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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성지순례

<국내성지006> 김성우 성인의 고향, 구산성지 180224 은총과 치유의 구산성지는 뒷산이 거북이 형상을 닮았다 해서 이름 붙여진 구산 마을에 위치하며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을 비롯한 9분의 순교자 진묘와 얼이 스며 있는 거룩한 땅이다. 구산 마을에 신앙의 씨앗은1830년경, 정직과 아량으로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았던 김성우 성인과 두 동생 만집, 문집 세 형제를 통해 뿌리내렸으며 교우촌이 되었다. 특히 성인은 1836년에 입국한 모방 신부를 집에 모시고 우리말과 조선의 풍습을 가르치고, 박해 아래 풍전등화 같은 교회 공동체를 보존하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수차례 집을 옮겨다니며 전교 회장직을 충실히 행하였다. 포도청에 압송되어 여러가지 고문을 당하였으나 굳건한 용덕으로 " 나는 천주교인이오.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을 따름이오 "라는 신앙 고.. 더보기
<국내성지005> 백지사 형벌의 효시, 남한산성순교성지 180224 남한산성은 한양의 군사적 요지로 천주교 박해와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었는데, 이미 신해박해(1791년) 때부터 신자들이 남한산성에 투옥되었다는 전승이 내려오고 있으며, 신유박해 때에는 첫 순교자 한덕운 토마스가 탄생하였다. 이어 기해박해와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약 300명에 달하는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 교수, 장살 등의 방법으로 순교하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순교하신 분들 가운데 일부만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병인박해 때에는 백지사(白紙死)라는 특이한 형벌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사지를 묶고 얼굴에 물을 뿌린 뒤에 한지를 덮는 일을 거듭하여 숨이 막혀 죽게 하는 형벌이다. 너무 많은 신자들이 잡혀 오자 피를 보는 일에 진저리를 낸 포졸이나 군사들이 쉽게 처형할수 있는 방법으로 고안해 낸 형벌이 바.. 더보기
<국내성지004> 첫사제 김대건신부 묘, 미리내성지 180221 미리내 성지는 신유박해(1801년). 기해박해(1839년) 때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들어 옹기를 굽고 화전을 일구어 살았는데, 밤이면 불빛이 은하수처럼 보여 미리내('은하수'의 우리말)라고 불리게 되었다. 병오박해(1846년) 때 순교하신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미리내에 안장되면서 교회 안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성지에는 김대건 신부의 묘소와, 그의 어머니 고 우르술라 그리고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이자 김 신부에게 사제품을 준 페레올 주교의 묘가 있으며, 또한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새남터에서부터 이곳으로 옮겨 와 안장하고 선산을 교회에 봉헌한 이민식 빈첸시오의 묘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1976년, 수원교구에서 용인지방에 산재해 있던 무명 순교자 17위의 유해를 미리내 성지 내 .. 더보기
<국내성지003> 첫 영세자 이승훈의 묘(반주골) 180219 우리나라 최초 영세자 이승훈은 1756년 태어나 24세의 젊은 나이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길을 단념하고 서학 연구에 매진하였다. 또한 그는 마재 정씨 가문 정약용의 누이동생과 혼인하여 그들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게 된다. 당대의 석학 이벽과도 교분을 맺은 이승훈은 사신이 된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가 1784년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한국 최초의 영세자가 된다. 영세 후 이벽, 정약전 형제, 권일신 등에게 세례를 베풀고 1785년에는 서울 명례방 김범우의 집에서 종교 집회를 가지는 등 신자 공동체를 형성시켜 천주교회를 설립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나 박해가 시작되자 집안의 압력으로 천주교 신앙을 배교하면서 괴로워하였다. 1786년 다시 교회로 돌아왔고, 마침내 1801년 신유박해 때 이가환, 정약용,.. 더보기
<국내성지002> 한국천주교의 상징, 주교좌 명동대성당 180213 민속 명절 설을 앞두고 한국 천주교의 상징이자 심장인 명동대성당을 찾았다. 오전 일찍 찾아간 명동대성당은 고요속에 엄숙히 서있고 하늘의 서광인양 태양의 후광이 빛난다. 명동대성당은 한국 천주교가 탄생한 곳이자 첫번째 본당이다.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한뒤 귀국하여 명례방(지금의 명동)에 있던 김범우의 집에서 신앙공동체를 형성하고 신앙집회를 갖기 시작하였다 이로써 한국인 고유의 힘에 의해 한국 천주교가 탄생하였고, 이를 금지하는 위정자들에 의해 탄압을 받고 집주인 김범우는 최초의 순교자(1786년)가 된다. 그 후 1882년부터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블랑 주교가 이 집과 주변터를 매입했고 1887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우여곡절 끝에1898년 5월 29일에 봉헌하게 된다. 그리하여 한국천주교의 첫번째 .. 더보기
<국내성지001> 한국천주교회 발상지, 천진암성지 180106 새 해의 첫번 째 주말을 맞아 의미있는 일을 찾다가 광주시 퇴촌면에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천주교성지인 천진암성지(天眞巖聖地)를 찾아갔다. 한국 천주교회의 출발은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하고 돌아온 1784년 봄으로 잡는다. 하지만 그보다 5년이 앞선 1779년 겨울 바로 이곳 천진암 주어사에서는 당대의 석학 권철신이 주재하는 강학회가 있었는데 권철신.일신 형제와 정약전.약종.약용 형제, 이승훈 등 10여명의 석학들이 이벽과 함께 서학에 대한 학문적 지식을 종교적 신앙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천진암 성지는 이처럼 한국 천주교회의 움이 트고 싹이 돋은 한국 천주교회 신앙의 고향이며,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자생적인 한국 천주교회의 발상지이다. (한국천주교성지순례/한국천주교주교회의) 성지가 산.. 더보기
한국 천주교 성지 지도 https://drive.google.com/open?id=1TVGRWq5vzI1Xrmpa94GXX0wo9NFDLiCR&usp=sharing 교구별 성지 목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