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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성지순례/전주교구

<국내성지086> 호남의 사도 유항검의 생가터, 초남이 190318

초남이는 '호남의 사도'라고 불리는 유항검의 생가터가 자리한 곳이다.

1754년 초남리에서 태어난 유항검은 1784년 늦은 가을 세례를 받고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함께 전라도 지방에 복음을 전파하는 데 거의 절대적인 공헌을 한 인물이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시작되자 유항검은 전라도 지방에서는 가장 먼저 붙잡혀 혹독한 고문을 받고 그해 10월에 참수되는데 이때 그의 나이 46세였다.

이 때문에 유항검의 처 신희, 제수 이육희, 동정 부부이자 유항검의 아들 며느리인 유중철과 이순이, 둘째 아들 유문석 그리고 조카 유중성이 순교하였고, 이분들의 무덤은 전주 '치명자산'에 합장되어 모셔져 있다.

유항검의 처와 제수를 제외한 5명은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된 데 이어 절차에 따라 시복되었다.

 

유항검이 운영했던 인근의 교리당터는 주문모 신부가 미사와 성사를 집전한 장소이기도 하다.

주 신부는 그의 집에 머물며 강론을 하는 한편 유항검과 함께 여러 가지 교리를 진지하게 토론했다.

 

또한 이곳은 유중철 요한, 이순이 루갈다 동정 부부가 4년 동안 동정 부부의 삶을 산 곳이다.

 

(한국천주교성지순례/한국천주교주교회의)

 

 

 

 

호남 천주교 발상지라는 표지석이 있는 곳에 주차장이 마련되 있고, 약 300m 전방에 안내 표지판과 함께 초남이 성지가 있다.

 

 

 

 

 

 

집을 불태우고 집터를 웅덩이로 만든다는 파가저택의 형벌을 받아 자그마한 웅덩이만 남은 유항검의 생가터이다.

 

 

 

 

 

 

자그마한 경당으로 들어가 본다.

겉과 안이 다같이 소박한 모습이다.

 

 

 

 

 

사무동이다.

 

 

동정 부부가 살았다는 가옥 주변으로 십자가의 길이 조성되 있다.

 

 

 

 

 

순례객의 마음가짐을 의미하는 느바기이야기이다.

 

 

유항검이 운영했다는 교리당터는 약 500m 떨어진 곳에 있다.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조선에 와서 첫미사를 봉헌한 경당이다.

지금은 폐쇄되어 있다.

 

 

 

 

 

 

새로 조성 중인 교리당에 있는 우물터이다.

 

 

 

유항검 기념관 겸 피정의 집이다.

 

 

 

 

 

 

 

 

 

 

 

 

 

 

2차 순례 (2019.06.21 : 성지순례 완주 축복장 수여식 후 2차 순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