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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성지순례/의정부교구

<국내성지035> 성 남종삼 요한 묘 181201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율대리 서울대교구 길음동 성당 묘원에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남종삼 요한 성인과 

공주에서 순교한 성인의 부친 남상교, 전주로 유배되어 순교한 장자 남규희 등 삼대 순교자의 묘소가 있다.

남종삼 성인은 '승지'로 103위 성인 가운데 가장 높은 벼슬에 오른 분이다.

 

1863년 말경, 러시아가 수시로 우리나라를 침범하며 통상을 요구하던 차에 

남종삼은 '이이제이방아책(以夷制夷防俄策)'이라 하여 서양 프랑스의 세력을 이용해 러시아를 물리칠 것을 건의했다. 

이에 대원군은 주교와 만나려 했으나 만남이 늦어지고, 정치적 상황이 바뀌며 1866년 2월 천주교를 탄압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남종삼은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을 받고 50세로 순교하였다.

 

남종삼의 시신은 용산 왜고개에 매장되었다가 1909년 유해가 발굴되어 명동 성당에 안치되었고,

시복을 계기로 1967년 10월 다시 절두산 순교성지 성해실로 옮겨져 안치되었다.

이때 성인의 유해 일부를 가족 묘소인 장흥면 율대리에 모셔 안장하였다.

 

(한국천주교성지순례/한국천주교주교회의)

 

 

 

네비게이션에는 '남종삼의 묘'로는 나오지 않는다.

'천주교 길음동 성당 묘원'이라 치고 묘원의 관리동 건물 앞까지 와야한다.

묘원 입구에 모셔진 성모상 앞에 왼쪽 차도로 남종삼 요한 묘로 올라가는 표지석이 있다.

 

 

 

차도를 따라가며 배치되어있는 십자가의 길을 올라가며 기도를 바치면 묘원 중간 쯤에 14처가 끝나면서 남종삼 묘역이 시작된다.

 

 

 

 

 

묘역의 제일 높은 곳에 남종삼 성인 일가의 묘가 있다.

 

 

 

 

 

 

성 남종삼 요한의 묘

 

866년 천주교박해 때 순교했다. 본관은 의령. 자는 증오(曾五), 호는 연파(煙波)·중재(重齋). 세례명은 요한. 아버지는 탄교(坦敎)이다. 어려서 큰아버지인 상교(相敎)에게 입양되었다.

남인계 농학자로 충주부사를 지낸 아버지 밑에서 공부했고, 1838년(헌종 4)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철종 때 승지가 되었다. 고종초에는 왕족자제의 교육을 담당해 흥선대원군과 친교를 가질 수 있었다. 천주교 신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동전한문서학서 東傳漢文西學書〉를 읽으면서 천주교에 입교했다. 한때는 베르뇌(Berneux) 주교를 숨겨주는 등 열렬한 신자가 되었다.

철종말 러시아의 통상요구로 나라 안에 위기감이 감돌자 이 기회를 이용하여 천주교를 공인받기 위해, 영·프와 교섭하여 러시아의 남침을 저지하고자 하는 방아책(防俄策)을 당시 실권자인 흥선대원군에게 건의했다. 그러나 방아책에 관심을 가졌던 대원군이 주교 베르뇌·다블뤼(Daveluy)와의 면담이 지연되는 동안 태도를 바꾼 데다가, 북경에서 천주교박해가 일어났다는 오보(誤報)가 조선에 전해지면서, 1866년 천주교는 대대적인 박해를 받게 되었다. 이때 그도 체포되어 살해되었다. 1968년 시복(諡福)되었고, 1984년 성인품(聖人品)에 올랐다.

 

 

양부 남상교의 묘

 

 

장자  남규희의 묘

 

 

 

 

 

 

연락처 : 순교자 공경 위원회 / 031-850-1497

관할 성당 : 송추성당 031-855-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