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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누정/대구.경북

<한국누정130> 경주 양동마을 무첨당(無忝堂)(보물) 220802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안길 32-19(양동리 181)
건립시기 : 조선 중기 (16C 중엽)
문화재지정 : 보물 제411호(1964.11.14)
답사일자 : 2022년 8월 2일, 맑음



무첨당(無忝堂)은 회재 이언적 종가에 16세기 중엽에 지어진 제청(祭廳)으로, 그의 맏손자인 무첨당 이의윤(1564~1597)의 호를 따라 집의 이름을 지었다. 뒤쪽 높은 곳에 사당이 있고, 동쪽에 안채, 사랑채, 행랑채로 이루어진 본채가 있다.
무첨당은 제사를 지내는 제청의 기능이 강했으며, 독서와 휴식, 손님 접대와 문중회의를 했던 큰 사랑채다.


무첨당으로 들어가는 진입로 양쪽에 배롱나무꽃이 만발했다.


대문 앞에는 상사화와 흰배롱나무꽃도 손님을 반긴다.


무첨당은 이언적의 아버지 이번(李磻)이 처음 터를 정하고 살던 집이다. 양동마을 가운데서도 서백당과 함께 풍수지리적으로 가장 길지로 여겨지는 터에 지어졌으며, 여주 이씨 종가댁으로 사용되고 있다. 왼쪽이 무첨당이고, 오른쪽 건물들이 본채이다.


무첨당은 앞면 6칸, 옆면 2칸에 누마루를 달아내어 'ㄱ'자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가운데 3칸은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제사를 지내는 제청으로 사용되고 문중회의도 열었던 곳이다.


'무첨'이란 조상에게 누가 되는 행동을 삼가한다는 의미이다.


좌해금서(左海琴書)라는 현판은 집권전 이곳을 방문한 흥선대원군이 죽필로 직접 쓴 것으로 '영남에서 선비가 살고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흥선대원군은 집권 후 양동마을에 대해 우호적이었다고 한다.


무첨당 왼쪽에는 2칸규모 누마루를 달아내었다. 누마루는 3면이 뚫려 있어 정자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는데 집주인이 손님을 접대하거나 독서, 휴식 등으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누마루에서 정원을 내려다본 풍경


본채의 사랑채


대문을 통과하여 바깥으로 나간다.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또 다른 고택인 대성헌이 있다.


길가에는 배롱나무꽃 외에도 수세미꽃, 참나리 등 여름꽃이 만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