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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

반가사유상,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220328 장소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관람 일자 : 2022년 3월 28일 '사유의 방'에는 국보로 지정된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두 점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습니다. 어둡고 고요한 사유의 방을 걸어 들어가면 끝없는 물의 순환과 우주의 확장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시공을 초월한 초현실의 감각을 일깨우며 반짝임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 1,400여 년의 세월을 지나 우리 앞에 있는, 두 점의 반가사유상을 만나게 됩니다. 종교와 이념을 넘어 깊은 생각에 잠긴 반가사유상이 세상 너머를 바라보는 듯, 고뇌하는 듯,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듯, 신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반가사유상을 바라보는 동안 마음에 작은 파문이 일어나고, 치유와 평안이 다가옵니다. '반가사유상'이라는 명.. 더보기
<한국누정017>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청자정(靑瓷亭) 220328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9(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거울못 촬영 일자 : 2022년 3월 28일, 맑음 청자정(靑瓷亭)은 국립중앙박물관 내 거울못에 위치하고 있다. 거울못은 박물관 건물의 모습이 커다란 못에 비춰지게 된데서 거울못이라 한다. 거울못은 산과물의 조화를 강조하여 꾸미는 우리나라 전통의 정원 원리를 반영하여 만들었다.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상징물로 건립한 청자정은 고려 의종11(1157)년 대궐 동쪽의 별궁에 양이정(養怡亭)을 짓고, 지붕을 청자로 덮었다는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에 근거하여 건립하였다. 더보기
<국내성지131> 용산 성직자 묘지 191221 한국 교회에서 언제 이곳에 성직자 묘지를 마련하기로 결정하였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1887년 이 일대를 신학교 부지로 매입한 직후로 추정한다. 당시 조선대목구는 용산 함벽정(현 원효로 성심 여자 고등학교 자리)과 삼호정 일대의 임야를 매입하여 여주군 강천면에 있던 예수 성심 신학교를 옮기고, 삼호정 뒷산을 성직자 묘지로 정하였다. 현재 용산 성당 내에 있는 성직자 묘지에는 주교 4위, 신부 64위, 신학생 2위, 치명자 1위 등 모두 71위가 안장되어 있다. 특히 초대 조선대목구장으로 임명되었지만 끝내 조선에 들어오지 못하고 만주 땅에서 병사한 브뤼기에르 주교의 유해를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을 맞아 1931년 10월 10일 이곳으로 이장함으로써 성직자 묘지로서 의미가 더 깊어졌다. 1961.. 더보기
<아름다운성당> 원효로 예수성심성당 190418 원효로성당은 1902년에 세워졌으며, 프랑스인 코스트 신부가 설계·감독 했다. 원효로성당은 언덕을 이용하여 지었기 때문에, 남쪽 언덕 아래는 3층이고 수녀원쪽은 2층이 된다. 주로 이용하는 출입구가 중앙이 아니라 한쪽으로 치우쳐있어 비대칭의 모습을 이루었다. 건물의 내부는 제단과 예배석만 있는 단순한 교회형식이지만, 뾰족아치로 된 창문이나 지붕위의 작은 뾰족탑은 전체적으로 약식화된 고딕풍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원효로 성당은 19세기 말의 성당 건축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건축사적 의의를 갖는다 사적 제521호(2012.06.20 지정)로 지정되어 있다. 예수성심성당이 아름답다고 공감하시면 아래 하트에 클릭을 부탁드립니다. 더보기
<국내성지012> 순교성인들이 일시 묻혔던 곳, 왜고개 180301 현재 국군중앙 주교좌성당이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기와를 만드는 곳이었는데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중림동 약현 성당, 명동 성당 건물에 쓰인 붉은 벽돌도 여기에서 구운 것이라 전해진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앵베르 주교와 모방 신부, 그리고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베르뇌 주교 등과 남종삼, 최형, 홍봉주 등이 암매장되어 잠시 머물다 간 곳이다. 또한 병오박해 때 순교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시신도 새남터에서 교우들이 찾아내어 잠시 이곳 근처에 가매장했다가 미리내로 모셔 갔다고 증언하고 있다. 특히 앵베르 주교와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의 유해는 노고산에 암매장된 지 4년 후에 당시 유해를 훔쳐 낸 교우들 중 하나인 박 바오로에 의해 그의 선산인 삼성산에 다시 안장되었다. 그 후 .. 더보기
<국내성지011> 옛 용산신학교 성당 180301 옛 용산신학교 성당 (원효로예수성심성당) 옛 용산신학교 성당인 성심성당은 조적조 양식으로 명동 주교좌성당과 중림동 약현 성당을 설계한 코스트 신부가 설계한 신학교 성당이다. 일반 교구 성당과는 달리 평면 형식을 가진 이 성당은 지형의 특성을 잘 이용하여 지은 아담한 성당으로 현재 성심기념관 (구 용산신학교 생활관)과 더불어 사적 제255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1902~1958년까지 이 성당에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를 모셨다가 가톨릭 신학대학 이전과 함께 혜화동 신학대학으로 모셔 갔으며 또한 조선교구 초대 교구장이었던 소 브뤼기에르 주교와 제8대 교구장이었던 뮈텔 주교의 유해를 모시기도 했었다. 옛 용산신학교 생활관 (성심기념관) 현재 성심 수녀회 한국 관구 사무실과 성심기념관으로 쓰고 있는 옛 용.. 더보기
<국내성지010> 어머니의 성지, 당고개순교성지 180301 당고개 순교성지는 아홉 분의 순교 성인과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어머니이며 복자 이성례 마리아가 순교한 곳이다. 당고개 성지는 가족들의 간절한 사연을 간직한 성인들이 많은 곳으로 특별히 어린 자식을 거느린 세 어머니는 천주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모성애까지도 초월하여 순교의 월계관을 차지했다. 이곳을 찔레꽃 아픔이 매화꽃 향기로 가득 찬 어머니의 성지라 부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젖먹이의 죽음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야만 했던 복자 이성례 마리아뿐 아니라 11남매 중 10남매를 잃어야 했던 손소벽 막달레나, 인간사 그 모든 것보다 신앙을 우선시하며 살았던 최영이 바르바라, 이경이 아가타, 또한 천국을 향한 신앙 교육을 중시한 가문의 아들들 홍병주 베드로와 홍영주 바오로, 끝까지 말씀에 의지하며 살았던 .. 더보기
<국내성지007> 사제들의 순교터, 새남터순교성지 180301 새남터 순교성지는 한국 교회 역사상 순교한 성직자 열네 분 가운데 열 한 분이 순교한 곳으로 이 가운데 여덟 분과 교회 지도자급 평신도 세 분이 성인 반열에 오른 한국의 대표적인 순교성지 이다. 이 곳에 순교의 피가 뿌려지기 시작한 것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치명한 중국인 복자 주문모 야고보 신부부터이다. 주 신부가 입국한지 6년 만인 1801년 신유박해 때 주 신부 때문에 많은 희생자가 생기자 주 신부는 자진해서 의금부로 나섰고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1839년의 기해박해 때에는 조선 제2대 교구장 성 라우렌시오 앵베르 범 주교와 성 베드로 모방 나 신부, 성 야고보 샤스탕 정 신부가, 7년 뒤인 1846년 병오박해에는 한국 최초의 방인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기해일기'를 작성한 현석문 가롤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