.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정문호 성인은 천주교를 알게 되자 곧 입교했는데 교우들뿐 아니라 외교인들에게조차 깊은 사랑을 받았다. 그 뒤 박해를 피해 고향을 떠나 여러 지방을 유랑하다가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대성동 신리골에서 손선지 성인과 함께 살았다. 두 성인은 혹독한 형벌 속에서도 평온을 잃지 않았고, 형장에서는 축복의 순간을 맞는 기쁨을 간직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