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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누정/대구.경북

<한국누정128> 경주 양동마을 관가정(觀稼亭)(보물) 220802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길 121-47 (양동리 150)
건립시기 : 조선 중종 9년(1514)
문화재지정 : 보물 제442호(2022.4.29)
답사일자 : 2022년 8월 2일, 맑음



양동마을

조선시대 전통문화와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양동마을은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를 중심으로 형성된 씨족마을로 5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양민공 손소(孫昭, 1433~1484)가 풍덕 류 씨와 혼인하여 처가가 있는 이곳에 들어온 것을 계기로 경주 손씨가 양동마을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여주 이 씨는 찬성공 이번(李蕃, 1463~1500)이 손소의 사위가 되면서 이 마을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후 두 집안에서는 우재 손중돈(孫仲暾, 1463~1529)과 회재 이언적(李彦迪, 1491~1553) 등 많은 유학자를 배출하였다.
마을 앞으로는 안강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으며, 설창산에서 뻗어 내린 네 줄기의 능선과 골짜기를 따라 150여 채의 옛집들이 들어서 있는데, 이는 조선 중기 영남지방의 일반적인 가옥 형태로 우리나라 전통역사마을의 생활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양동마을은 전체가 국가문속문화재, 세계문화유산, 형산강팔경으로 선정되어 보전되고 있다.


관가정(觀稼亭)은 조선 중종 때 관리로서 청백리였던 우재 손중돈의 살림집으로 중종 9년(1514)에 지은 집이다. '관가정'은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본다'는 뜻으로 누마루에 올라 보면 그 이름에 걸맞게 곡식이 익는 들판과 강의 모습이 넓게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대청이 매우 넓은 것이 특징인데 살림집이 후대로 오면서 제사 때 필요한 공간 확보를 위해 변형된 것이다. 본채의 뒤쪽에 사당이 있으며, 특이하게 대문이 사랑채와 연결되어 있다. 대문과 담은 원래 없었으나 1981년에 새로 만든 것이다. 조선 중기 남부지방의 주택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관가정은 양동마을 초입의 서쪽 언덕 위에 있다.


이 담장과 대문은 원래는 없었는데 1981년에 새로 만든 것이다.


정자는 사랑채에 연결되어 있는데, 정면 2칸, 옆면 1칸의 단층 기와지붕집이다.


관가정은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본다'는 뜻인데, 누마루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면 곡식이 익어가는 들판과 강의 모습이 넓게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건물 옆에 두 그루의 배롱나무가 마주 보고 꽃을 피워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옆에는 향나무 한 그루가 멋있게 누워 있다.


사랑채와 연결된 대문을 통해 안채로 들어가 본다.


대청이 시원하게 넓다.


본채 뒷편에는 양민공 손소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다.


사당 옆 후문에서 보면 맞은 편에 향단이 한눈에 보인다.


관가정의 아래쪽에는 양동마을 수호수인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우람하게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