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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필름사진 추억여행> 강화 외포리곶창굿 040418 2004년 4월 9일 대구 삼주건설(주)의 법정관리인을 사임하고 서울 영등포 당산동 아파트로 돌아오다. 따라서 사진활동 무대도 서울 중심으로 옮겨진다. 장소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8-193, 수봉민속놀이마당 촬영일자 : 2004년 4월 18일, 맑음 카메라 : Nikon FM2, 필름 : Kodak Gold, 사진스캔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 '고창굿'이라고도 한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득제장군을 모시고 마을의 안녕과 생업의 번창을 위하여 행하는 마을굿이다. 강화외포리곶창굿의 기예능보유자는 정정애(丁貞愛) 만신이다. 더보기
고구저수지와 연꽃, 강화군 교동도 210819 교동대교를 건너서 대룡시장 쪽으로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오른쪽에 커다란 저수지가 보인다. 고구저수지이다. 고구저수지는 1976년 4월에 완공된 88.5ha의 넓은 인공저수지이고 한국농어촌공사가 관리하고 있다. 고구저수지는 사계절 낚시가 가능한 곳으로 주 어종은 참붕어, 잉어, 가물치 등이라고 한다. 저수지를 둘로 가르며 국도가 지나가고 있다. 도로 저편 고구리 마을 앞 저수지에는 연꽃을 심었고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저수지 가운데에 정자를 짓고 두 개의 데크를 설치하여 내왕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여기 연꽃은 8월 초순이 피크인 것 같은데 아직은 연꽃이 피고 있다. 데크를 따라 정자쪽으로 가본다. 피크는 지났지만 듬성듬성 피고 있는 연꽃과 물 위에 비치는 반영이 볼만하다. 제철에 오면 흰색의 어리연도 볼 수.. 더보기
추억이 머무는 곳, 강화 교동도 대룡시장 210819 넓은 황금벌판과 서해의 아름다움이 장관을 이루는 교동도는 인구 약 3천 명, 면적 47km2로 강화군 북서쪽에 위치한 섬이며 2014년 7월 교동대교의 개통으로 더욱 편리하게 찾을 수 있는 관광지이다. 고구려 시대에는 고목근현으로, 신라 경덕왕 때에는 교동현이라는 지명으로 개칭되었고, 고려시대에는 벽란도로 가는 중국 사신들이 머물던 국제교역의 중간 기착지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인조 11년(1633년)에 삼도수군통어영을 설치하여 경기, 충청, 황해도까지 전함을 배치하는 해상 전략적 요충지였다. 동북쪽으로는 개풍군과 8km, 서북쪽으로는 연안군. 배천군과는 불과 3km 사이에 바다를 두고 남과 북이 마주 보는 중립 수역에 위치하고 있다. 교동대교는 강화군 양사면 인화리와 교동면 봉소리를 연결하는 길이 3.44.. 더보기
해바라기 정원, 강화군 교동면 난정저수지 210819 우리나라 최북단에 위치한 강화군 교동면 난정리 해바라기 마을에서 8월 9일부터 12일까지 해바라기 축제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축제가 끝나고 일주일 만인 오늘 최적의 개화 상태를 기대하며 난정리 해바라기 정원으로 간다. 해바라기 정원 입구에는 난정리 노인회에서 일인당 2,000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고 주차는 무료이다. 강화군 교동도 서쪽 끝 바닷가에 위치한 난정저수지는 2006년에 완공된 인공 저수지로 너른 교동 들판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다. 오랜 시간 적막하기만 했던 저수지 주변으로 2019년 해바라기 마을정원이 조성되면서 난정저수지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난정리 주민들이 직접 해바라기를 심고 가꿔 저수지 주변을 노랗게 물들이고 교동도를 방문하는 관광객과 실향민들에게 휴식과 위안을 주는 장소.. 더보기
수도권 최대규모 해바라기정원, 난정해바라기마을 200914 털여뀌 찾아 들어간 강화 나들길 10코스에서 되돌아 나오면 대룡시장이 있고, 그 앞에 공용주차장이 있다. 공용주차장 입구에 '수도권 유일 최대규모 해바라기 정원, 난정 해바라기 마을'이라는 안내 간판이 있다. 주민에게 물어보니 강화 나들길 10코스 방향으로 약 2분 정도 가면 난정저수지가 있고 거기에 해바라기 정원이 있다고 한다. 교동도 서쪽 바닷가에 위치한 난정저수지는 2006년에 완공된 인공저수지로 너른 교동 들판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그 둘레가 5km에 달한다고 한다. 이 저수지 주변에 난정리 주민들이 작년부터 해바라기를 심고 가꾸어 해바라기 정원을 조성하였고, 관광객과 실향민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게 되었다. 해바라기 꽃은 피는 시기가 지나서 이미 다 저버렸지만 넓은 호숫가에 조성.. 더보기
노인장대 천국, 강화 교동도 200914 노인장대가 털여뀌 노인장대를 만나러 강화군 교동도로 간다. 교동도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으로 강화도를 통과하여 교동대교를 거쳐 들어가는 섬 속의 섬이다. 우리나라 최북단으로 북한과는 2.6km로 교동 망향대에서 망원경으로 북한의 집과 사람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분당 우리 집에서의 거리는 113km로 교통체증 없이 달리면 2시간이 걸린다. 날씨가 좋으면 일몰까지 보고 올 생각으로 아예 느지막이 9시에 집을 출발했는데 정확히 11시에 교동대교를 통과했다. 재작년에 확인한 대로 우선 고구 낚시터로 갔다. 재작년에는 노인장대(털여뀌)가 저수지 물가에서 살고 있었는데 한해살이풀이라서 변화가 있었는지 물가에는 없어지고 뒤편 뚝 비탈에 많은 노인장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확인을 해보니 줄기와 잎에 털이 많은.. 더보기
<국내성지031> 병인박해 순교자 3위비, 갑곶순교성지 181115 강화는 수도 방어의 요충지로서 고려 시대부터 외세와 격렬하게 충돌해 온 역사의 현장이다. 이런 강화 지역이 교회와 특별한 관계를 가지기 시작한 것은 1866년 병인양요와 연이은 병인박해 때이다. 1866년 병인양요 때 조선 정부가 프랑스 인 성직자 9명을 처형한 책임을 물어 강화도를 점령하고자 프랑스 함대가 바로 이곳 갑곶 돈대로 상륙,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했다. 결국 프랑스 군은 후퇴했으나 이 때문에 강화 지방에는 한국 천주교회의 가장 극심했던 박해의 하나로 기억되는 병인박해가 시작되게 된다. 이 박해로 1868년 최인서, 장치선, 박서방, 조서방 등이 강화 진무영에서 순교했고, 1871년 박상손, 최순복, 우윤집 등이 강화 갑곶 진두에서 효수되었다. 성지에는 순교자 3위비가 세워져 그분들의 넋을 .. 더보기
<국내성지030> 해상 경비 군영이자 천주교 신자 처형지, 진무영 순교성지 181115 진무영(鎭武營)은 조선 시대에 해상 경비의 임무를 맡았던 군영(軍營)이며, 동시에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지이기도 하다. 병인양요(1866년)를 촉발시킨 서울 애오개('아현'의 옛 지명) 회장 최인서 요한, 장주기 성인의 조카 장치선, 박순집의 형 박서방, 조서방 등이 이곳 진무영에서 순교하였다. 진무영은 1700년(숙종 26년) 강화부에 그 본영을 설치하고, 1779년(정조 3년) 통어영을 병합하였다가 1789년(정조 13년) 다시 분리하였다. 특히 1866년의 병인양요 이후, 외국 선박의 출입이 빈번하여 쇄국 정책을 쓴 당시로서는 수도의 관문을 지키는 국방상 중요한 군영이었다. 강화가 천주교와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839년 기해박해를 겪으면서였다. 그동안 천주교 신앙 유입의 통로는 육로뿐이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