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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

<국내성지090> 성 조윤호 요셉 순교터, 서천교 190320 이곳은 성 조윤호 요셉이 1866년 12월 23일 치명한 곳이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순교한 조윤호는 충청도 신창에서 태중 교우로 태어나 돈독한 신앙생활을 어려서부터 익혔다. 부친인 조화서는 일찍이 최양업 신부의 복사로 최 신부의 전교와 성무 활동을 보필했고 그 후 전주의 교우촌인 성지동으로 이주했다. 1866년 12월 5일 부친 조화서, 정원지, 이명서 등과 함께 성지동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체포된 이들 부자는 혹독한 고문과 배교의 강요 속에서도 서로 격려하며 오직 진리만을 말하기로 다짐했다. 옥에서 아버지는 아들 윤호에게 "네 마음이 변할까 염려된다. 관장 앞에서 진리대로 말하여라." 하고 격려했고, 이에 아들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아버님께서도 조심하십시오."라며 죽음의 두려움보다는 배교의 유혹에 .. 더보기
<국내성지089> 성문 앞에서 참수형, 풍남문 190320 풍남문은 한국 최초의 순교자요 복자인 윤지충과 권상연 그리고 호남의 사도 복자 유항검과 초대 전주 지방 교회의 지도급 인물들이 순교한 곳이다. 윤지충은 25세에 진사에 급제하고, 이듬해 명례방 김범우의 집에서 서학을 접한다. 얼마 후 정약용 형제들의 지도로 열렬한 신자가 되고 다시 그의 외사촌인 권상연에게 전교한다. 1791년(신해년) 여름, 진산에서 윤지충 바오로가 모친상을 당했다. 그는 외종형 권상연 야고보와 상의, 모친의 유언과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전통 의식인 유교식 장례와 제사를 폐하고 신주를 불태웠는데 이를 '진산 사건'이라 한다. 그 후 전통 사상을 거스르는 이 행위는 천주교 박해의 구실이 되었고, 12월 8일 윤지충과 권상연이 참수,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되었다. 윤지충이 전라 관.. 더보기
<국내성지088> 한국 최초 순교터, 전동성당 190320 전동 성당을 세운 보두네 신부도 처음에는 이곳이 순교지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성당을 세웠지만, 이곳에 성당이 세워진 것은 하느님의 섭리였다. 처음에는 전주 오목대에 성당을 세울 계획을 세웠는데, 유림들과의 마찰을 우려한 뮈텔 주교가 옮길 것을 건의해서 지금 자리에 성당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전동 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신해박해(1791년) 때에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유교식 조상 제사를 폐지하고 신주를 불태웠던 진산 사건으로 순교한 자리에 세워진 성당이다. 또한 '호남의 사도'로 불린 유항검과 김유산 등이 순교한 곳이자 유항검의 아우 유관검이 성직자 영입을 위해 북경 주교에게 서양의 큰 배를 조선에 몰고 와 달라고 요청한 '대박청래' 사건을 일으킨 죄로 처형된 곳이다. 전.. 더보기
<국내성지087> 목숨을 바친 자들의 산, 치명자산 190318 이곳은 예로부터 승암산 또는 중바위산이라 불렸는데, 1801년에 순교한 복자 유항검의 가족들을 합장한 뒤, 치명자산 또는 동정 부부 이 루갈다를 추앙하여 루갈다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곳에는1784년 세례를 받아 호남에 처음 복음을 전하고 선교사 영입과 서양 선진 문화 수용을 하다가 국사범으로 처형된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그의 처 신희, 동정 부부로 순교한 큰아들 유중철 요한과 며느리 이순이 루갈다, 둘째 아들 유문석 요한, 제수 이육희, 조카 유중성 마태오 일곱 분이 하나의 유택에 모셔져 있다. 유항검은 1801년 신유박해가 터지자 전라도 지방에서 제일 먼저 체포돼 서울로 압송당해 능지 처참형을 받고 전주 감영으로 다시 이동, 1801년에 46세의 나이로 참수되었다. 선인들이 해발 300m의 산정에 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