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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이야기/경기도

<조선왕릉> 정조의 효심이 깃든 화성 융릉과 건릉(2) 200823

조선왕릉 : 화성 융릉과 건릉 (사적 제206호)

주소 :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481번길 21(안녕동 187-1)

 

 

 

화성 융릉(隆陵)과 건릉(健陵)은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후에 장조 추존)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헌경의황후 추존)를 모신 융릉, 그리고 정조와 그의 비 효의황후를 모신 건릉을 말한다.

처음에는 정조가 당시 양주에 있던 아버지 묘(영우원)를 이곳으로 옮기고 현륭원(顯隆園)이라 하였으나 고종 때(1899) 황제로 추존하면서 융릉으로 바꾸었다. 정조가 아버지 곁에 묻히기를 원하여 부자를 한 구역에 모시게 되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억울하게 죽어간 아버지의 넋을 위로하고자 했던 정조의 효성으로 빚어진 화려하고 아름다운 왕릉을 만날 수 있고, 새로운 조선을 꿈꿨던 개혁 군주의 왕릉도 만날 수 있다. 주변에는 융릉의 원찰인 용주사가 있다.

 

 

입구에 융릉과 건릉의 역사문화관이 있는데 내부 공사중으로 금년 12월까지 휴관이다.

 

 

오른쪽에 재실이 있다. 이곳에 제사용품들이 보관되어 있고 제사 때는 제물을 준비한다.

 

 

입구 초입부터 송림이 울창하다.

 

 

오른쪽에 사도세자의 릉인 융릉이 있다. 먼저 융릉으로 간다.

 

 

소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우거진 숲이 울울창창하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는 정조의 효심이 느껴진다.

 

 

원대황교라는 다리 위로 개울을 건넌다.

 

 

외부와 능역을 구분짓는 돌다리 금천교를 넘어 융릉의 능역 안으로 들어선다.

 

 

융릉은 사도세자와 그의 비 혜경궁 홍씨의 합장릉이다. 사도세자는 제21대 영조의 아들이자 제22대 정조의 생부이며, 노론과 마찰을 빚게 되어 뒤주에 갇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영조는 죽은 세자에게 사도라는 시호를 내렸고 광무 3년(1899)에 장조로 추존되었다. 헌경황후는 1744년 세자빈에 책봉되었고, 1899년 왕후로 추존되었다.

 

 

능역내의 엄숙을 요구하고 신이 드나드는 문인 홍살문이다. 파란 하늘과 흰구름, 빨간색의 홍살문이 아름답다.

 

 

조선왕릉은 홍살문과 정자각, 능침이 일직선 상에 있는 것이 원칙이나 여기는 정자각이 일직선 상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배위이다. 이곳에서 신령에게 참배를 고한다.

 

 

향로와 어로이다. 왼쪽의 향로는 신령이 다니는 길이고 오른쪽의 어로가 임금이나 제관이 다니는 길이다.

향로가 어로보다 조금 높고 넓다.

 

 

수라간이다.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기 전 제수를 준비한다.

통상 왼쪽에 수라간이 있고 그 반대편에 능역을 관리하는 관원이 기거하는 수복방이 있는데, 여기는 수복방이 없다.

 

 

정자각이다. 이곳에 제수를 진설하고 제관들이 제사를 지낸다. 건물의 모양이 정(丁)자를 닮아서 정자각이라 한다.

 

 

정자각의 뒷쪽에 신령이 오고 가는 다리가 있다.

 

 

예감이다. 제사를 끝낸 후 축문을 태우는 곳이다.

 

 

신령이 머무는 능침이다. 합장릉이기 때문에 봉분이 하나이다. 돌로 만든 양과 호랑이가 봉분을 지키고 있고, 문인과 무인석이 혼령을 배석 호위한다. 대부분의 조선왕릉이 능침 출입을 금지하고 있어서 올라가지는 못한다.

 

 

비각이다. 안에는 두 개의 비가 서 있다.

 

 

오랜 장마 끝에 잠시 개인 날이라 하늘에 구름이 많다.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한많은 넋을 위로라도 하려는 듯 구름도 변화무쌍하게 춤춘다.

 

 

융릉 앞에 조성된 원형의 연못 곤신지이다.

 

 

융릉 관람을 마치고 건릉 쪽으로 간다. 건릉으로 가는 길에는 밀식된 소나무 숲이 인상적이다.

 

 

건릉은 조선 제22대 정조와 왕비 효의왕후 김씨의 합장릉이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로 1776년 제21대 영조가 승하하자 왕위에 올랐다. 정조는 재위 기간 동안 탕평책 실시, 규장각 설치, 수원화성 축조 등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효의왕후는 1762년 세손빈에 책봉되었고 정조의 즉위로 왕비가 되었다.

 

 

홍살문이다.

 

 

배위이다.

 

 

향로와 어로이다.

 

 

수라간이다.

 

 

정자각이다

 

 

신로이다

 

 

예감이다

 

 

능침이다.

 

 

비각이다.

 

 

조선왕조 역대 임금 중 세종대왕 다음으로 명석하고 개혁적인 임금으로, 일찍 의문사 하지 않고 오래 재위에 있었더라면 오늘날 우리의 삶이 달랐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쉬어 하며, 정조의 효심이 깃든 융건릉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