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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성지

<국내성지156> 대흥 봉수산 순교성지 210324 주소 : 충남 예산군 대흥면 의좋은형제길 25-14 전화번호 : 041-333-0202 http://cafe.daum.net/bongsusan1801 대흥봉수산순교성지 대흥봉수산순교성지 cafe.daum.net 대흥은 1801년 신유박해 때 김정득 베드로 복자가 신앙을 증언하고 순교한 마을이다. 대흥 봉수산 성지와 연고가 있는 순교자는 김정득 복자 외에 황 베드로, 백청여, 원지우 안드레아, 이 루도비코, 이 아우구스티노 등이 있다. 김정득 복자는 예산에서 순교한 김광옥 안드레아 복자와 함께 '의좋은 순교자'로 알려져 있다. 두 순교자는 서로 고향이 달랐으나 공주 무성산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가 신유박해 때 체포되었다. 그들은 예산, 홍주, 청주를 거쳐 한양까지 이송되었으며, 여러 차례 형벌을 받으면서.. 더보기
<국내성지134> 제물진두 순교성지 200129 제물진두는, 1868년 4월 20일(양력 6월 10일)에 '순교자들의 행적 증거자' 박순집 베드로의 이모 김씨(1810-1868년)와 남편 손넙적이 베드로(1800-1868년), 사위 백치문 요한 사도, 이 마리아의 손자 등 4명이 도끼로 참수당하여 순교한 곳이다. 또한 1871년 5월 3일(양력 6월 20일)에는 이승훈의 증손자 이연구와 이균구 형제, 이승훈의 손자 이재겸의 부인 정씨와 손명현, 신자로 추정되는 백용석과 김아지도 1871년 5월 18일(양력 7월 5일) 이곳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한편 김대건 신부가 부제품을 받고 입국하였다가 1845년 4월 사제품을 받기 위해 작은 목선(라파엘호)을 타고 중국 상해로 떠났던 역사적인 곳이자, 1888년 7월 22일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소속 4.. 더보기
<국내성지128> 서운동 순교성지 성당 191117 서운동 성당은 1933년 6월 청주 최초의 본당으로 설립되었으며 1963년 7월 현재의 자리로 신축 이전하였다. 관할 구역 안에 4곳의 순교지와 1곳의 신앙 증거 터가 있어, 2019년에 순교 성지 성당으로 지정되었다. 청주 진영 순교지는 충청도의 5개 진영 가운데 하나로 병인박해 때 진천 지장골에서 체포된 오반지 바오로 복자가 압송되어 혹독한 형벌을 받고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청주 남문 밖 장터 순교지는 1866년 병인박해가 한창일 때 보은 멍에목에서 체포된 김사진 프란치스코 복자가 압송되어 혹독한 문초와 형벌을 받고 목이 졸려 순교하였다. 충청 병영 순교지는 충청도 병마절도사영 자리이며,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복한 순교자들의 순교지요 신앙 증거 터이다. 이곳에서 원시보 야고보(.. 더보기
<국내성지107> 6곳의 순교터, 홍주 순교성지 190322 홍주 성지는 충청도의 첫 순교터이며,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성지이다. 홍주는 1784년 한국 천주교 설립 초기부터 충청도의 첫 신자인 이존창의 영향으로 복음이 활발히 전파된 곳이다. 천주교 신자가 제일 많았던 홍주 지역(내포 지역)은 행정, 군사의 요충지인 홍주목과 진영이 있던 관계로 많은 순교자가 탄생하였다. 기록상으로만 초기 박해(신해~정사)동안 8명, 이어 중기 박해(신유~기해)동안 4명, 병인박해에 200명이나 된다(총212명) 박해 기간(1791~1869년) 동안 무명 순교자까지 1,000명이 넘는 순교자를 탄생시킨 거룩한 성지이다. 특히 원시장 베드로는 신해박해 때 홍주 옥에서 세례를 받고 추운 날 동사형으로 순교하여 충청도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더보기
<국내성지106> 공주 황새바위 순교성지 190322 공주에 있는 황새바위 순교성지는 조선 천주교회 박해 역사 100년 동안 가장 많은 순교자들이 처형된 장소로 이름이 확인된 순교자가 337위에 이르고, 무명 순교자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공주는 조선 시대에 충청 감영이 있던 중심 도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충청도 전역의 신자들이 체포되어 배교하지 않으면 공주로 압송되어 최종 문초 고문 판결 처형되었고, 다른 지역의 신자들도 공주로 보내 최종 형을 집행하였다. 황새바위 순교성지에서 기려야 할 순교자로는 병인박해 때 향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한 손자선 토마스 성인이 있고, 신유박해 때 참수 치명한 내포의 사도 이존창 루도비코 순교자가 있다. 또한 124위 복자 이국승 바오로, 김원중 스테파노, 청양 정산에서 순교한 이도기 바오로가 있다. 황새바위 .. 더보기
<국내성지100> 영남 제일의 순교터, 관덕정순교성지 190405 대구대교구 제2주보성인이신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곳이며, 많은 신앙 선조들이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참수 치명당한 거룩한 곳으로, 공식 명칭은 '천주교 대구 관덕정 순교성지'이다. 관덕정은 조선 시대 무과 시험 제도의 하나인 도시(都試)를 행하던 도시청으로 조선 영조 25년에 세운 건물로 옛 이름은 관덕당이었다. 관덕당은 누각과 넓은 마당이 있어 군사 조련이나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장으로 쓰이던 곳이었는데, 그런 이유로 이곳에서 사형 집행도 이루어졌다. 관덕당에서는 1815년 을해박해 때 7명이 순교했으며, 1827년 정해박해 때 3명, 1866년 병인박해 때 이윤일 요한 성인을 비롯하여 7명이 순교했다.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는 날뫼, 묵리 등을 거쳐 1976년 미리내 무명 순교자.. 더보기
<국내성지097> 순교자들이 살고 죽고 묻힌 곳, 한티순교성지 190404 한티 순교성지는 순교자들이 살고, 죽고, 묻힌 곳이다. 을해박해(1815년)와 정해박해(1827년)를 전후하여 박해를 피한 교우들이 팔공산 중턱으로 숨어들어 1850년 말경에 한티는 큰 교우촌을 이루게 된다. 병인박해(1866년)가 진행 중이던 1868년 봄, 한티에 들이닥친 포졸들은 배교하지 않는 많은 교우들을 그 자리에서 처형하고 마을을 불태웠다. 박해 소식을 듣고 인근에 살던 교우들이 한티에 들어왔을 때에는 이미 마을은 불타 없어지고 버려진 순교자들의 시신이 산야 곳곳에서 썩어 가고 있었다. 시신의 훼손이 너무 심하여 옮길 수가 없었기에 순교한 그 자리에 시신을 안장하였다. 지금까지 확인된 한티 순교자들의 묘는 모두 37기로 박해 당시의 교우촌과 그 주위에 넓게 흩어져 있다. 그중에는 당시 공소 회.. 더보기
<국내성지088> 한국 최초 순교터, 전동성당 190320 전동 성당을 세운 보두네 신부도 처음에는 이곳이 순교지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성당을 세웠지만, 이곳에 성당이 세워진 것은 하느님의 섭리였다. 처음에는 전주 오목대에 성당을 세울 계획을 세웠는데, 유림들과의 마찰을 우려한 뮈텔 주교가 옮길 것을 건의해서 지금 자리에 성당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전동 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신해박해(1791년) 때에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유교식 조상 제사를 폐지하고 신주를 불태웠던 진산 사건으로 순교한 자리에 세워진 성당이다. 또한 '호남의 사도'로 불린 유항검과 김유산 등이 순교한 곳이자 유항검의 아우 유관검이 성직자 영입을 위해 북경 주교에게 서양의 큰 배를 조선에 몰고 와 달라고 요청한 '대박청래' 사건을 일으킨 죄로 처형된 곳이다. 전.. 더보기