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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성지순례

<국내성지144> 광암 이벽 요한세례자 진묘터 200226 광암 이벽은 한국 천주교 초기 평신도 가운데 주요 역할을 한 지도자이며, 한국 천주교회는 현재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안건으로 시복을 추진하고 있다. 이벽은 1777년 권칠신, 정약전 등과 함께 강학을 하였고, 1784년에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았다. 1785년 을사 추조 적발 사건이 발생하자 평소 천주교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유림들이 반발하였고, 이벽도 가족들에게 배교를 강요받았다. 이벽은 자신이 선택한 천주 신앙과 부모에대한 효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화현리 집에서 아사(餓死)한 것으로 추정한다. 포천 화현리는 이벽의 부친인 이부만부터 그의 증손까지 4대의 묘가 들어선 선영과 이부만과 그 후손들이 살았던 집터가 있는 곳이다. 이벽의 생가 터는 포천시 화현면 543-1번지로 추정된다. 이벽의 .. 더보기
<국내성지143> 홍천 성당 200220 홍천 성당은 1923년 6월 21일 춘천 고은리 본당 관할 공소였던 송정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하여 설립되었다. 홍천 본당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송정 공소는 1890년 송정리 버덩말에 서병익 바오로 신부(1910년 수품)의 친족이 신자 몇 가족과 함께 정착하며 시작되었다. 1923-1924년 보고서에 따르면 송정 성당은 인제군 관대리와 부평리, 홍천군을 포함하여 8개 공소를 관할하며 신자가 모두 652명이었다. 송정리에 10여 칸의 한옥을 지어 교세를 확장하던 송정 본당은 1936년에 현재 위치 홍천읍 희망리로 이전하였고, 명칭도 홍천 본당으로 변경하였다. 이곳은 홍천군, 인제군 본당들의 모본당이라 할 수 있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제에 의해 전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아일랜드 신부들이 이곳 홍천 성당.. 더보기
<국내성지142> 소양로 성당(순교자 안토니오 신부) 200220 살신성인 기념 성당인 소양로 성당은 1950년 1월 5일 죽림동 성당에서 분가되었으며, 한국 전쟁에서 순교한 고 안토니오(Anthony Collier) 신부를 기념하는 성당이다. 고 안토니오 신부는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성체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신자들에게도 피신하라고 권고하며 사태를 지켜보았다. 그는 6월 27일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심문을 받고, 공지천변으로 끌려가면서 함께 잡혔던 복사 김경호 가브리엘에게 총격이 있으면 얼른 엎드리라고 이야기 하였다. 마침내 총격이 시작되자 고 신부는 그를 끌어안고 넘어져, 자신은 죽음을 맞으면서도 다른 이를 살리는 살신성인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현 성당은 1956년에 지어졌다. 당시 교구장 구인란(具仁蘭, Thomas F. Quinlan) 토마스 주교는 한국 전쟁으.. 더보기
<국내성지141> 춘천교구 주교관과 교육원 200220 주교관 주교관은 춘천교구장 주교의 거처이자 선교사들이 교구 일을 돕거나 기거하는 거점으로 강원도 지역을 담당하던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가 1958년에 건립하였다. 이 건물은 당시의 전형적인 외국인 선교회 풍으로 지었는데, 유별나게 서향으로 세운 것은 햇빛이 아쉬운 아일랜드 풍습의 영향으로 보인다. 6.25 전쟁이 끝난 뒤, 포격으로 피해가 많았던 춘천에 아일랜드 풍으로 세워진 건물로서, 현재까지 보존이 잘 되어 건축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주교관은 춘천교구청 경내에 위치해 있다. 춘천교구청은 정문이 정서향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주교관 주교관 앞에서 수녀님과 함께 운동을 나가시는 "김운회 루카 주교"님을 만났다. 김운회 주교님은 2010년 3월 25일자로 제7대 춘천교구장에 취임하셔서 지금까지 춘천교구를.. 더보기
<국내성지140> 행주 성당 200211 행주 성당은 1899년 약현(현 서울 중림동) 성당의 공소로 출발하였으며, 1909년에 명동 성당, 약현 성당에 이어 세 번째 본당으로 설립되어 경기 서북부 지역을 관할하였다. 휴전 뒤 도시화에 따라 1957년 본당이 수색 성당으로 이전하였고, 행주 성당은 공소로 명맥을 유지하다 의정부교구가 설립되면서 2004년 11월 18일에 다시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성당은 1910년에 5칸으로 지어진 한옥 목조 성당이고, 1949년에 2칸을 증축하였는데, 건축과 증축을 기록한 상량 묵서가 남아 있다. 문화재청은 변천 과정의 기록과 건물의 역사성을 인정하여 '등록 문화재 제455호'로 지정하였다. 행주 성당은 근현대 순교자로 하느님의 종 이순성 안드레아 신부, 윤의병 바오로 신부가 주임 신부로 사목하던 곳으로 순교자.. 더보기
<국내성지139> 참회와 속죄의 성당 200211 참회와 속죄의 성당과 민족화해센터는 한반도의 평화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고 교육하는 장(場)을 마련하자는 김수환 추기경의 제안으로 1990년경부터 건립이 준비되었고, 성당은 2008년에, 센터는 2014년에 완공되었다. 성당의 이름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우리 자신의 참회와 속죄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성당의 외형은 평안북도 신의주 진사동 성당, 내부는 함경남도 덕원의 베네딕도 수도원의 한국 전쟁 이전의 모습을 각각 그대로 재현하였다. 또한 민족화해센터는 평양 외곽 서포에 있던 메리놀 선교회 본부 건물을 복원하였다. 성당의 제대 위쪽 유리 모자이크는 남한과 북한 지역의 순교자들이 평화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왕께 한반도의 평화와 일치를 위해 한목소리로 전구하는 내용이다. 성전 뒤편에는 .. 더보기
<국내성지138> 신암리 성당 200211 이곳은 오래된 교우촌으로, 하느님의 종 이춘근 라우렌시오 신부(베네딕도회)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이춘근 신부는 서울교구 사제로 서품 받은 뒤에 수도회에 입회하였고, 1950년 10월 5일 평양에서 순교하였다고 전해진다. 신암리(新岩理)는 조선 말기 박해를 피해 형성된 교우촌으로, 1907년 송도(개성) 성당 관할 공소로 설립되었다. 그 뒤 1925년에 본당으로 승격되었다가, 1931년 다시 행주 성당 관할 공소가 되었고, 1935년 덕정리 성당 소속이 되었다가, 1946년 덕정리 성당이 의정부동으로 옮기며 의정부 성당 소속이 되었다. 한국 전쟁 때 폭격으로 초토화되었으나 1953년부터 1955년까지 신자들의 노력과 영국 군인들의 도움으로 공소를 재건하였다. 이렇게 신앙을 간직해 온 신암리 공소는 19.. 더보기
<국내성지137> 갈곡리 성당 200211 갈곡리는 칡이 많아 칡의 계곡(갈곡, 葛谷)으로 불렸고, 우리말로 칡울이라 하여 공소 이름도 '칠울 공소'라 불렸다. 풍수원에서 박해를 피해 인근 우골에 정착하였던 신자들이 많아져, 1896년 세 가족이 칠울로 옮겨, 옹기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며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이곳은, 하느님의 종 김치호 베네딕토 신부(베네딕도회, 한국인 최초 수도 사제, 1950년 10월 5일 순교)와 그의 누이 김정숙 마리안나 수녀(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1950년 10월 17일 순교)가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유서 깊은 신앙촌답게 최창무 안드레아 대주교를 비롯한 많은 사제와 수도자를 배출하였다. 1898년에 교구 공식 보고서에 성사 집전 기록이 보고되었고, 1908년에는 뮈텔 주교가 직접 방문하여 머문 기록이 전해진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