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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성지순례/원주교구

<국내성지153> 원주 대안리 공소 210305 박해 시대 인근 덕가산에 피해 숨어 살던 신자들이 1886년 조불 수호 통상 조약으로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자 이곳 대안리로 옮겨 와 교우촌을 이루었다. 대안리 공소는 1892년 설립되었으며, 강당 건물은 1900-1906년 무렵 건립되었다. 1910년 11월 9일 풍수원 성당을 축성한 뮈텔 주교는 사흘 뒤 이곳 강당을 성당 축성 예절로 성모님께 봉헌하였다. 뮈텔 주교는 일기에 이 일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정오에 한강 지류를 건너 맞은편 여인숙에서 점심을 들었다. 오후에 갈 길은 근 30리이다. 10리쯤 남겨두고 아름다운 무지개와 함께 비가 내렸다. 성당에는 드브레 신부가 만든 신부 방이 딸려 있다. 그것은 진짜 성당이기에 성당 축성 예절로 축성하였다. 성당은 성모님께 봉헌되었다. 미사를 드리고 3.. 더보기
<국내성지152> 원주 강원감영 210305 강원 감영은 조선 시대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지이다. 이곳에서 순교한 김강이 시몬, 최해성 요한, 최 비르지타는 2014년 시복되었다. 김강이 시몬은 충청도 서산 출신으로 입교 뒤 전라도 고산 땅에 살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부터 피신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1815년 을해박해 때 강원도 울진에서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고문으로 생긴 상처와 이질로 옥사하였다. 최해성 요한은 최경환 성인의 일가로 신유박해 때 조부가 유배된 충청도 다락골(청양)에서 원주 서지(부론)로 이주하여 교우촌을 이루었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21차례의 심문과 18차례의 고문을 당한 뒤 참수 치명하였다. 최 비르지타는 황사영 알렉시오를 숨겨 준 죄목으로 유배당한 남편이 죽자, 오빠가 사는 서지 마을에 와서 살았.. 더보기
<국내성지151> 원동 주교좌성당 210305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방역대책의 일환으로 성지 문까지 닫아버리는 바람에 작년 9월 6일 강원도 삼척의 성내동 성당 방문을 끝으로 성지순례를 중단해 왔고, 지난 1월의 갑작스러운 대수술로 인해 외출도 중단한 채 건강 회복에만 전념한 지 어언 50여 일이 지났다. 건강 회복 테스트도 할 겸 중단된 성지순례를 이어가기 위해 남은 성지 중 가장 가까이 있는 원주의 원동 주교좌성당과 강원 감영, 대안리 공소를 돌아보기로 했다. 원동 주교좌성당 원동 성당은 원주교구 주교좌성당이다. 원동 성당(옛 이름 원주 성당)은 1896년 풍수원 성당에 이어 강원도에서 두 번째로 설립되었다. 1913년에 지은 고딕식 옛 성당은 한국 전쟁 때 전소되고, 현재의 성당은 1954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정면 중앙 돔 종탑을 .. 더보기
<국내성지150> 성내동 성당 200813 성내동 성당(옛 삼척 성당)은 1949년 설립되었으며, 현재의 성당은 1957년 삼척 시내를 굽어보는 동산 위에 건립되었다. 대한민국 근대 문화유산 등록 문화재 제141호로 지정된 성내동 성당은, 여느 성당들과 달리 뒤쪽으로 들어와서 성당을 돌아야 종탑이 있는 정면 출입구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종탑이 성당 입구가 아닌 시내 쪽을 바라보게 하여, 멀리서도 사람들이 성당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초대 주임 신부인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진 야고보 신부(James Maggin, 1911-1950년)는 근현대 신앙의 증인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가운데 한명이다. 그는 1936년 한국에 와서 제2차 세계 대전 중 투옥과 연금을 당했고, 해방 뒤에는 .. 더보기
<국내성지027> 한국 네번째 강원도 첫번째 성당, 풍수원성당 181107 1888년 6월 한국에서 네 번째로 설립된 풍수원 성당은 1910년에 봉헌식을 가졌으며, 한국인 신부(정규하 아우구스티노)가 지은 한국 최초의 성당으로 신자들이 직접 벽돌을 굽고 나무를 해 오는 등 건축 자재를 스스로 조달하여 세웠다. 성전은 1982년에 강원도 지방 유형 문화재 제69호로, 구 사제관은 2005년에 대한민국 등록 문화재 제163호로 지정되었다. 풍수원 일대는 오래된 교우촌으로 그 시작은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던 때, 박해를 피해 피난처를 찾던 신태보 베드로가 신자 40여 명과 함께 이곳에 교우촌을 형성한 것에 기인한다. 이 후 박해가 거듭될수록 많은 교우들이 모여 큰 촌락을 이루어 신앙생활을 이어 왔으며, 80여 년간 목자 없이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 오다가 1888년 강원도 최초의.. 더보기
<국내성지025> 강원도 세번째 성당, 용소막성당 181025 용소막 성당은 강원도에서 풍수원, 원주에 이어 세 번째로 1904년에 설립되었다. 용소막에 천주교가 전해진 시기는 병인박해 무렵이었는데 수원 지방에서 피난 온 몇몇 신자 가족들이 강원도 평창 지역에 살다가 박해가 뜸해지자 용소막에서 멀지 않은 황둔, 오미, 용소막으로 이주하여 공소를 설립하면서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1915년 가을에 완공된 아담한 벽돌 양옥 성당인 용소막 성당은 강원도 유형 문화재 제106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당시의 성당 건축 양식이었던 로마네스크 양식을 사용하고 있으나 성당 앞부분에 종탑이 나와 있는 것이 다른 성당과 조금 다른 모습이다. 용소막 성당에는 용소막에서 태어나 '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회'를 설립하고 성경 번역에 큰 자취를 남긴 원주교구 소속 선종완 라우렌시오 신부의 삶과 공.. 더보기
<국내성지024> 순교자 남상교 유택지, 묘재성지 181025 순교자 남상교 유택지는 남종삼 요한 성인의 아버지인 남상교 아우구스티노가 관직에서 물러나 신앙생활에 전념하려고 이사한 곳으로 남종삼 성인이 살던 곳이다. 남종삼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학문과 사상, 그리고 천주교 입교 등에서 아버지 남상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원래 생부는 남원교이나 종숙부인 남상교에게 아들이 없어 양자로 갔다. 남종삼은 대원군에게 프랑스 주교들을 통해 서구 열강과 동맹을 맺으면 러시아의 남하를 막을 수 있다는 상소문을 올렸고, 대원군은 남종삼의 상소문을 받아들였으나 주교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기 전에 상황이 바뀌어 천주교를 박해하게 된다. 병인박해가 시작되자 남종삼은 이곳에 피신하였다가 붙잡혀 순교하였다. 남상교는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 남종삼이 서소문 밖에서 참수된 뒤 체포되어 공.. 더보기
<국내성지023> 황사영 백서,최양업신부 묘소,최초의 신학교, 배론성지 181025 1801년 신유박해 때 황사영 알렉시오가 백서를 작성한 곳이며,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무덤이 있고, 1855년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 성요셉신학교가 설립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신유박해를 피해 온 교우들이 신앙 공동체를 이룬 곳으로, 신유박해 때 황사영이 토굴에 숨어 조선 교회의 박해 상황과 외국의 도움을 청하는 내용의 백서를 적은 곳이다. 황사영이 순교하고 관련된 신자들이 모두 처형되면서 배론 교우촌도 파괴되었다. 1855년 초 장주기 요셉 성인의 집에 설립된 성요셉신학교에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천주교 성직자 양성을 위한 서양 학문을 교육했으나 1866년 병인박해 때문에 장주기와 교장 푸르티에 신부, 교사 프티니콜라 신부가 순교하자 신학교는 문을 닫게 되었다. 또한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사제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